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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지원자

바닷사람

by 하얀 얼굴 학생

면접이 끝나고, 그를 포함한 면접자들은 대기실로 돌아가 짐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간다. 인사팀 직원이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발표해주겠다고 말한다. 면접비 봉투를 받은 것 같은데 기억이 확실치 않다. 그에게는 지금 면접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면접자 1/2 중 하나가 담배를 피우고 가자고 말한다.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따라간다. 그를 제외한 면접자들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면접자 1/2가 가까이 서있고, 그와 면접자 4가 가까이 서있다. 누가 먼저 말을 시작했는지는 정확지 않으나, 일단 시작되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대화가 이어진다. 면접자 4는 대화에 별로 참여하지 않는다.


...

면접자 1 : 스읍- 면접 어떠셨나요.

면접자 2 : 후- 잘 모르겠네요.

면접자 1 : 여기가 제가 면접 본 곳 중에서 worst에 꼽네요.

그 : 아, 그런가요?

면접자 1 : 네 무슨, 가족관계 물어보고, 음주랑 흡연까지. 언제 적 질문이에요.

면접자 2 : 이럴 줄 알았으면 면접 준비도 괜히 했네요.

면접자 1 : 뭘 물어본 건지도 모르겠어요.


확실히, 면접자들은 면접장 안에서 가면을 쓰고 순한 양이 된다. 밖에서 이야기를 해보니, 면접자 1/2는 그가 면접장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흡연자 특유의 거친, 건들거리는 듯한 느낌이 묻어난다. 추운 날씨로 인해 몸을 떨고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 (면접자 1에게) 아 그, 28번째 기업에 다니셨어요?

면접자 1 : 네.

그 : 아 저도 지원했었거든요. 어떤가요?

면접자 1 : 돈은 많이 줘요. 돈은 많이 주는데, 엄청 빡세요.

그 : 평 보니까 그런 것 같더라고요. 야근도 많이 한다고.

면접자 1 : 야근 기본이에요. 장점이 돈 밖에 없어요. 제가 들어갔을 때 신입이 30명인가 그랬는데(정확지 않다), 3개월 만에 13명 퇴사했어요.


그는 면접자 1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최종에서 떨어진 28번째 기업이 '신 포도'임을 확인하고 내심 기뻐한다.


그 : 많이 빡센가 보네요. 여기 말고 또 면접 남은 곳 있으신가요?

면접자 1 : 몇 군데 남았죠.

면접자 2 : 저도 몇몇 남았어요.

그 : (그는 남은 곳이 없다)... 여기 붙으면, 다들 다니실 생각이신가요?

면접자 1 : 돈이 좀 쎄서, 다니긴 다녀야 할 것 같은데요. 하...

면접자 2 : 다니긴 할 텐데, 음주랑 흡연 물어보는 거 봐서는...



대화가 잠시 끊기고, 면접자 1/2는 몸을 떨며 계속해서 담배를 핀다. 면접자 4는 구석진 벽을 등지고 서서 말없이 담배를 피고 있다. 그는 면접자 4를 이날 처음 보았지만 이미 팬이 되어 버렸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그 : (면접자 4에게) 자격증을 많이 따셨나 봐요.

면접자 4 : 네? 아, 네...

그 : 어디 다른 데도 지원하셨나요?

면접자 4 : 네 지원했죠. 얼마 전에 대XX운 떨어지고 나서 OOOO 넣었는데 아직 대기 중이에요. 그리고... (지원을 많이 하지는 않는 듯, 약 4개 정도 회사의 이름이 언급된다)



면접자 1 : (담배를 털며) 가실까요.

면접자 2 : 가시죠.



면접자들은 각자 집으로 향한다. 공교롭게도 면접자 1/2가 같은 방향, 그와 면접자 4가 같은 방향이다. 잘 들어가라고 인사하며, 둘씩 찢어진다. 만일 이때 그와 면접자 4의 방향이 달랐더라도, 그는 면접자 4를 지하철역까지 배웅하러 따라갔을 것이다.


