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준비 자료를 만들면서, 그는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을 눈여겨본다. 18번째 기업은 한국을 대표하는 커다란 ㄱ그룹 계열사이고, 더군다나 백화점 그룹 계열이어서인지 지원자가 많다. 간절하고 절박한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이 바글바글 모여, 18번째 기업 공채 단톡방을 만든다.
참여자가 하도 많다 보니, 채팅방은 늘 시끄럽다. 대부분은 소음에 가깝다. 너무 긴장된다느니, 꼭 들어가고 싶다느니, 다들 화이팅하자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던 어느 날, 면접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스터디를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온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면접을 보았지만, 면접 스터디는 단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다. 귀찮기도 하고,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하지만, 그렇게 혼자서 진행해온 면접들은 예외 없이 100% 모두 탈락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면접 스터디에 참석한다. 자신이 계속해서 탈락했던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면접 스터디를 통해, 진정한 면접 고수와 친구가 되어 18번째 기업에 붙을 수 있지 않을까.
1. 화상 스터디
스터디 인원은 총 4명이다. 스터디 인원들끼리 방을 따로 만들어서, 해당 채팅방에서 일정 등을 협의한다. 방을 만든 방장의 주도하에, 우선은 Zoom을 이용해서 화상으로 비대면 스터디를 진행하기로 한다.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간에 Zoom 회의실로 들어간다. 카메라를 켜고 접속하니, 스터디에 참석한 다른 인원들의 얼굴이 보인다. 스터디원들을 둘러본 순간, 그는 조금 놀란다. 그를 제외한 전원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익명으로 채팅만 주고받았기 때문에, 성별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는, 대부분이 남성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모두 여성이다. 그동안의 면접에서 계속 남성들만 상대해와서 그런지, 그는 약간 긴장한다.
1차 화상 스터디는 조용히 진행됐다. 저녁 시간에 집에서 참여하는 것이었을 테니 목소리가 작았으며, 자료 공유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화상 스터디를 시작하고 나서야 서로 자기소개서를 교환했다. 상대방의 자기소개서 내용을 알아야, 모의 면접관 역할을 할 때 제대로 질문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 명이 자기소개서를 올리면, 다른 인원들이 10분 정도 읽는 시간을 가지고 모의 면접을 10분 진행한다. 그렇게 4명 전부 모의 면접을 하니, 시간은 1시간 가까이 걸린다. 방장은, 오늘의 화상 스터디를 바탕으로 더 준비해서, 빠른 시일 내에 다 같이 만나서 스터디를 진행하자고 한다. 모두 동의한다.
2. 대면 스터디
그는 스터디원들이 모두 소극적으로 나오면 자신이 총대를 매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는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다들 취업에 진심인지, 일정 조율 및 회의실 예약까지 서로 하겠다고 나선다. 오히려 그가 다른 스터디원들의 주도에 따라간다.
약속된 날짜와 시간, 번화가에 위치한 스터디 카페 스터디룸에 4명이 모인다. 이미 화상으로 한 번 봐서인지, 얼굴이 익숙하다. 우선 자리를 세팅한다. 책상을 한쪽으로 밀고, 반대편에 의자 하나만 놓아 면접관과 면접자의 자리를 구분한다. 서로 가져온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교환하고, 마지막으로 점검 시간을 갖는다. 누구는 종이로 출력해오고, 누구는 파일로 보내는 등 각양각색이다. 물론, 모두가 노트북 하나씩은 갖고 있다.
모의 면접을 함께 진행한 스터디원들은 다음과 같다.
그
스터디원 1 : 인사 직무 지원, 모 대학교 조직심리 석사, 중소기업 인사 아르바이트
스터디원 2 : 전략기획 직무 지원, 외국 국제학교 출신, 외국계 자동차보험사 인턴
스터디원 3 : 물류 직무 지원, 모 대학교 물류학과, 인턴 2회, 대외활동 다수, 오스트리아 교환학생, 수상경력 다수
2-1. 잡담
자료 공유, 모의 면접 대형으로 자리 배치까지 완료했다. 스터디원들은, 약간의 농담과 잡담으로 분위기를 푼다. 요즘 채용 시장이 어떻다, 면접을 몇 번 봤냐, 무슨 질문이 나올 것 같냐, 18번째 기업 식품관에 가봤냐, 18번째 기업의 최근 행보가 어떻다더라 등이다.
