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독서실 1인실에 앉아, 매일같이 부정적인 뉴스를 본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것을, 모두가 다 고통받고 절망스럽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다. 하지만 그러한 작업 중에도, 그는 취업준비생이라는 자각이 머리 깊이 박혀 있다. 부정적인 뉴스를 보면서도, 그의 귀에 박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직장인이다.
범죄 뉴스를 보다 보면, 범죄자에 대한 간략한 신상이 나온다.
'어디어디서 무슨 범죄를 저지른 XXX는 나이가 몇 살이며 성별은 어떻고 학생이더라 / 직장을 다니고 있다' 이런 식이다. 이 문장에서 그의 귀가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은 바로 직업이다. 그는 범죄 뉴스를 보는 와중에도, 범죄자가 취업에 성공했는지 아닌지를 따지고 있다.
범죄자의 취업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저지른 범죄는 범죄다. 하지만 그는 범죄자의 취업 여부에 유난히 집착한다. 범죄자도 면접에 합격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구조화된 면접 질문을 통해 면접자를 분석하고 과학적으로 채용한다는 시대다. 그는 기업의 이러한 구조화된 질문과 분석적 채용에 수십 번이고 걸러져 단 한 번도 최종 합격을 하지 못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계속해서 떨어질 만큼 완벽한 프로세스가 바로 면접일진대, 범죄자의 떡잎을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뉴스를 보다 보면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범죄자가 꽤 자주 보인다.
그가 취업 준비를 하던 시기는, 전염병이 창궐했던 시기다. 강제로 마스크를 쓰고, 바깥 활동이 제한되는 등 사람들이 꽤나 억류당하던 때다. 난생처음 겪는 이러한 전염병 사태에, 인간 사회에는 꽤 큰 혼란이 일었다. 더불어 새로운 종류의 범죄나 몰지각한 행태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가 보았던 가장 어이없었던 사례 중 하나는, 출입자 명부에 적힌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이용해서 연락을 한 경우다. 전염병 감염 경로를 파악하겠다며, 정부는 온갖 상점 출입구에 방문자 명단을 적도록 강제했다. 사람들은 음식점이든 쇼핑몰이든 어디든 입장할 때마다 체온을 재고, 명부에 이름과 전화번호 등을 기입하고, 손을 소독해야 했다.
여느 때처럼 부정적인 뉴스를 탐닉하던 그의 눈에, 출입자 명부 관련 뉴스가 보인다. 누구나 예외 없이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적어야 하는 출입자 명부는 건물 입구에 떡하니 방치되어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출입자 명부를 보더라도 별 생각이 없다. 억지로 써야 하니 귀찮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런데 뉴스에 보도된 인간은 그렇지 않았다.
뉴스에 보도된 인간은,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었나 보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어디를 출입하는지 따라갔다가, 출입부 명부에 적혀있는 핸드폰 번호로 연락을 한 것이다. 똑똑하기 그지없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당황한 이성은,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마음에 드는 이성의 연락처를 전염병 명부를 활용해서 알아냈다. 한눈에 반했나, 그렇게까지 절박했나. 여기까지는 억지로라도 이해할 가능성이 있다 치지만, 이후의 행태는 더욱 기가 막힌다. 신고에 의해 경찰에게 연락을 받은 이 인간은, 이성에게 주옥같은 명대사를 날리기 시작한다.
번호 따서 문자만 했을 뿐인데 ~ 왜 신고를 해서 불편하게 만드냐 ~ 이 지역 좁은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 나 군대도 갔다왔고 4년제 나왔고 직장 00년차다 ~ 연락하지 말라고 하면 되지 신고를 하냐 ~
라는 식의, 전형적인 적반하장이다. 그는 해당 인간이 보냈다는 문자 메세지를 읽으며 어처구니가 없다. 이렇게까지 상식이 없는 인간도 있구나. 세상에는 참 다양한 인간이 있구나. 그런데, 문자 메시지 말미 부분에서 그의 눈이 커진다. '직장인 00년차' 라는 부분이다.
00년차라니, 직장 생활 기간이 이미 한 자릿수를 넘은 인간이다. 그는 속이 뒤집히기 시작한다. 이런 인간이 직장인이라니. 이런 인간도 직장을 다닌다니. 이런 인간도 면접에 합격했다니. 이런 인간도 면접에 합격해서 직장인이 되었는데, 그는 아직까지 면접에 합격하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니. 그는 이 인간보다 못한 것인가?
기업이라는 집단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인간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인간이 좀 덜 되었을지라도, 가진 재주가 뛰어나다거나 능력이 특출나기만 하면 된다. 성격이 더럽더라도 능력이 좋다면, 온화한 일반인보다 합격할 가능성이 더 높다. 면접에 참석하는 지원자들은 거의 모두가 가면을 쓴다. 면접관들은, 성격이 아주 개차반으로 보이지만 않는다면 능력 있는 지원자를 선호할 것이다. 아무리 성격이 개차반이더라도, 면접 자리에서는 대놓고 성격을 드러내지 않으리라. 아니 능력이 월등히 좋다면, 얄팍한 가면마저도 착용하지 않을 지도, 또 그래도 기업 취업에 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신종 전염병이 창궐한 시기라 그런지, 핸드폰 카메라와 SNS가 발달해서인지 온갖 엽기적인 행태가 뉴스로 보도된다.
전염병 명부를 통해 이성에게 연락하고, 신고당하자 적반하장으로 나온 인간
새로 입사한 직원에게 안마를 받고 싶어하는, 뉴스사와의 인터뷰에서 '딸 같아서 그랬다'고 말한 인간
지하철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앞의 사람에게 오줌을 눈 인간
기타 등등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그는 이런 인간들의 '취업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토록 구조화되고 과학적인 채용 절차와 면접이라면, 이런 인간들은 회사 문턱에서부터 나가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저런 인간들도 직장이 있는데. 저런 인간들도 면접에 합격해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그는 왜 아직까지도 면접에 합격하지 못했나. 그는 깨닫는다. 저런 인간들의 덜 된 인간성보다도, 자신의 무능력이 더 크구나. 능력 없는 그를 뽑느니, 인간은 덜 되었더라도 차라리 저런 인간들을 뽑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리라.
그는 이런 자신의 생각을, 몇몇 지인들에게 살짝 내비쳤다. 그의 생각을 들은 지인들은, 뉴스에 나온 인간들에 대한 정보가 단지 '직장인'일 뿐이라 했다. 번듯한 곳을 다니는 것인지 회사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곳을 다니는 것인지, 근무 형태는 어떤지, 하는 일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뉴스에서는 아주 간략한 신상만 언급할 뿐이므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장기취준생 신세가 되어 면접에서 주구장창 탈락하는 그의 자존감은 이미 바닥을 치기 시작했고, 홀로 독서실에 죽치고 앉아 기른 분노는 그의 인식을 왜곡시키기에 충분했다. 매일같이 부정적인 뉴스를 찾아보며, 그는 범죄자가 직장인인지 아닌지 귀를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