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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Sep 18. 2022

취업준비생의 성욕

 상황의 힘은 강력하다. 인간은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상황은 그 상황에 처한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며, 정신은 신체에 영향을 끼친다. 즉, 외부 상황은 한 인간의 정신으로부터 신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가 처한 상황은 '계속된 취업 준비와 탈락'이었으며, 그 상황에서 부정적인 뉴스까지 일부러 찾아보았으므로 부정적인 생각의 전이가 가속화된다. 심연으로 계속해서 가라앉는 그의 정신이, 마침내 그의 신체에도 영향을 준다. 그의 경우, 번식 욕구가 현저히 줄어든다. 다시 말해, 그의 자위 횟수가 급감한다.



 그가 자신의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번식에 대한 욕구가 줄어든다. 그의 20대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다. 남들은 취업이다, 새로운 차다, 좋은 집이다, 결혼이다 하며 행복한 것 같다. 반면 그는, 취업이라는 첫 관문부터 가로막혀 있다. 벌써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날아갔으며, 그럼에도 아직 첫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뉴스를 보아하니, 취업 이후의 삶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물가와 집값은 치솟는데, 지금 돌아가는 모양을 보아하니 그가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는 자신이 집이란 것을 가져볼 수나 있을까 의문이다.


 결혼도 까마득하다. 언제 취업을 해서, 언제 돈을 모으고, 언제 어떻게 결혼을 하나. 취업이 되기는 할 것인가. 취업준비생인 자신이 벌써부터 결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취업도 못한 주제에, 벌써 수십 번 떨어진 주제에. 이렇게까지 떨어진다는 것은, 그의 존재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못하다는 반증이리라. 그의 몸을 이루고 있는 유전자는, 다른 사람들의 유전자보다 떨어지는가 보다.


 그의 유전자는 남들보다 뒤떨어진 유전자인 것은 아닐까. 이대로 가다가, 영영 취업을 못하고 그는 도태되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냉혹한 자연의 이치에 의하면, 제 밥값조차 못하는 유전자는 도태되어 마땅하다. 사회에서 도태되어 있는 그의 유전자는, 자연도태되어 없어져야 할 유전자다. 그런 그가 자식을 남기는 의미가 있는가. 어차피 도태되어야 할 유전자를, 아득바득 우기며 굳이 세상에 남겨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이 너무 부정적으로 흐른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쓸데없는 생각을 몰아내려 한다. 하지만 한 번 머리에 박힌 생각은, 계속해서 그의 정신을 잠식한다.



 이성적으로 번식에 대한 욕구가 없어졌다 하더라도, 번식 욕구는 이성보다는 신체의 영역에 속한다. 그의 이성과는 상관없이, 신체가 번식 욕구에 반응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가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선이 있다. 바로 자위행위다.


 그의 신체가 반응하면, 그는 자위를 할까 생각한다. 건강한 성인이라면 모두 자위를 하듯 그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취업준비생이라는 처지를 자각할 때마다, 그는 자위행위가 꺼려진다. 자위 이후에 찾아올 허탈감이 첫 번째 이유이며, 자신이 과연 자위행위를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두 번째다.



 자위행위는 흔적을 남긴다. 그가 자위행위를 하고 아무리 깨끗이 치우더라도, 어딘가에는 흔적이 남는다. 아무리 뒤처리를 해도, 그가 뿜어낸 유전자는 어딘가에 분명 남아 있을 터다. 그렇게 남아있을 흔적은 결국 누가 치우나. 그와 함께 사는 가족인 부모님이, 언젠가 이것저것 청소하면서 치우게 되리라. 그는 이 부분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자위 행위를 한다는 것은 불효다. 그는 자신이 집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것이 불효이자 죄를 짓는 것 같다.


 나이만 차고 몸만 컸지, 아직까지 사회에서 1인분은커녕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다. 그런 와중에도 욕구는 해소하고 싶은가 보다. 아무런 쓸모도 없는 주제에, 욕구는 해소하겠다며 도태될 유전자를 방출해서 주위를 더럽힌다. 그 해소의 흔적마저 자신의 손으로 깨끗이 치우지 못할 바엔, 자위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의 자위행위가 급감한다. 가끔씩 몸이 반응하긴 하지만 그의 뇌는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번식 욕구가 조금씩 통제되기 시작한다. 얼마 뒤부터 그는 자위행위를 완전히 끊는다.




  번식 욕구는 동물적 본능에 가깝다. 인간도 부분적으로는 동물이지만, 인간에게는 동물과 다른 측면도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번식 욕구도, 동물적 본능 이외의 다른 부분으로도 이뤄져 있다. 인간의 번식 욕구와 동물의 번식 욕구는 많이 닮아있으면서도 많이 다르다.


 그는 자신이 자위행위를 통제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통제한 것도 맞지만, 집중하지 못했던 측면도 있다. 자위행위를 비롯한 번식 욕구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번식을 향한 일념으로, 오롯이 집중해야 오르가즘이 가능하다. 집중력이 깨지는 순간, 성기능은 여러 면에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발기부전, 불감증, 지루, 조루 등 대부분의 성기능 장애는 심리적 요인으로부터 기인한다. 성기능은 잡생각에 취약하며, 인간은 동물보다 생각이 많다. 성기능이 건강한 사람들은, 동물적이거나, 고도의 집중력을 가진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그도 일종의 성기능 장애를 겪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성적 욕구가 일어나려 하다가도, 자신의 상황을 가만 생각해보고 있노라면 이내 욕구가 사라진다. 그의 이성은, 그의 신체가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계속해서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여느 TV 광고에서 사용하는 '고개 숙인 남성', '남자는 기를 살려줘야 한다' 등의 농담 섞인 비유에 동감한다. 동시에, 사회 고위층 남성의 그 이해할 수 없는 혈기왕성함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계속된 패배감과 좌절감이 나이에 상관없이 한없이 작게 할 수 있다면, 반대로 계속된 성취감과 자신감은 나이에 상관없이 한없이 크게 할 수도 있으리라.




 자격이 없다 생각하여, 현실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일차원적인 쾌락이라고 생각되어 자위를 그만둔 그다. 그는 번식 욕구를 통제하고자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애버리려는 것은 아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니, 그는 번식 욕구를 통제한 채 뒤로 미뤄두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몸이 반응할 때마다 나름 안심한다. 자위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그의 신체는 쇠하지 않았구나. 아직 충분하구나 하는 생각이다. 쓸모가 있는지 정도만을 확인하고 그는 다시 현실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번식 욕구는 이내 사라진다.


 그가 하루에도 몇 시간씩 보는 유튜브 중, 자기계발 관련 채널이 있다. 해당 채널에서는, 자기계발의 일환으로 삼을 수 있는 행동을 몇 가지 소개한다.

 새벽 일찍 일어나 조깅하기

 일기 쓰기

 찬물로 샤워하기

 금딸 (자위를 하지 않는 것)

 등등...


 그가 자위행위를 멈춘 것은 자기계발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쾌락을 느낄 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자위행위를 끊는 것이 자기계발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그는 기분이 좋다.



 자위행위를 그만둔 것이 그가 생각한 것처럼 자책으로 인한 것인지, 20대가 저물며 신체도 같이 저물어 버려서인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는 자신의 신체는 문제가 없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버린다.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가 자위행위를 멈춘 것은 결과적으로 바람직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기에, 성욕이라는 일차원적인 쾌락으로의 도피는 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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