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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Jun 18. 2021

외팔이 노숙자

조각글

 그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선행학습 열풍이 거셌다. 초등학생들도 반에서 난다 긴다 하는 아이들은 학원에서 중학교 과정을 먼저 배우고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한 무리의 아이들이 (a+b)의 제곱이 무엇이냐고 칠판에 써놓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무심하게 (a+b)의 제곱은 a의 제곱 + b의 제곱이 아니냐고 답했다.



 그러자 그 무리는 낄낄 웃더니 그게 아니라고 했다.

(a+b)(a+b)를 풀어서 써놓고 각각 곱해야 하기 때문에 ab가 2개가 생겨 답은 'a의 제곱 + 2ab + b의 제곱' 이라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는 놀랐고, 그 친구가 대단해 보였다. 문제를 낸 무리는 당연히 우월감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그 또한 당시 유행했던,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 학원'에 등록했다. '그 학원'에는 (a+b)의 제곱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무리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니고 있었고, 그도 그제야 (a+b)의 제곱에 대해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그 학원'에서는 아이들을 성적 기준으로 나누었다. 학교 성적도 좋고, 학원 내에서도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소위 '1팀'에 속했다. 그 밑으로 중상위권 아이들이 '2팀', 조금 성적이 부진한 아이들은 '3팀'으로 배정됐다. 그는 성적이 낮은 편은 아니었지만 2팀에 속했다. (a+b)의 제곱에 대해 빨리 알고 있던 친구들은 모두 1팀에 속해 있었다. 학원에서의 분류는 학교와 교우 관계에도 영향을 준 듯했다. 1팀 아이들은 1팀 아이들끼리, 2팀 아이들은 2팀 아이들끼리 더 친했다. 대놓고 무시하거나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도 1팀 아이들과 함께 할 때 무언가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불편함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그냥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자 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중학교 여름 방학이 찾아왔다. 여름 방학에 '그 학원'에서는 평일 내내 아이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데리고 공부를 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들에게는 이렇게 편하고 훌륭한 학원이 없었으리라. 그도 이 파도의 일부였다. 아침 10시에 큰길 사거리로 나가 횡단보도에서 아이들과 기다리고 있노라면, 40인승 대형버스가 그와 아이들을 실어 날랐다. '그 학원'에는 이런 40인승 버스가 10대가 넘게 있었다. 그가 학원 버스를 기다리는 장소에는 약 6명 정도의 아이들이 함께 했는데, 대부분 1팀 아이들이었다. 그는 뭔가 불편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내색하지 않았으니, 1팀 아이들이 보기에 그는 '그냥 조용하고 특징 없고 무난한 애' 정도로 보였으리라. 그렇게 그가 아이들과 학원을 다니던 여름 방학, 버스를 기다리는 곳에 있었던 외팔이 노숙자를 그는 기억한다.


 그가 외팔이 노숙자를 본 날,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의 친구와 그가 먼저 나와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아직 나와있지 않았다. 그는 사거리 건너의 노숙자를 보고 놀랐다. 그곳에는 노숙자가 있었던 적이 없다. 그저 차들이 도보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크고 네모난 돌덩어리만 띄엄띄엄 박혀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날은 노숙자가 있었다. 노숙자는, 패딩같은 두꺼운 외투에 헤진 바지를 입고 있었다. 외투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두꺼운 외투를 입었음에도 부피감이 크지 않고, 헤진 바지 밑으로 느껴지는 다리도 얇았다. 얼굴도 보이지 않았기에 노숙자는 허수아비 같았다. 그만큼 말랐고, 그에게 노숙자란 그만큼 생소했던 존재였다.



 그가 노숙자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서울 나들이를 갔는데, 굴다리 터널 안에서 노숙자를 처음 보았다. 덥수룩한 머리, 덥수룩한 수염, 해진 옷, 청결하지 못한 위생 상태, 벽 한켠에서 무릎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 그는 노숙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마음에 알 수 없는 소용돌이가 일었다. 슬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고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도 되는 걸까 싶었다.



 네모 각진 돌덩어리에 기대 누워있는 노숙자를 보며 그는 처음 노숙자를 보았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왠지 모를 감정,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감정. 그는 그 감정에 대해 이해하거나 생각하기엔 어리고 미숙했다.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때, 저쪽에서 같이 버스를 탈 아이들이 나왔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노숙자를 보며 낄낄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조그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모자를 눌러쓴 노숙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힘 없이 손을 휘휘 내저을 뿐이었다. 조그만 돌을 던지던 아이들은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 노숙자의 몸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뻗어있는 다리부터, 곧이어 패딩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패딩을 잡아당기는 모습을 보며 그는 깨달았다. 노숙자는 외팔이다. 패딩의 한쪽 팔은 패딩의 부피감 뿐이다. 그는 횡단보도 너머의 이 일들이 충격적이고, 당황스러우면서도 현실이 아닌 것 같다. 건너편 4, 5명의 아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한 아이가 팔이 없는 쪽의 패딩을 잡고 흔들었다. 팔 부분은 힘없이 헐렁거렸다. 이를 보며 다른 아이들은 더 소리높여 낄낄 웃었다. 이미 갈 데 까지 갔으니, 어쩔 수 없이 웃기라도 해야겠다는 웃음이었을까. 그는 충격에 휩싸였다. 외팔이 노숙자는 일어서지도 않은 채, 그저 다른 팔을 휘휘 내저으며 꿈틀거렸다.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공부도 잘하는 1팀 아이들이, 그 행동의 무엇이 그렇게 재밌을까. 외팔이 노숙자의 힘없는 반응을 보며 더 짓궂은 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악마와 겹쳐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건너펀에 서서 충격을 받은 채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왜 그는 그때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오히려 이 아이들에게 동참해야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왜일까.



 버스가 도착했다. 건너편 아이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그가 있는 쪽으로 건너왔다. 재밌는 놀이를 하고 난 것처럼, 아이들은 낄낄거렸고 철부지 같았다. 그는 그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탔다. 하지만 그의 속은 심히 뒤틀리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노숙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 아이들에게 동참하지 않았던 것이 너무나도 다행이라고. 나는 절대로 저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리라. 나는 저 아이들과 함께 놀지 않으리라. 나는 결코 1팀에 들어가지 않으리라. 나는 결코 공부를 잘하지 않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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