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번째 기업, 54번째 면접
관찰자 시점, 나는 강하다
40번째 기업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는지, 계속된 면접 세례에 감각이 무뎌졌는지, 그는 그다지 긴장이 되지 않는다. 너무 면접을 많이 보다 보니, 어느새 현실을 망각하고 참여자가 아닌 관찰자로서 뒷자리에 물러앉아 관망하는 경지에 도달한 것일까. 주변에 앉아있는 다른 면접자들을 힐긋 바라본다. 다들 고개를 숙이거나, 멍한 눈동자로 긴장을 달래는 모습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똑같은 말로 물꼬를 튼다.
그 : 혹시, 다들 해운업 쪽으로 계속 취업 준비를 하셨나요?
면접자 2 : (약간 밝게) 아뇨, 저는 처음이에요.
면접자 1 : (긴장한 것인지 굳은 얼굴로) ... 저도 처음입니다.
면접자 4 : ...
답이 없어, 그는 면접자 4를 쳐다본다. 면접자 4는 그를 바라보지도, 미동도 없다. 끝내 답을 듣지 못한다. 그도 한번 던져봤을 뿐이니, 굳이 다시 묻지 않는다. 아주 짧은 대화의 시간 동안, 그는 면접자들을 훑는다. 면접자 1은 하얀 피부에 깔끔한 인상, 면접자 2는 구릿빛 피부에 약간 중동인 느낌을 주는 인상이다.
그는 대답을 하지 않은 면접자 4를 짧은 순간 동안 훑어보며 정보를 유추해내려 한다. 그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으로는, 면접자 4의 첫인상이 썩 좋지 않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면접자 4의 외모나 인상착의에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다. 면접자 4는 면접 대기실 내부에서도 짙은 남색의 두툼한 패딩을 입고 있다. 원래 반짝거리는 소재인지, 오래 입어 닳은 것인지 반질반질 빛이 난다. 면접자 4는 약간 창백한 피부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으며 체격은 크지 않다. 덥수룩한 머리는 새치가 많은지 회색빛이 돌며, 무얼 발랐는지 조금 떡진 듯하다. 외모로만 본다면, 다른 면접자들이 더 우위다. 그는 면접자 4가, 면접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멋대로 판단한다.
그의 이런 잘못된 판단은 비단 겉모습에서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면접자 4가 뿜어내는 아우라 자체가 상당히 어둡다. 면접자 4는 남들과 그리 교류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하며, 표정이 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면접 직전의 긴장으로 인한 것일 수 있으나, 그는 자세한 내면까지 파악하여 분석할 안목이 없다.
잠시 뒤, 인사팀 직원이 돌아온다. 면접자들은 인사팀 직원의 뒤를 따라 면접장으로 입장한다.
40번째 기업, 영업 직무 신입 1차 면접
면접자 : 총 4명, 모두 남자
스페인어학과, 국가기관 국제 인턴 경험, 구릿빛 피부에 중동인 느낌이 나는 면접자 1
필리핀 거주, 미국 대학 졸업. 오픽 AL, 토익 830. 하얀 피부, 취미가 레고 수집인 면접자 2
그
흰머리가 상당히 많아 머리가 회색빛, 창백한 피부, 말이 적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면접자 4
면접관 : 총 4명, 모두 남자
네모 형태의 머리, 안경을 끼고 이목구비가 큰 40대 면접관 1 (인사팀으로 추정)
눈이 작고 눈매가 날카로우며, 평소에는 웃는 듯해서 눈이 보이지 않는다. 가끔 눈이 보일 때는 형용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깐깐함이 묻어난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에서 친일파 형사로 나올 법한 인상의 40대 면접관 2 (영업부 전무)
머리숱이 적고 눈썹이 옅으며, 피부가 검고 약간 얽었다. 첫인상이 투박한 40대 면접관 3
하얀 피부, 몸집이 작아 보이나 체구가 둥글어 무게감이 있다. 동그란 눈, 말투가 조근조근한 40대 면접관 4
면접장에 들어서며 그는 자신의 상태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특이하게도 이 면접, 40번째 기업에서의 54번째 면접에서 그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설렘과 기쁨마저 느껴진다. 면접을 잘 보아서 합격할 것 같다는 기쁨이 아니라,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의 기쁨이다. 면접을 하도 많이 탈락해서 정신이 나가버린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동안의 면접 경험이 쌓이고 쌓이다 드디어 어떤 특이점에 도달하여, 다른 이들과의 대화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면접 대기실에서 긴장하지 않고 굳이 면접자들에게 말을 걸었던 것도, 알고 보니 이러한 감정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간단히 말해 그는 이 면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 참으로 오묘하게도, 그는 이 면접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마주한다.
면접자 일동 : (입장하며)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일동 :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면접자 일동 : (착석한다)
면접관 1 : 네, 오늘 면접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면접관 소개를 할게요. 저는 면접관 1, 제 옆에 계신 분은 영업팀 전무이시고요.
면접관 2 : (목례한다)
면접관 1 : 그 옆으로는 면접관 3 님, 면접관 4 님입니다.
