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번째 기업에 도착한다. 영업이익은 적자이고 방송정지 처분까지 받았지만, 사옥은 서울 한복판의 높다란 빌딩이다. 빌딩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내받은 층에 내린다. A4용지의 안내를 따라 면접 대기실에 도착한다. 이미 도착해있는 대기자들이 서넛 정도 있다. 잠시 뒤 인사팀 직원1이 들어온다. 정장 차림, 20대 후반으로 보인다.
인사팀 직원1 : 안녕하세요. ㄱㄱㄱ씨, ㄴㄴㄴ씨, 면접자 1 씨, 하얀 얼굴 씨 맞으시죠?
면접자 일동 : 네.
인사팀 직원1 : 여기서 잠시 대기하셨다가, 면접 시간 되면 엘리베이터 타고 위로 올라가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기다리는 동안, 그는 회의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무 공간을 살핀다. 방송사라 그런지, 직원 한 사람당 커다란 스크린 여러 대를 켜놓고 계속해서 보고 있다. 방송이 잘 되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인가. 건물이 크고 공간도 상당히 넓은데, 직원의 수는 많지 않다. 여러 스크린을 가진 몇몇 직원들이 차지한 공간 외에는, 빈자리도 빈 공간도 많다.
잠시 뒤
인사팀 직원1 : 네, 지금 올라가겠습니다. 짐을 다들 챙겨주세요.
4명의 면접자들은 인사팀 직원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인사팀 직원2가 기다리고 있다. 인사팀 직원1은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인사팀 직원2는 마른 듯한 체형에 안경을 꼈으며,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보인다.
인사팀 직원2 : 안녕하세요. 이리로 오세요. 여기, 면접장 앞 소파에서 대기하시다가 두 분씩 들어가실 겁니다. 짐이랑 다 여기 놓으시고 앉으세요.
면접장 문은 닫혀있으며, 안에서 문답이 오가는 소리가 들린다. 면접장 앞에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오래된 네모 각진 소파들이 회의 대형으로 놓여 있다. 손잡이와 프레임은 짙은 갈색, 쿠션은 검은색이며 프레임과 쿠션 모두 네모로 각진 모양이다. 않으면 엉덩이가 무릎 아래로 내려가는 낮은 높이의 소파다.
그를 포함한 4명의 면접자는 짐을 풀고 소파에 앉는다. 소파가 푹신하긴 하나, 높이가 낮아 약간 불편함을 느끼는 그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면접장 문이 열리고 2명의 지원자가 나온다. 인사팀 직원2가 2명의 이름을 부른다.
인사팀 직원2 : 면접자 1 씨, 하얀 얼굴 씨, 지금 입장해주시면 됩니다.
38번째 기업, 관리 직무 수습 면접
면접자 : 총 2명 (남자 1 / 여자 1)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의 여자 면접자 1
그
면접관 : 총 2명, 모두 남자
좌측, 하얀 피부에 검은 테 안경, 깐깐해 보이는 40대 후반 면접관 1
우측, 짙은 갈색 피부, 눈이 상당히 큰 40대 후반 면접관 2
그의 느낌상, 면접관 1은 면접자들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다. 이는 면접이 진행될수록 더 드러났으며, 그도 면접 준비가 엉망인 상태였으므로 어느 정도 이해한다. 면접관 2의 경우는 외모가 상당히 이국적이다. 피부색도 그렇고 특히나 눈이 커서, 그는 면접관 2가 동남아시아 출신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면접관 2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면접자 1 : 안녕하세요.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면접자 1이에요. 저는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
그 : (언제나 똑같은 판박이 자기소개다) 안녕하십니까! 38번째 기업 관리 직무에 지원한 지원자, 하.얀.얼.굴. 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실행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3가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 생활인 공놀이를 통해 친화력을 길렀습니다. 공놀이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팀을 이루며 친화력을 길렀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상 두 가지 강점, 강한 실행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38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지원 동기도, 면접 준비도, 붙고 싶은 마음도 부실하다. 그는 이 면접에서, 최대한 방어하며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 방향을 잡는다. 더욱이 그는 자신이 이력서에 무슨 내용을 썼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다. 38번째 기업 채용 홈페이지는 제출한 이력서를 다시 조회할 수 없는 구조다. 그는 자신이 아르바이트 경력을 썼는지, 자기소개서 답변은 무엇으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면접관 2 : 네 안녕하세요. 혹시 우리 회사 재무제표를 봤나요? 봤다면 소감이 어떤가요?
면접자 1 : 아, 저는... ... (기억나지 않는다)
그 : 네, 보았습니다. 자산 4000억, 자본이 900억에 부채가 3000억으로 탄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년도에 약간의 영업손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도 누적 실적을 보니 이미 영업이익이 나고 있는 상태라,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거짓말이다)
면접관 1 : 관리 직무를 하면, 부동산 임대 관련해서 일을 하게 될 겁니다. 부동산 임대 관련하여 경험이 있나요?