드디어 둘만 남자, 그는 면접자 4에게 팬심을 드러낸다.


그 :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며) 제가 보기엔, 면접자 4님이 합격하실 거 같아요.

면접자 4 : (처음으로 표정이 약간 변화가 있다) 네? 아니에요. 너무 긴장해서, 대답을 제대로 못했어요.

그 : (겸손함까지, 콩깍지가 더 짙어진다) 아니에요, 답변 제일 잘하셨는데요. 면접관님들도 되게 좋아하시는 거 같았고요.

면접자 4 : (수줍은 듯) 그런가요.


그 : 여기 붙으면, 다니실 생각이세요?

면접자 4 : 붙으면 다녀야죠.

그 : 그렇군요.


팬심이 강하긴 하나, 그도 계속해서 말을 걸기엔 화제가 부족하다. 침묵이 끼어들려는 찰나,


면접자 4 : 사실... 붙어도 고민이긴 해요.

그 : 다른 데 가고 싶은 데가 있으신가요?

면접자 4 : 제가 꿈이 있는데...

그 : (다음 말을 기다린다)

면접자 4 : 항해사가 꿈이거든요.

그 : 아, 아예 해운 쪽으로 생각이 있으시군요.

면접자 4 : 네 사실 그쪽이 더 해보고 싶어서... 그래서 떨어지면, 배를 탈까 했거든요.



면접자 4는 담담하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그런 면접자 4를 보며, 그는 어떤 책에서 읽은 문구가 생각난다.

'산에 사는 사람들은, 눈앞의 바윗덩어리나 정상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기 때문에 쾌활한지도 모르겠다. 이에 비해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 무한함의 일부를 파악한 것 같이 느껴진다.' (그는 바닷사람에 대한 묘사를, 그래서 바닷사람은 과묵하다고 해석한다)


오류가 아예 없진 않겠으나, 그는 위의 주장이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닷가에 사는, 어촌 사람들 특유의 느낌이 있다. 면접자 4에게서도 그런 느낌이 묻어난다. 면접자 4가 이야기한 군대 해병 시절, 바닷가 초소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어느새 면접자 4도 바닷사람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면접자 4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지하철 개찰구에 도착한다.


그 : 어느 쪽으로 가시나요?

면접자 4 : 아, 저는 서울 쪽으로 갑니다.

그 : (반대 방향이다) 아, 저는 이쪽입니다.


그는 면접자 4의 연락처를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이때 연락처를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 : 네, 면접자 4 씨, 화이팅입니다! 잘 되실 거예요.

면접자 4 : (당황한 듯 웃으며) 네, 감사합니다. 열정적인 모습, 저도 인상 깊었어요.

그 : 아,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면접자 4 : 네 들어가세요.



돌이켜보았을 때, 그는 마지막에 면접자 4에게 했던 응원의 말이 약간 신경 쓰인다. 면접자 4가 듣기에 자신을 동정하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을까 싶어서다. 그런 감정이 아주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약한 수준이다. 그가 기본적으로 면접자 4에게 품은 감정은 강한 존중, 경의에 가깝다. 수십 번의 면접, 그동안 보았던 수백 명의 면접자 중 유일하게 그를 감화시킨 면접자다. 어쭙잖은 동정이라니, 당치도 않다.




지하철을 타고 연인에게 향하면서도, 그는 면접자 4가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다.

면접에서의 모습만으로 속단하는 것은 분명 이르다. 면접자 1/2의 경우만 해도 면접장에서의 모습과 밖에서의 모습이 상당히 달랐다. 하지만 면접자 4의 경우는, 면접장 내에서의 모습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는 면접자 4가 면접장에서 했던 답변들이, 면접자 4의 진심과 그리 크게 동떨어지진 않았으리라고 판단한다. 그가 면접자 4에게 감화된 이유 중 하나는, 옆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직접 느낀 진정성도 크다.


