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얼굴 학생 Sep 11. 2022

24번째 기업, 28번째 면접

얼마나 야한 여자를 만났길래, 흐어허허허

3층으로 올라가자, 한 직원이 그를 맞이한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어느 방에 들어가니, 대기하는 인원이 하나 있다. 그와 함께 면접을 볼 경쟁자다.


 면접 대기실은, 백화점 건물 구석에 위치한 방으로 사면이 밀폐되어 창문이 없다. 크기도 작아서, 그는 갑갑함을 느낀다. 잠시 뒤 직원이 들어와, 엘리베이터까지 그와 경쟁자를 인솔한다. 몇 층에 올라가시면 안내해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며, 엘리베이터를 불러주고는 어딘가로 가버린다. 그와 경쟁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말이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내받은 층에 내리자, 비로소 인사팀 직원이 나온다. 안경을 낀 인사팀 직원은, 바로 면접 진행하겠다며 그와 경쟁자를 면접실로 인솔한다.



면접실에 입장하여, 곧 면접이 시작된다. 24번째 기업에서의 28번째 면접. 처음에는 보통 면접처럼 흘러갔지만, 중반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달으며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다.



24번째 기업, 사류영업 직무 면접


면접자 : 총 2명, 모두 남자

  다부진 체격, 무언가 발라서 세운 머리, 잘생긴 얼굴의 면접자 1

  그


면접관 : 총 3명, 모두 남자

  좌측 - 구릿빛 피부, 약간 긴 구레나룻, 살짝 세운 앞머리, 정장을 입은 40대 초반 면접관 1

  중앙 - 키는 작지만 어깨가 넓고 둥근 체구, 둥그렇게 나온 배, 담배를 좋아하는 듯 검은 피부, 커다란 코, 사각진 턱, 가늘게 찢어진 눈, 테가 얇고 네모난 안경을 낀 40대 후반~50대 면접관 2

  우측 - 하얀 피부, 댄디한 인상, 표정에서 약간 짜증이 묻어나는 30대 후반 면접관 3 

  좌측 구석 - 중앙 면접관의 성화에 못 이겨 자리에 앉은 인사팀 직원


 면접실에 들어갔을 때, 면접관 1과 3은 자리에 앉아 있다. 면접관 1과 3이 한 자리를 띄워 앉았기 때문에, 그는 원래 면접관들이 그런 식으로 자리를 잡는가 보다 생각한다. 그런데 잠시 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면접관 2가 들어온다.



  면접관 2 : 자, 안녕하십니까!

  면접자 일동 : (어리둥절하여)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1 : (중앙 자리에 들어가기 쉽도록 자리에서 일어나 비켜준다)

  면접관 2 : (자리에 앉아) 자, 면접 시작합시다.

  인사팀 직원 : (인솔이 끝났으니 면접실에서 나가려 한다)

  면접관 2 : 어이, OO이! 왜 나가?

  인사팀 직원 : (당황한 듯) 네? 저는 또 일하러 가야죠.

  면접관 2 : 무슨 소리야? 너도 저기 끝에 자리 하나 잡고 앉아.

  인사팀 직원 : 네? 저도 앉으라고요..?

  면접관 2 : 그래. 너가 인솔한 면접인데, 면접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너도 알아야 될 거 아냐? 면접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봐두고. 너도 보다가 중간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인사팀 직원: 아... 네


 인사팀 직원은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구석 자리 하나에 조심스럽게 앉는다. 몸가짐으로 보아, 인사팀 직원은 상당히 예의 바르고 약간은 내성적인 듯하다. 혹은, 상사인 면접관 2가 상당히 깐깐해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



  면접관 2 : 자, 그래요. 면접 시작하죠. 어디... 자기소개 한번 해보세요. 면접자 1 씨?

  면접자 1 : 안녕하십니까, 더 나은... ...

