외근, 지하주차장

철그물 설치

by 하얀 얼굴 학생

주택 철거를 진행한 지 2주쯤 지난 시점, 하루는 남사장이 다른 장소로 와달라고 연락한다. 일종의 외근이다. 주소만 알면 캠리를 운전해서 가면 되니 알겠다고 한다. 그런데 남사장이, 데이빗도 차에 태워 함께 와달라고 한다. 데이빗은 자차가 있긴 하나 면허 취소 상태다.


데이빗은 자신의 집 주소를 보내온다. 그는 아침 일찍 데이빗을 태워, 남사장이 알려준 현장으로 출근한다. 외국인을 그의 차에 태운 것은 생소한 일이라, 그는 살짝 긴장한다. 데이빗은 그를 배려해서, 자신의 핸드폰으로 네비를 보면서 길을 안내한다. 현장은 당연히 멜버른 외곽이다. 외곽이지만 건물들이 꽤 많은, Frankston 같은 위성 도시 중 하나다. 현장에 도착하니 남사장이 기다리고 있다. 인사를 하고 나니, 남사장은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남사장을 따라가는데, 남사장이 한 건물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외근 현장은 바로 지하주차장이다. 남사장은 그와 데이빗에게, 지하주차장 보수 작업 일을 맡긴다. 철거 현장에서는 그도 익숙해져서 나름 1인분의 몫을 할 수 있었지만, 지하주차장은 다르다. 우선 현장이 너무 생소하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데이빗은 이 외근 현장이 처음이 아닌 듯하다. 처음이더라도, 수많은 경험과 기술을 통해 바로 할 일을 파악한 듯하다. 데이빗은 그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 지하주차장의 구획을 나누는 곳에는 철로 만들어진 그물망이 쳐져 있는데, 몇몇 곳의 철그물망이 손상되어 있어 새롭게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빗은 자신의 집에서, 그의 차 트렁크에 여러 공구와 자재를 실었다. 그는 옮겨 싣기만 했을 뿐 무엇인지 알지 못했는데, 꺼내면서 보니 이해가 된다. 공구 박스와 전기선은 단박에 알 수 있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돗자리처럼 둘둘 말린 어떤 무거운 쇳덩어리였다. 데이빗의 설명을 듣고 나서 보니, 이 둘둘 말린 쇳덩어리가 바로 철그물 덩어리다. 그물이긴 하지만, 그물을 이루는 선 하나하나가 꽤 굵고 결코 휘지 않는다. 그는 철그물 설치라는 말에 설레기 시작했으나, 이는 곧 다가올 노동 강도를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설렘이다.


철그물을 설치해야 하는 모든 곳에는, 이미 쇠파이프로 틀이 잡혀 있다. 그와 데이빗은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손상된 철그물을 제거하고, 가져온 새로운 철그물을 재설치하면 된다. 전체적인 틀은 너무나도 쉬운데, 일을 진행하는 과정은 험난하다. 철그물 제거는 어렵지 않다. 철그물을 쇠파이프에 고정하는 철사를 찾아내서 잘라내면 끝이다. 하지만 철그물을 새롭게 설치하는 과정이 어렵다. 데이빗은 철그물을 설치할 때, 결코 느슨하게 설치하지 않는다. 철그물을 있는 힘껏 잡아당겨서, 최대한 빳빳하게 만든 뒤 쇠파이프에 철사로 고정한다. 결코 대강 설치하는 법이 없다. 4m 정도 되는 철그물을 설치하는데,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얇으면서도 날카롭고 강한 철그물을 계속해서 잡아당기느라, 그의 손아귀 힘이 남아나질 않는다.



철그물을 빳빳하게 설치하기 위해 계속 당기는 것도 힘들지만, 더욱 힘든 것은 철그물을 절단할 때다. 데이빗이 가져온 철그물은 거의 10m가 넘도록 이어져있는 철그물이어서, 그와 데이빗은 설치를 위해 철그물을 절단해야 한다. 철그물은 높이가 약 2m가 넘는다. 2m가 넘는 철그물을, 그물끼리 맞물리는 부분을 모조리 잘라내야 한다. 데이빗은 고속 절단기를 갖고 있지 않다. 데이빗은 이를 어떻게 잘라야 할지 고민한다.


마침 그의 공구 벨트에, 조쉬와 일할 때 쓰던 금속 절단용 가위가 있다. 이를 보여주자, 데이빗의 표정이 환해진다. 하지만 철그물의 철실은, 그가 조쉬와 일할 때 잘랐던 철판보다 두껍고 둥근 심을 갖고 있다. 그와 데이빗은, 금속 절단용 가위에 철실을 위치시킨 뒤에 온 힘을 다해서 누른다. 한 손으로 될 일이 아니다. 두 손으로 꽉 잡고,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누른다. 너무 세게 눌러서, 손이 먼저 으스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즈음 철실이 잘린다. 철그물은 촘촘해서, 2m 높이에 수십 군데가 맞물려 있다. 지하주차장에 철그물을 재설치해야 하는 곳은 3군데다. 그와 데이빗은 돌아가면서 온 힘을 다해 철그물을 자른다.



건물 철거 현장은 공사 기간이 꽤 널널하고, 데이빗도 서두르지 않았다. 가끔 남사장이 와서 볼 때를 제외하고는 여유롭게 일을 했다. 하지만 지하주차장 외근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주어진 기간은 하루, 하루 내에 모든 철그물 설치를 끝내야 한다. 데이빗도 철거 현장에서와는 달리 몸놀림이 바쁘다. 지하주차장이다 보니, 오가는 차들과 매연으로 인해 장갑은 물론 그와 데이빗의 얼굴도 조금씩 검게 바뀐다. 그래도 그는 재미를 느낀다. 철그물 설치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터득하는 느낌이다. 물론 매일같이 지하주차장에서 일하라고 하면 그도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하루 정도의 외근은 괜찮다.


그와 데이빗은 해질 무렵이 다 되어서야 철그물 설치 작업을 끝낸다. 지하주차장 밖으로 차를 몰고 올라오니, 다른 세상 같은 느낌이다. 그의 양쪽 손아귀가 원래 힘을 회복하는 데는 며칠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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