면접을 보는 도중 면접관들이 흘린 정보들이 꽤 많고, 그는 나름 주의 깊게 들었다. 정보를 종합해보자면, 면접자 4는 가정환경이 그리 유복하지는 않은 듯하다. 말투는 느릿느릿하며 약간 힘이 없고, 살짝 우울한 투다. 대학 시절 내내 두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웬만한 밑반찬류는 거뜬히 만들 만큼 생활력이 강한 듯하다. 성적 장학금을 받지 못했을 때가 가장 슬펐다고 한 말에도 여러 의미가 담겼으리라.


면접자 4는 열심히 생활하면서,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해운 쪽으로 취업을 준비했다. 면접관들이 자격증 리스트를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띨 정도로, 해운업계와 관련된 자격증들을 많이 취득한 듯하다.


조심스럽지만, 살아온 환경과 경험을 들으며 면접자 4의 삶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그로 인해, 면접자 4의 힘없는 듯 느릿느릿한 말투로 하는 발언 하나하나에 더욱 신빙성이 생기고 끈기가 느껴진다.


‘해운업계가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은, 면접자라면 누구나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할 수 있을 법한 발언이다. 하지만 그런 진부한 말도, 면접자 4가 이야기했을 때는 달랐다. 면접자 4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려지는 삶의 궤적, 그 삶의 궤적과 일치하는 듯한 말투로 인해 면접자 4는 진정성을 확보했다. 그런 진정성이 담긴 발언이니, 면접관들은 꼬리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보통의 면접자들이 '해운업계가 더 가치가 있다'라고 했으면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고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높다. 면접자 4의 경우에는, 오랜 생각 끝에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면접자 4의 이야기, 아르바이트, 성적 장학금, 대만 여행 이야기를 들을수록, 면접자 4의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다. 지금 현재 면접자 4의 모습과 말투에 개연성이 생겨, 온전한 스토리가 된다. 일반적인 지원자들이었다면 단점이 되었을 느릿느릿하고 우울한 듯한 말투조차도, 면접자 4에게서 나올 때는 강한 의지력과 울림을 지닌 목소리로 들린다.



그는 면접자 4가 이야기했던 것들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지 않는다. 덥수룩한 머리도, 낡아 보이는 패딩도, 가족 관계도, 흰머리가 많아 회색빛인 머리도, 약간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도 말투도 표정도 몸짓도 모두 동경하게 되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고 옆자리에서 답변만 들었지만, 그는 면접자 4가 멋있다고 느낀다.



혹시 모를 일이다. 면접자 4가 이 모든 것을 의도하고, 치밀하게 이미지 메이킹을 했을 수도 있다. 만일 면접자 4가 철두철미하게 가면을 쓴 것이라면, 그 정도로까지 철두철미한 가면이라면 뭐, 속지 않을 도리가 있나. 하지만 이 정도의 가면을 쓰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그는 면접자 4에 대한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랬던 그의 인식을 반전시킬 정도의 이야기와 울림이었으므로, 그는 면접자 4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뿐만 아니라 어느 누가 보더라도, 면접자 4를 봤던 면접관들도 같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면접자 4는 여태껏 면접에서 만났던 어떤 지원자나 면접관보다도 강하게 그의 기억 속에 남는다. 그는 시커먼 폭풍우와 구름, 비바람 속에서 걸으며 대만섬을 일주하는 면접자 4의 모습을 머리속으로 그려본다. 그가 자부심을 가진 워킹홀리데이 시절과 비교해도 멋있는 모습, 어떤 면에선 밀릴 지도 모른다. 그는 면접자 4에게 매료되어, 면접자 4가 인간적으로 멋있다고 생각한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연인을 만난다. 연인에게도, 그는 면접자 4의 이야기를 한다.


- 좌우명이 '나는 강하다'래. 첫인상은 제일 별로였는데,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까 오히려 마지막에는... ...

- 그 사람이 되게 멋있었나 보네

- 많이 멋있더라고



그는 면접자 4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심 자신이 부끄럽다. 이렇게 대충 사는 자신이 여기저기서 밥 사 먹고 돈 쓸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주시는 부모님, 그리고 그를 응원해주는 연인에 대한 감사를 느낀다.

그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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