  그 : 네, 안녕하십니까! 24번째 기업 사류영업 직무에 지원한 하. 얀. 얼. 굴.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강한 실천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 생활인 공놀이를 통해... ... 이상 두 가지 강점, 강한 실천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24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지원자 하. 얀. 얼. 굴.입니다. 감사합니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면접관들은 지원자의 거주지와 가족사항을 묻기 시작한다. 이력서의 해당란을 비워놓은 그에게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면접관 3 : 면접자 1 씨, 지금 XX동에 살고 계시군요?

  면접자 1 : 네, 맞습니다.

  면접관 3 : 자취하시나요?

  면접자 1 :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면접관 3 :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


  면접관 3 : 어, 하얀 얼굴 씨는, 가족사항 란이 공백이네요. 작성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그 : 아, 필수 사항이 아니어서 적지 않았습니다.

  면접관 3 : 지금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그 : 네, 현재 XX동에 살고 있으며, 가족과 동거하고 있습니다.

  ...


  면접관 1 : 면접자 1 씨, 군대를... 카투사를 갔다 왔어요?

  면접자 1 : 네 맞습니다.

  면접관 1 : 카투사가, 미군인가요?

  면접자 1 : 미군과 함께 있는 한국군입니다.

  면접관 1 : 어떻게 갔다 오셨나요?

  면접자 1 : 대학교를 다니다가, 군대 지원할 나이가 되어서 카투사를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카투사가 경쟁률이 워낙 높아서,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1년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랬는데 유학 도중, 카투사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학 도중에 돌아와 카투사로 군 생활을 했습니다. (그도 카투사 지원을 했었지만 떨어졌다)

 

  면접관 3: 면접자 1 씨, 인턴 경험이 있네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면접자 1 : 네, 철강 회사와 화장품 회사에서 인턴을 했습니다. 화장품 회사의 경우는, 직접 전시회 부스에서 홍보하는 일을 맡았었습니다.

  면접관 3 : 해보니 어떻던가요?

  면접자 1 : 재밌었습니다. 저는... ...


 해외영업 직무에 알맞는 인턴 경험이다. 그는 자신이 조금씩, 면접자 1에게 밀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면접관들의 질문과 관심이 면접자 1에게 쏠리고 있다.


  면접관 2 : 면접자 1 씨, 헬스 트레이너를 했어? 언제부터 한 거야?

  면접자 1 : 대학교 재학 중에 했습니다.

  면접관 2 : 허허, 유학도 가고, 인턴도 하고, 트레이너도 하고, 참 바빴구먼.

  면접관 1 : 그럼 얼마나 하신 건가요?

  면접자 1 : 한...  6년 정도 한 것 같습니다.

  면접관 1 : 트레이너를 하셨으면, 지금도 하고 계신 것 아닌가요? 본인 회원들이 있을 텐데, 입사했을 때는 어떻게 할 건가요?

  면접자 1 : 아, 그 부분은 문제없습니다. 취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트레이너 마지막 1년 동안 인수인계를 했습니다. 제가 기존에 관리하던 회원들은 인수인계하는 등의 절차였습니다. 현재는 인수인계가 끝나, 업무 투입에 문제가 없습니다.

  면접관 3 : 면접자 1 씨가 관리하던 회원이 몇 명 정도였나요?

  면접자 1 : 00명 정도 됐습니다.

  면접관 1 : 그 정도 회원이면 수입이 어느 정도 됐을 거 같은데. 왜 트레이너 생활을 그만두고 회사원을 하려고 하나요?

  면접자 1 : 아, 그 부분은... ...


 면접자 1은, 지금껏 그가 보아왔던 예체능 계열 지원자(음악, 연극, 체육 등)들 중에서 가장 면접 준비가 잘 되어 있다. 답변에 일관성이 있고, 면접 자리에 알맞게 다듬은 답변들이다. 그는 자신이 이제는 밀리다 못해 헬스 트레이너 지원자에게조차 밀리는 것인가 생각한다. 하지만 면접관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아무것도 없는 그보다는 트레이너와 인턴 경험까지 있는 면접자 1에게 전폭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면접관 2는 아직까지는 말이 적다. 이력서를 훑어본 듯하다. 이력서 훑어보기가 끝났는지, 면접관 2가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면접관 2가 입을 여는 순간부터, 주옥같은 명대사가 꽤 많이 나온다.



