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수치심, 신체
계속되는 취업 준비 상황에서, 그는 독서를 했다. 이 시기 그가 읽은 책 중, 아주 가끔 그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확장시켜준 책들이 있었다. 한스 페터 뒤르의 책 3권이 바로 그런 종류의 책이다.
처음 시작은, '음란과 폭력'이라는 책이었다. 300번대 사회과학 도서들이 꽂혀있는 책장을 서성거리던 그는, 제목부터 자극적인 이 책을 손에 집었다. 꽂혀있는 책을 빼냈을 때 보이는 표지는, '음란과 폭력'이라는 제목보다도 더 자극적이었다. 표지의 그림은, 중세 시대풍이며 침대와 한 쌍의 남녀를 그려놓았다. 여성이 침대에 누워있고 남성이 서서 삽입하는 듯한 모양새인데, 색 처리를 붉게 해서 그림의 분위기가 음산하고 괴기하다. 로맨틱하고 에로틱하다기보다는, 강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그림이다. 이러한 강렬한 그림을 표지로 한, '음란과 폭력'이라는 책을 그는 지나칠 수 없었다.
그가 읽었던 여느 사회과학 분야 도서와 마찬가지로, '음란과 폭력' 또한 몇 백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도서다. 그는 처음에는, 책 중간중간에 보이는 삽화가 궁금하여 책을 빌렸다. 강렬한 표지만큼이나, 책 중간에 삽입된 삽화들도 자극적인 삽화가 많았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책의 내용과 삽화들은 단순한 '춘화'를 넘어서는 것들이었다.
단순히 '성'에 대한 호기심, 비밀스러우면서도 엿보고 싶은 '성'에 대한 책이었다면 애초에 몇 백 페이지가 넘어갈 정도로 두꺼울 필요가 없다. 책의 저자 한스 페터 뒤르는, 여러 문화권을 답사하고 인류학적 자료들을 조사 및 비교하면서 '성'의 근본에 대해 접근하고자 했다. 책을 읽을수록, 그의 독서 목적에 부합하는 책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기나긴 취업 준비 기간으로 인해, 그의 번식 욕구 매커니즘도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던 때다. 단순히 야한 이야기, 야한 그림 정도로 끝나는 책이었다면 그는 조금 읽다가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단순하게 덮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음란과 폭력'은, 한스 페터 뒤르가 집필한 3부작의 하나다. '음란과 폭력'만 하더라도 몇 백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도서인데, 이만큼 두꺼운 도서가 두 권이나 더 있다. 그는 한스 페터 뒤르의 책을 읽을수록, 자신의 지식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점이 확실해질수록 다른 두 권의 책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저자는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한스 페터 뒤르는, 어떤 저명한 학자의 저명한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이 3부작을 집필했다. 저명한 학자는, 문명화 이론이라는 이론을 펼쳤다. 문명화 이론의 골자는 이렇다.
1. 인간은 미개하다.
2. 문화와 정치, 예절 등이 발달하면서 미개한 인간이 '문명화'되었다.
3. (미개한 원주민들에게 정치와 법 등을 가르쳐주어 '문명화'시켜야 한다)
언뜻 보기에 타당한 듯한 문명화 이론에, 많은 이들이 동의했다. 저명한 학자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명화 이론은 식민주의자들의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문명화 이론은, 인간의 '성'과 '수치심'에도 적용된다. 문명화되지 않은 미개한 인간들은 난교를 일삼으며, 나체일 때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서구 문명인들에게 널리 동의를 얻었다. 식민지 원주민들의 부실한 의복은 거의 벌거벗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항해를 했던 배의 선장들과 선원들에게서도 원주민들의 문란한 성생활에 대한 증언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문명화되지 못한 미개한 원시 상태의 인간들은, '수치심'을 모른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충분했다.
한스 페터 뒤르는, 광범위하게 지지를 얻고 있던 문명화 이론을 정면에서 반박한다. 특히, '성'과 '수치심'에 대해서 반박한다. 서구에서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원주민 사회의 자료를 방대하게 조사하여, '미개'한 원주민들도 나체와 성기에 대한 수치심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한 예로 뒤르가 조사하던 미개 문명의 원주민 여성은, 멀리서 옷을 갈아입다가 뒤늦게 뒤르의 존재를 인식하고는 자살을 시도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노라고 한참을 설득한 뒤에야 소동이 잦아들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원주민들이 나체일 때 수치심을 느낀다는 근거는 수없이 많다.
미개 문명에도 수치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힘에 더해, 한스 페터 뒤르는 서구 문명의 우월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서구 문명인들은 미개 원주민들보다 신체적 수치심을 더 느끼고, 성 생활은 더 정갈한가? 뒤르는 이를 반박하는 증거들을 열거한다. 세계대전 당시 나뒹구는 적 병사들의 시체에서 성기를 잘라내어 시체의 목에 쑤셔박는 것이 일상적으로 행해졌음을, 현대에도 강간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음을, 그 처벌은 완화되어 왔음을 방대한 조사를 통해 입증한다.
결론적으로, 서구의 문명이 원시 미개 문명보다 더 '수치심'을 느낀다는 근거는 없다.
서구 문명이 원시 미개 문명보다 더 '문명화'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인간은 원시 미개 문명이나 서구 문명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문명화 이론은, 암흑 시대의 인간들이 문명화 과정을 통해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한스 페터 뒤르는 이 문명화 이론을 정면으로 깨버렸다. 저자는 인구증가와 대도시의 익명성 증가라는 상황 속에서, 인간이 변치 않고 지녀왔던 본성을 통제할 수단을 찾지 못했다.
그는, 흐리멍텅한 밝은 미래보다는 차라리 이런 디스토피아적 결말을 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