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8번째 기업, 33번째 면접

화상 면접, 영어 면접

by 하얀 얼굴 학생

28번째 기업은, 전염병에 민감한지 모든 전형을 화상으로 진행한다. 그는 28번째 기업의 채용 전형이 끝날 때까지, 모든 전형을 집 안에서 실시했다. 그는 방문을 닫았지만, 방문 밖으로 새어나가는 자신의 목소리가 부담스러워서 아예 베란다에 앉아서 화상 면접을 본다. 베란다의 박스 위에 노트북을 놓고, 그는 타일 바닥에 앉아서 높이를 맞춘다.



28번째 기업, 해외영업 신입 면접 (화상 면접)


면접자 : 총 6명 (남자 4 / 여자 2)

중국 거주, 부동산 관련 일을 했다는 30대 중반(?) 남자 면접자 1

코트라에서 무역 관련 일을 해보았다는 남자 면접자 2

특징이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착한 인상의 남자 면접자 3

의류 업계 일을 해보았다는 여자 면접자 4

미국 대학원 졸업,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것 같은 20대 후반~30대 여자 면접자 5


면접관 : 총 6명 (남자 3 / 여자 3)

인사팀으로 보이는 남자 면접관 1

날카로운 눈매에 안경을 끼고, 실무진 대리로 보이는 30대 후반 여자 면접관 2

포니테일, 분홍색 가디건, 어깨가 넓으며 인상이 강해보이는 20대 후반~30대 여자 면접관 3

특징이 기억나지 않는 여자 면접관 4

특징이 기억나지 않는 남자 면접관 5

특징이 기억나지 않는 남자 면접관 6


의류 및 패션업종이어서인지 화상 면접이어서인지, 그의 면접 집중도가 떨어진다. 가뜩이나 면접자와 면접관의 수가 많은데, 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는 면접관이 절반을 넘는다. 발언이 많지 않았던 면접자와 면접관들의 특징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 면접에서, 대다수의 질문과 면접 진행은 여자 면접관이 진행한다. 그는 속으로, 28번째 기업은 의류 및 패션업이니만큼 여성들의 파워가 쎈 것이리라 생각한다.



카메라가 켜지고, 화상 면접이 시작된다.


면접관 2 : 안녕하세요.

면접자 일동 :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2 : 네, 반가워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면접자 1 씨?

면접자 1 : 안녕하십니까! 면접자 1입니다. 저는 부동산 일을 해본 경험이... ...

면접자 2 : 안녕하십니까! 코트라에서 인턴 경험을 가진 면접자 2입니다... ...

면접자 3 : 안녕하세요... ...

면접자 4 : 안녕하십니까! 의류 업계에서 일을 해본 지원자... ...

면접자 5 : 안녕하세요, 면접자 5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의류 공부를 통해... ...

그 : 안녕하십니까! 28번째 기업 해외영업에 지원한 하. 얀. 얼. 굴.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강한 실천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 생활인 공놀이를 통해... ... 이상 두 가지 강점, 강한 실천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28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지원자 하. 얀. 얼. 굴.입니다. 감사합니다.


면접자가 많아, 자기소개에만 10분 정도 소요된다. 이후 면접관들이 개별적으로 면접자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한다. 면접자 1에게는 부동산업계 일했던 경험 관련해서, 면접자 2에게는 코트라 인턴 관련해서, 면접자 4에게는 의류 업계 현황에 대해서, 면접자 5에게는 학교에서 배운 것에 대해서 질문한다. 면접자 5의 대답을 들으며, 그는 면접자 5가 패션 디자인 등의 전공생일 것이라 추측한다.



면접관 3 : 하얀 얼굴 씨, 감명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가요?

그 : (자기소개서에 썼던 내용을 그대로 외운다) 자기소개서에 적은 것처럼, 한스 페터 뒤르의 3부작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나체와 수치심에 대해 서술한 책입니다. 수치심이 인간의 본능이라 주장한 책입니다. 수치심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인간은 수치스러운 나체를 가리고자 할 것입니다. 그 역할을 하는 의복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 책입니다.

면접관 3 : (면접관 3은 애초에 카메라가 아닌 책상을 보고 있다. 그의 답변에도 반응이 없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지금까지의 경험이 우리 회사와 맞질 않는 거 같아요. 회사에 입사한다면, 본인의 경험이 어떤 식으로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나요?

그 : (타당한 질문이다) 맞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험들은 결국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며 목표를 달성했던 것에 초점을 맞춘 경험들입니다. 28번째 기업 해외영업 직무에 입사하면, 일을 해나가면서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상황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새로운 상황들에 대응하고 직무를 수행할 때에, 제 경험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면접관 2 :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그는 속으로, 자신의 답변이 썩 괜찮은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면접관 5 : (갑작스럽게) 하얀 얼굴 씨, 지금 면접 보는 장소가 꽤 특이하네요. 밖인가요?

그 : 아, 제 방 테라스에서 보고 있습니다.

면접관 5 : 아 뒤에 보이는 배경이, 유리에 반사되서 비친 거군요. 혹시, 지금 면접 보는 장소를 선택한 것에 무슨 의도가 있나요?

그 : 따로 의도가 있지는 않습니다. 가족들에게 방해가 될까 해서 베란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면접관 5 : 허허... 알겠습니다.



형식적인 문답이 끝나고, 면접관 1이 면접을 마무리한다.