  면접관 2 : (갑작스럽게) 하얀 얼굴 씨, 경영이 뭐야?

  그 : (당황스럽지만) 네? 경영 말씀이십니까. 기업이 잘 돌아가게끔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2 : 영업은 뭐야?

  그 : 소비자에게, 제품이나 상품을 파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나한테 본인을 영업해봐. 본인이 왜 우리 회사에 뽑혀야 하는지 말해봐.

  그 : (어이가 없지만) 아, 저는 경영학도로써, 학교에서 기업의 생리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하며 목표를 이뤄보았고, 졸업 이후에는 100권이 넘는 독서를 하며 스스로 생각을 정립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다른 지원자들과는 차별되는...

  면접관 2 : (답변을 중간에 끊으며) 독서? 나는 독서는 잘 모르겠단 말이지. 요즘 다들 대학 나오고, 우리 회사에도 석사도 있고 박사도 있어요. 그런데 내가 그런 사람들이랑 얘기를 해보면, 이 사람들이 나보다 아는 게 많은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면접관 1,3/면접자 일동 : 아, 그렇습니까

  면접관 2 : 책이라는 게 그래. 아니 막말로 요즘 CD롬 하나에 책 몇 천권이 들어간다매. 그런데, 그런 요즘 세상에서 책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야. 아까 뭐, 백몇 권을 읽었다는데. 그래봐야 CD롬 하나만도 못한 건데. 안 그래?


 면접관 2의 이 발언에 대해, 그는 할 말이 많다. CD에 책 몇 천권이 들어간다 해도, 인간은 컴퓨터처럼 CD 안의 데이터를 인식할 수도, 복사해서 붙여 넣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기술이 발전했으니 독서가 필요 없다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

 두 번째, 독서는 양이 아닌 질에 의해 좌우된다. 그는 이미 군대 시절, 자기계발서 수백 권을 읽으며 이를 체득했다. 영양가 없는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봐야 의미가 없으며, 또한 남이 정리해놓은 책 요약을 보는 것도 딱히 의미가 없다. 독서라는 활동은, 필연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행위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모든 활동들을 값지게 만드는 요소는, 당연한 소리지만 오래도록 공들인 시간이다. 운동해서 몸을 가꾸는 행위, 독서를 하는 행위, 음악이나 영화를 보는 행위 등 모두 '어느 정도 절대적인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그 시간을 줄이려는 여러 편의 수단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그러한 편의 수단을 사용할 경우, 기존의 목표가 훼손되거나 행위 자체의 의미가 변할 수 있다.


 CD에 책 1000권이 저장되어 있다 한들, 그것은 자신이 체득한 정보가 아니다. 1000권 분량의 활자가 적혀 있는 CD를 갖고 있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는가. 그렇게 기술을 맹신하는 면접관 2는, 1000권의 책이 저장되어 있다는 CD를 열어보기나 했을까. 몇 천 몇 만권의 책이 들어간 CD일지라도 활용하지 않는다면, 면접관 2가 평생 동안 방문하지 않았을 도서관처럼 아무 쓸모가 없다. 



 이런 말을 해주고 싶지만, 그는 면접자일 뿐이다. 광대를 올리고 웃는 얼굴, 면접관 2에게 경청하는 가면을 장착한다. 딱 봐도, 면접관 2는 면접관들 중 가장 직급이 높다. 그런 면접관 2를 누가 제지하겠는가. 아무런 제지가 없자, 면접관 2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면접관 2 : 그래서 참, 책이랑 공부랑 일하는 거랑은 또 많이 다르단 말야. 면접자 1 씨, 공부 잘하나?

  면접자 1 : (당황하여) 네? 아, 보통입니다.

  면접자 2 : 하얀 얼굴 씨는 공부 잘하나?

  그 : 열심히 합니다.