면접자 1 : 저는... ... (기억나지 않는다)
그 :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당시,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세입자로서 임대차 계약을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정식 계약은 아니지만, 구두 계약으로써 집주인과 계약을 여러 번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채용공고의 직무를 보니, 사무실 임대차 계약 및 관리 업무가 있었습니다. 새로 지은 사옥의 사무실들을 임대해주고 관리하는 업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 해당 업무를 수행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면접관 1 : 관련 경험을 말하랬더니, 그건 개인적인 경험 아닌가요.
그 : 맞습니다. 제가 아직 직무 관련하여서는 경험이 없습니다만, 개인적인 경험 중에 부동산 임대 관련하여 제가 경험했던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면접관 1 : (면접자들이 못 미덥다는 듯이) 지금 취업활동들을 하고 계실 텐데, 경영지원 직무 준비를 언제부터 했습니까?
면접자 1 : 아, 이번 연도부터 시작했어요.
그 : 경영학도로써, 막학기부터 시작했습니다.
면접관 1 : 면접자 1 씨,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왜 관리 직무에 지원했나요?
면접자 1 : 아, 제가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서요. 콘텐츠를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어요.
그는 면접자 1의 답변이, 지원 직무가 아닌 마케팅이나 제작 쪽에 어울리는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운동 관련하여 수상 경력이 있는데 이건 뭡니까. 방향을 잡고 운동을 한 거예요, 아니면 그냥 해본 거예요?
그 : 해당 경험은, 군대 전역 후 친구들과 짧은 기간 운동하여 얻은 성과입니다. 방향을 잡고 운동한 것이긴 합니다만, 아주 조그마한 대회입니다.
면접관 1 : ...
그는 자신과 면접자 1의 답변에, 면접관 1이 상당히 불만족스러워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면접관 1은 잠시 동안 말이 없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올해 최저 시급이 얼마인지 압니까.
그 : 8720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잡플X닛 면접 후기에서 해당 질문이 있다 해서 외워뒀다)
면접관 1 : ... 면접자 1 씨, 올해 최저 시급이 얼마인지 압니까.
면접자 1 : 어... 확실하진 않은데요. 만 원은 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면접관 1 : 내년도 최저시급은 얼마입니까.
면접자 1 : 아, 잘 모르겠어요.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그 : 죄송합니다. 내년도 최저시급은 숙지하지 못했습니다.
면접관 1 : (걸렸다는 듯이) 올해 최저시급은 8720원이고, 내년도 최저시급은 9160원으로 결정된 것으로 압니다. 우리 회사 괸리 직무를 지원하고 준비했다면, 최저시급 정도는 알아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면접자 1 : (당황한 모습)
그 : 아... (죄송하지가 않아, 죄송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면접관 1은 약간 호통치는 듯한 말투다. 그는 38번째 기업 관리 직무와 최저시급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방송사이니, 아르바이트를 많이 고용해야 해서 인건비인 최저시급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괜히 마음에 들지 않아 혼내려는 것인가. 평소의 그였다면 예의상 죄송하다고 했을 터이나, 이번에는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면접관 2 : 우리 회사가 최근에 XXX에 새로 사옥을 지었습니다. XXX 사옥 봤나요?
면접자 1 : 네, 봤습니다.
그 : 실제로 보진 못했습니다.
면접관 2 : XXX에서도 근무가 가능한가요? 만일 XXX로 발령이 나면, 출퇴근 거리가 어떻게 되나요.
면접자 1 : 네, 가능합니다. 조금 멀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
그 : 38번째 기업 본사도 가깝고, XXX는 더 가깝습니다. XXX로 출퇴근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면접관 일동 : ...
면접관 1 : (면접관 2에게) 더 질문하실 것 있나요?
면접관 2 : 저는 없습니다.
면접관 1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하시고, 면접 마치겠습니다.
면접자 1 : 저는 콘텐츠에 애정을 갖고, 콘텐츠를 바탕으로 수익을 실현하고 싶어요. 38번째 기업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
그 : (예의상 어필을 한다. 이력서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나 일단 말한다) 제 이력서 상의 경력들과 답변들이 면접관님들께 신뢰를 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력서에 적지는 않았지만 방송사 무대 제작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해당 시기 제가 만들었던 세트는 XX가왕, 마X텔이었습니다. 해당 알바를 하면서 방송계에 관심을 갖고, 방송계가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아르바이트 경험과 제가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을 바탕으로, 38번째 기업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름 잘 포장했지만, 거짓말이다)
면접관 1 : 네, 수고했어요.
면접자 일동 : 감사합니다!
면접장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다른 2명의 지원자가 안으로 들어간다. 그와 면접자 1은 짐을 챙겨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인사팀 직원2가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해준다.
인사팀 직원2 : 면접 보시느라 수고했어요. 빠른 시일 내에 면접 결과 알려드리겠습니다. 귀가하시면 됩니다.
그, 면접자 1 : 감사합니다!
그가 어렴풋이 예상한 대로, 면접비는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집으로 향한다. 면접 내용보다, 면접비가 없다는 사실에 더 집착하는 그다. 면접관 1의 분위기와 태도로 볼 때, 그는 자신과 면접자 1 모두 떨어졌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