혼자 독서실에서 독수공방하며 취업 준비만 하던 그는,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실로 오랜만이다. 긴장이 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스터디원들의 이력서는, 그의 이력서와는 달리 수많은 활동과 이력으로 빽빽하다. 다들 표정이 밝고 친절하며,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러한 스터디원들의 태도에, 그도 경계심이 조금씩 누그러지며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하긴 감출 만한 대단한 것도 별로 없다. 그 자신에게서 빼먹어봐야 뭐 얼마나 빼먹겠나.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서 신기한데, 또 그 사람들이 나름 괜찮은 것 같다. 그는 은근슬쩍 다른 스터디원들을 관찰한다. 100% 정확하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스터디원들이 공유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말투, 모의 면접을 진행할 때의 모습 등을 보면 대강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2-2. 모의 면접
한 명이 면접자, 다른 3명이 면접관 역할을 한다. 스터디원이 4명이니, 모의 면접은 총 4번 진행한다. 모의 면접 진행 순서는 사다리 게임으로 정했다.
스터디원 1
- 스터디를 만든 주최자다. 어릴 적부터 독립심이 강했고, 이러한 성격을 바탕으로 주변 친구들의 어려움을 포착해 해결해주는 경험을 많이 했다. 다른 이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경험에 더해, 중소기업 인사팀에서 채용 아르바이트를 하며 솔루션을 제시해 면접 참석 인원을 2배로 늘렸다. 데이터를 통해 채용 트렌드를 분석하기도 하고, 채용에 관심이 생겨 조직심리 석사까지 마쳤다. 18번째 기업의 HR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
- 스토리가 뛰어나고 채용에 대한 관심이 잘 어필됐지만, 문제 상황 해결에 대한 서술이 아쉽다. 중소기업이라 저조했던 면접 참석률을 2배로 올렸다고 했는데, 자세한 방법을 물었을 때의 답변이 '전화 돌리기'였다. 조금 더 살을 붙여서 답변을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스터디원 2
- 어렸을 적부터 해외 생활을 경험했고, 대학교에서도 해외 연수를 많이 했다.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도전하여, 토론이 가능할 정도의 영어 능력을 획득했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기획 관련된 교내 활동 경험도 많고, 외국계 회사 인턴도 두 번이나 했다. 모의 면접 시 대부분의 답변이 해외 생활, 해외 연수를 나갔을 때의 경험 위주다.
- 면접 준비가 다소 부족하다. 모의 면접이라 가볍게 준비한 것일 수도 있다. 처음 모의 면접을 시작할 때, 스터디원 2는 직무와 산업 관련해서는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인성 위주로 질문해달라고 했다.
또한, 18번째 기업 지원 동기가 불명확하다. 기획 관련 경험이 많긴 하나, 가장 최근의 인턴 두 번이 모두 외국계 회사이며 식품과는 관련이 없다. 그가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자, 스터디원 2는 자신도 인지하고 있고 고민이라고 답한다.
스터디원 3
- 개인적으로 그는, 스터디원 3의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무표정에 가깝고, 말투도 차가운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항상 틀리기 마련이다. 스터디원 3은, 회의실 예약을 스스로 자원했고 면접 스터디 진행도 도맡았다. 모의 면접을 할 때, 다들 녹음기를 켜놓고 있었는데도 스터디원 3은 회의록을 작성하듯 모든 질문과 답변을 자신의 노트북에 타이핑해 적었다. 나중에 써먹을 자료를 만드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적은 자료를 다시 읽고 다른 스터디원에게 꼼꼼하게 피드백을 해주었다. 그는 스터디원 3의 이미지가, 첫인상으로부터 완전히 뒤집힘을 느낀다. 만일 이 스터디에서 최종 합격자를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그는 스터디원 3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스터디원 중 교내활동, 대외 수상, 인턴 경력이 가장 많다. 무엇보다도, 모든 활동들이 '물류'라는 키워드로 통한다. 그가 보기에, 직무 관련해서는 모의 면접에서도 흠 잡을 데가 없었다. 하지만 피드백을 주긴 해야 하니, 그는 억지로 쥐어짜듯 약간 걱정이 되는 점을 언급한다. 스터디원 3은 자신의 강점이, 타인에게 잘해주는 것(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비슷하다)이라고 했다. 그는 이 부분이, 얼핏 잘못 들으면 타인에게 휘둘린다고 이해할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강점이니, 타인에게 무엇을 해준다기보다는 본인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춘 강점이었으면 더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피드백을 준다.
한눈에 봐도, 스터디원들은 그보다 나이가 어리다. 또한, 그보다 면접 경험도 적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되도록 말을 아끼고자 노력한다. 간만에 사람을 만나 신기한 데다, 탈락이긴 하나 면접 경험도 많으니, 자칫 방심했다간 그 혼자서 신나게 떠벌대는 모양이 될 수 있으리란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사다리 게임에서 그는 가장 마지막 순서로 당첨됬다. 그는 실제 면접보다는 덜 긴장한 상태로, 면접자 자리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