  면접관 2 : 열심히가 아니라 잘해야 된단 말이지. 하얀 얼굴 씨, 공놀이 좋아한다고 써놨던데, 포지션이 뭐야?

  그 : 센터입니다.

  면접관 2 : 공놀이 선수 중에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야?

  그 : 음... 아무래도 MJ를 제일 좋아합니다.

  면접관 2 : MJ가 왜 공놀이 황제로 불렸는지 알아? 뭐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 : (무슨 퀴즈쇼 같다) 득점을 잘해서 아닙니까?

  면접관 2 : 아니지 아니지. 기회에 강해서 그런 거야. 위기 때마다 터뜨려주는 그 한방! 그래서 황제라고 불린 거야. 존경한다면서 그것도 몰라?

  그 :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한다)


 

 면접관 2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이날의 면접은 약 40분 정도 걸렸는데, 면접관 2가 본인 이야기한 시간만 족히 30분은 되는 듯하다.


  면접관 2 : 여러분이 지금 사류 영업 직무를 지원했는데. 사류 영업이라는 게 참 쉽지가 않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좋지. 멋있게 양복 딱 입고. 해외 출장도 자주 나가고. 나도 어제 출장 갔다가 왔는데. 우리 아들 선물을 사 왔거든. 아들은 아주 좋아해. 아빠 출장 자주 갔다 오시라고, 지도 커서 아빠 같은 일하고 싶대. 근데 우리 실상은 그렇지가 않거든. 월급은 박봉이지, 양복 입고서 맨날 샘플 자르고 붙이고 자르고 붙이고 하는 게 일이야. 우리 회사가 또 지금 공장이 베트남에 있단 말이야. 그래서 베트남을 정기적으로 가야 돼. 아, 거기, 입사하면 베트남 갈 수 있어?

  면접자 1 : 네? 네, 갈 수 있습니다!

  면접관 2 : 그쪽은?

  그 : 네, 갈 수 있습니다. (이런 면접 상황에서 안 간다고 할 사람이 있겠나 의심스럽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우리 회사가 왜 베트남에 공장을 차린 거 같애?

  그 : 아무래도, 인건비 때문이 크지 않겠습니까? 최근 최저 시급 인상으로 인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베트남으로 공장 진출을 한 것 같습니다. 또한, 베트남에서도 정부 주도하에 도이머이 (공업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건비 감축, 그리고 도이머이 정책으로 인해 베트남 공장 설립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옮긴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성의있게 답변했는데, 면접관 2는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어차피 답변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듯, 다시 본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면접관 3은, 또 시작했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이 없다.


  면접관 2 : 이게 해외 출장이란 게, 처음에는 영어도 많이 쓰고 해서 좋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냐. 근데 나는 또 이상하게 영어가 잘 안 는단 말야. 어? 왜 그럴까 면접관 1?

  면접관 1 :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며) 네? 아, 다들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면접관 2 : 내가 지금까지 10년을 해외출장 왔다갔다 했는데, 도무지 영어가 안 는단 말야. 근데 그래도, 업무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어. 이, 바디랭귀지로 하면 다 통한단 말야. 시차 적응도 힘들지, 그리고 또 일하다가 문제도 많이 생겨. 아니 그, 내가 대리 때, 갑자기 우리 과장이 나더러 B/L(선화증권, 수출 시 배에 선적해야 할 서류다)을 받아오라는 거야. 출항하기 3일 전에!

  면접관 1 :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히익 3일 전에요?!

  면접관 2 : 그러니까! 3일 전에 받아오라는 게 그게 말이 되냐? 

  면접관 1 :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면접관 2 :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담당 회사 가 가지고 그냥 사무실에 누워버렸지. 내가 사무실 한가운데에 의자 두 개 딱 놓고 누워서, 아 당신들 오늘 B/L 안 주면 나 안 간다고. 그렇게 새벽까지 버텼어. 그랬더니 주더만.

  면접관 1 : 오, 대단하시네요.

  면접관 2 : 이렇게 참, 사류영업 일하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난단 말야. 면접자 1, 사람 많이 만나는 게 적성에 맞을 거 같어?