면접관 1 : 이상으로 면접을 마치겠습니다. 바로 이어서 영어 면접을 진행할 테니, 면접자들께서는 그대로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면접자 일동 : 네.



카메라가 꺼졌다가, 잠시 뒤 켜진다. 장소와 배경은 그대로인데, 면접관들만 바뀌었다. 면접관 1/2/3만 남아 있고, 다른 면접관들은 퇴장한 상태다. 면접관 1은 인사팀 직원인지, 형식상 참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면접관 1은 영어 면접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영어 면접은 두 여성 면접관, 면접관 2와 3이 진행한다.


면접관 2 : 네, 그럼 바로 영어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OK, Please Introduce yourself.

면접자 1 : Hi, ... ... (영어실력 중상, 침착한 목소리, 무난한 영어 자기소개다)

면접자 2 : Hello... ... (영어실력 중하, 무난한 영어 자기소개다)

면접자 3 : Oh.. 어... (영어실력 하, 무난한 영어 자기소개다)

면접자 4 : OK... ... (영어실력 중하, 무난한 영어 자기소개다)

면접자 5 : Hello~ ... ... (영어실력 중, 발음을 많이 굴리는 영어다)

그 : Hello, ... ... (그동안 써왔던 자기소개를 그대로 영어로 변환한다)


영어 면접은, 면접관들이 면접자들에게 공통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됬다. 그는 이전 수십 번의 면접에서 영어 면접도 경험했다. 이전의 영어 면접들에서는, 면접관들의 영어가 약간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상대해서 그런지, 28번째 기업 면접관들의 영어 실력은 상당하다. 그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28번째 기업의 영어 면접관보다 더 나은 영어 면접관을 만나보지 못한다. 공통 영어 질문은 이렇다.


1) Why do you want to work in our company?

- 그는 28번째 기업이 의류업계에서 선두 1위를 달리는 기업이기 때문에 일하고 싶다고 대답


2) Tell us about your working style

그 : um... bit, workaholic? (약간 일중독자라고 어필)

- 그의 이 답변에, 영어 면접을 진행하던 면접관 2가 씩 웃는다. 썩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다.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가서, 썩은 미소에 가깝다. 그는 자신이 열정과 체력이 있으므로 일에 몰입한다고 답한다.


3) What's your hobby?

- 그는 공놀이와 독서라고 답한다.


개인질문 1) Tell us about book you currently read

- 어떤 책으로 답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영어 실력이 가장 나은 지원자는 단연 면접자 1이다. 면접자 1은 면접에 참여하는 장소가 아예 외국인 것처럼 보였고, 외국 생활을 많이 했는지 영어가 상당히 차분하고 편안하다. 하지만, 면접관들의 관심은 면접자 5에게 쏠렸다. 면접자 5의 영어 실력은 면접자 1보다는 조금 못하다고 할 수 있는데, 면접자 5는 목소리와 발음으로 이를 극복한다. 면접자 5는 영어를 할 때 유난히 발음을 굴렸으며, 특히나 톤이 높아지면서 발언이 귀에 콕콕 박혔다. 그로서는 약간 부담스럽기까지 했는데, 면접관들은 면접자 5에게 유난히 호의적이다.


면접관 2 : You said you had a work experience at the factory. Tell us about detail.

면접자 5 : Oh, yes I worked at the factory dealing with the 'pattern'. (패턴이라는 말이 나오자 면접관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I have to deal with... ...

면접관 2 : Weren't there any difficulties?

면접자 5 : Oh... the communication was an issue. At the factory, I have to work with my senior, who is more than 70 years old, man, know nothing about the pattern, but always said he's right. Every time I bring new pattern, he said no and.... !!@#$@!%@#^!@^#


면접자 5는, 자신이 외국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으며 현지 공장에서 '패턴' 관련 일을 했다고 말한다. 다른 모든 면접자들에게 깐깐한 눈빛을 보내던 면접관들은, 면접자 5의 답변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호의적으로 반응한다.


면접관의 '일할 때 어려움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면접자 5는 소통 관련해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답한다. 하지만, 내용을 들어보면 상사를 까내리는 내용이다. 남자이고, 패션과 패턴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라 대화가 아예 안 통해서 자신이 고생했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는 면접자 5의 이런 대답이 이해되질 않는다. 아무리 영어 면접이라 하더라도, 또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란 질문이었다 해도, 결국 답변은 자신의 잘못이었으며 자신이 극복했다는 식이 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대놓고 외부 환경이나 외부 인원을 깎아내리는 답변은 기업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일반적이라면 그렇다.


그런데, 면접관들은 면접자 5의 답변을 들으며 계속해서 미소를 띤다. 70대가 넘는 할아버지 남자 직원이라는 대목에서는, 아예 대놓고 웃어버리기도 한다. 그는 이 부분에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 그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패션업계 실무 경험자들만의 절절한 경험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여성인 면접자와 면접관들이 공공의 적인 할아버지 직원을 설정하여 무시하고 뒷담을 하는 것인가. 알 수 없다.




영어 면접 내내, 그는 면접자 5의 해외 경험과 공장 이야기를 들었다.

의류 관련 공부를 했고, 공장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할아버지 직원 때문에 고생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 가끔 웃음을 터뜨리는 면접관들.

영어 면접을 진행하는 면접관들의 영어 실력은 다른 어느 기업보다 월등했지만, 그는 자신이 본 것이 제대로 된 영어 면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면접관과 면접자들의 성비도 그렇고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고, 그는 자신이 의류/패션업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8번째 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