  면접자 1 : 네,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2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면접관 2 : 내가 오랫동안 해외를 다니다 보니깐, 국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몰라. 해외 출장 한창 다니다가,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단 말야? 그러면 나는 지인들 다 우리집으로 불러모아가지고, 술 마시면서 한참 동안을 얘기를 해. 내가 없는 동안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응? 아니 오랫동안 없었으니까, 계속 한국에 있었던 다른 친구들한테 물어봐야지 안 그래? 그래서, 친구들한테 여러 가지 물어보지. 정치, 경제, 사회, 조그마한 거 까지 다. 막, 조국이 왜 욕먹는 거야? 이런 것도 물어보고. 아니 나는 진짜 궁금해서. (이 부분에서, 그는 면접관 2가 정치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면접관 2는 이야기 중간중간에 함정을 설치해두었는데, 그러한 함정은 대부분 그를 겨냥한 함정이었다. 앞서 존경하는 공놀이 선수도 그랬고, 곧바로 이어질 함정도 그렇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호주에서 시드니에도 있었나?

  그 : 시드니에는 잠시 머물다가, 멜버른으로 이동했습니다.

  면접관 2 : 시드니에서는 왜 이동했어?

  그 : 주차 공간도 협소하고, 워홀러가 많아 일자리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해서 시간을 계속 흘려보내기보다는 여행을 더해 멜버른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면접관 2 : 그 말은, 시드니가 레드오션이니 피해 갔다는 말 아냐?

  그 :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피했다기보다는, 비자 기간이 짧으니 여행과 멜버른을 선택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면접관 2 :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우리 섬유 산업이 지금 레드오션이야. 그러면 하얀 얼굴 씨는 레드오션을 피해서 다른 데로 갈 건가? 레드오션이더라도, 어떻게 더 잘해서 블루오션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되는 것 아니냐 말이야.

  그 : (모 만화에 나오는 함정카드 발동이 생각난다. 뭐 어쩌라는 건가 싶다)



  면접관 3 :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끼어들며) 면접자 1 씨, 자기소개서 마지막 문항에서, 직장 상사와의 갈등이 있을 경우 상사를 따르겠다고 적었네요. 맞나요?

  면접자 1 : 네 맞습니다.

  면접관 3 :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면접자 1 : 저는 트레이너 생활을 하면서도... ...

  면접관 3 : 하얀 얼굴 씨?

  그 : 네, 저도 갈등이 생기더라도 상사의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저보다 더 오랜 업무 경험을 갖고 있으니 제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파악하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부당하다 생각되는 것은 저의 주관적 의견일 뿐이니, 일단 업무를 수행한 뒤 궁금한 점을 따로 묻겠습니다.


면접관 2는 여기서도 끼어든다.


  면접관 2 : 그래, 이 마지막 질문 이거. 상급자와 의견이 맞지 않을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니, 이거는 있으나 마나 한 질문 아냐? 여기다가 대고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지원자가 어딨어? 이 질문 이거 그냥 문항 수 맞추려고 집어넣은 같은데. 누가 집어넣은 거야? (구석에 앉은 인사팀 직원을 향해) 너가 쓴 거 아냐? 인사팀에서 이거 질문 다 확인하는 거로 아는데 인사팀에서 넣은 거지?

  인사팀 직원 : (당황스럽게 웃는다) 아, 하하...

  면접관 2 :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상사에게 본인을 맞추겠다고 답했는데, 사실 그건 내가 원하는 답변이 아니야. 나는, 아무리 상사더라도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은 거는 끝까지 밀어붙여보겠다! 들이박아 보겠다라는 답변을 원해. 남자가 돼서, 그 정도 깡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응? 물론, 나한테는 절대 그렇게 하게 두진 않을 거지만 말야.

  그 : (뭐 어쩌라는 건가 싶다)



 면접관 2의 기나긴 연설이 서서히 끝나간다. 하지만 면접관 2의 묵직한 한 방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면접관 2 : 자, 그래요.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한 거 같은데, 아닌가? 하하. 자 슬슬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다들 영업 지원자잖아? 근데 아직까지도 내가 얼굴을 제대로 못 봤네. 이게 이력서 사진으로 보는 거랑, 실제로 보는 게 또 다르거든. 어디, 다들 마스크 내리고 얼굴 한 번 봅시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면접관들도 다 마스크 내리고 진행했으니까?

  면접자 일동 : (공손하게 고개를 돌리고서 마스크를 벗는다)

  면접관 2 : (그를 보고서는) 음...

                  (면접자 1을 보고서는) 음... 그래요. 근데, 자네는 수염이 뭐 이렇게 났어? 면접인데 아침에 면도 안 했어?

  면접자 1 : 아, 했습니다.

  면접관 2 : 아침에 면도했는데 수염이 왜 이렇게 났어?

  면접자 1 : 아, 그, 아침에 면도하고 나서 지금 면접 보는 동안 이렇게 길었습니다.

  면접관 2 : 뭐? 아침에 깎았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길었어? 아니, 무슨 야한 생각을 했길래 수염이 그렇게 빨리 기는 거야? 어? 흐어허허허허! 어? 오는 길에 어떤 야한 여자를 만났길래? 흐어허허허!

  면접관 1/3, 면접자 일동 : 하하...


 면접관 2의 이 발언을 끝으로, 면접관 2에 대한 인상이 부정적으로 각인된다. 면접관 2의 이 발언으로 인해 그의 기분이 직접적으로 상한 것은 아니다. 그는 남성이며, 면접실 내부 참석인원들은 전원 남성이었고, 면접관 2가 발언한 것도 특정 여성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면접관 2의 이 발언이 면접장에서 면접관으로써 할 만한 발언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든다. 계속된 면접관 2의 연설에 마지막 한 방이 더해지면서, 그는 24번째 기업이 고이고 썩은 기업이라고 결론 내린다. 면접관은 곧 기업의 얼굴이다. 면접관 2는 이 점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망각한 것인지, 예의 치레로 가면을 쓸 정도의 수고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취업준비생인 그로서는, 면접에서 이렇게 시원하게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면접이 끝나고, 그와 면접자 1은 면접실에 나온다. 인사팀 직원의 인솔을 따라가니, 총무팀인 듯 보이는 곳이다. 인사팀 직원이 내미는 종이에 서명하고, 면접비를 받는다. 면접비는 2만 원이다. 그가 보통 받았던 면접비는 3만 원이다. 면접도 개판에, 면접비조차 아까워하는 기업이구나 생각한다.


 인사팀 직원은 면접자들을 엘리베이터까지 바래다준다. 사무실을 벗어나자 인사팀 직원이 어색함을 깨고 입을 연다.


  인사팀 직원 : 면접 보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상무님께서 말투가 조금 그래서 놀라셨죠.

  면접자 일동 : 아, 아닙니다. (면접관 2는 상무였다)

  인사팀 직원 : 말은 그렇게 하셔도 좋은 분이시거든요. 다들 수고하셨어요.

  면접자 일동 : (엘리베이터를 타며) 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온다. 면접자 1은 수고하셨다며, 자신은 이쪽 방향으로 간다고 한다. 옆자리에 있어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는 면접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면접자 1을 제대로 마주한다. 잘생긴 외모, 키가 크진 않지만 몸이 다부지다. 역시 헬스 트레이너 출신이구나. 면접자 1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그는 느릿느릿 출구로 향한다. 


 대기실과 면접실은 창문 하나 없어 갑갑했는데, 아래 백화점은 빛이 잘 들어오며 1층부터 천장까지가 탁 트여 있다. 고객을 위한 공간과 직원을 위한 공간의 대비가 극명하다. 답답했던 면접실 때문인지, 억지로 장단을 맞춰가며 들었던 연설 탓인지, 그는 배가 고프다. 마침 탁 트인 백화점 1층에는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쉑X이 입점해 있다. 그는 정장을 입은 채로, 쉑X 햄버거를 먹으러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24번째 기업 본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