면접관 3/4 : (목례한다)
면접자 일동 :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1 : 네 그럼, 자기소개부터 해주세요. 면접자 1부터 하세요.
면접자 1 : 안녕하세요. ...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자 2 : 안녕하세요. ... (기억나지 않는다)
그 : 안녕하십니까! 40번째 기업 영업 직무에 지원한 지원자, 하.얀.얼.굴. 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실행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3가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 생활인 공놀이를 통해 친화력을 길렀습니다. 공놀이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팀을 이루며 친화력을 길렀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상 두 가지 강점, 강한 실행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40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면접자 4 : 안녕하세요. ...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관 2 : 면접자 1 씨, 28번째 기업을 5개월 다니다가 그만두었네요. 이유가 뭡니까?
예상치 못했던 28번째 기업의 이름을 듣자 그는 놀란다. 28번째 기업은 그가 최종에서 탈락한 패션업계 의류 벤더다. 5개월 전이면, 그가 최종 면접을 봤던 시기와 일치한다. 면접자 1은 그와 같은 시기에 28번째 기업에 지원하여 최종 합격하고, 5개월간 회사 생활을 하다가 그만둔 듯하다.
면접자 1 : 28번째 기업은 의류 벤더인데, OEM 방식의 사업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주된 업무였습니다. 다른 브랜드의 옷이라, 주인 의식이 없었던 점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왔습니다. (나름 잘 준비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면접관 2 : 그래도 5개월은 너무 짧은 거 아닌가? 어려운 것을 회피하고자 하나?
면접자 1 :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어려운 것을 회피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어... 40번째 기업에, 합격하게 된다면, 오래 다닐 것입니다. ... (주인 의식까진 괜찮았으나, 두 번째 답변은 아리송하다)
면접관 2 : 면접자 2 씨, 필리핀에서 살다가 미국 대학을 졸업했다고요?
면접자 2 : 네, 맞습니다.
면접관 2 : 얼마나 지낸 거예요?
면접자 2 : 필리핀에서 약 5년 정도 있었고, 미국에서 4년제를 졸업했습니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몸이 좋고 풍채가 좋군요.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원래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하거든.
그 : (처음부터 받는 칭찬에) 아, 감사합니다.
면접관 2 : 그런데, 하얀 얼굴 씨 이력서에는 가족관계가 안 적혀 있어요. 혹시, 가족 관계를 적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40번째 기업은 이력서 파일을 워드로 작성하여 메일 송부하는 형식이었으므로, 정보를 기입하지 않았다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는 등의 제약이 없었다.
그 : (당황하여) 아, 필수 정보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면접관 2 : 그래도, 다른 지원자들은 가족 사항을 적어주었는데. 이렇게 적지 않으면 우리가 알면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 : 아, 아닙니다.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 (그의 가족관계에 대해 말한다)
면접관 2 : 그리고 하얀 얼굴 씨, 이력서에 컴퓨터 활용능력을 중으로 적어주셨네요.
그 : 네, 맞습니다.
면접관 2 : 엑셀 잘 씁니까?
그 : (뜨끔하며) 잘은 아니지만, 보통 정도로는 쓴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면접관 2 : (실눈 속 눈동자가 드러나며) 매크로 쓸 줄 압니까?
그 : 아, 매크로는 많이 써보지는 않았습니다. 공부해서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면접관 2 : 면접자 4 씨, 면접자 4 씨도, 가족 관계를 안 적으셨네요.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해줄 수 있으신가요? 불편하면 답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면접자 4 : 아닙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현재 자취를 하고 있으며, 부모님과 7살 위인 형이 함께 살고 계십니다. 부모님은 무직이시고, 형은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면접관 2 : 특이하게 취미가 요리네요. 가장 좋아하는 요리가 뭡니까.
면접자 4 : 네 요리를 좋아합니다. 자취를 오래 하다 보니, 밑반찬류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이때부터, 면접자 4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그가 판단한 주관적이고 치우쳤던 선입견이, 면접자 4의 답변 몇 번으로 순식간에 금이 쩍쩍 가기 시작한다.
면접관 2가 첫 질문을 끝내고, 면접관 3의 차례다.
면접관 3 : 네, 여러분이 지원한 직무가 영업이다 보니, 간단한 영어 테스트를 하겠습니다. 면접자 1 씨의 경우는 학교에서 스페인어학과를 나왔으니, 스페인어를 해보세요.
면접자 1 : 올라~ 꼬모 에스따~~~~ (알아듣지는 못하겠으나 준수한 듯하다)
면접관 3 : 면접자 2 씨, 영어로 자기소개 및 오늘 기분에 대해 말해보세요.
면접자 2 : Um.... Ok... Um.... Hello... My name is... Um... Sorry... Um... My name is 면접자 2... I studied... in university... um... ... (중간중간 끊기는 지점이 많아, 답변이 2분 이상 걸린다)
면접관 3 : ... 면접자 2 씨, 너무 긴장해서 본인 실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맞나요?
면접자 2 : 아, 네. 맞습니다.
그는 면접자 2의 영어 답변을 듣고는 놀란다. 토익 점수가 830으로 비교적 낮긴 하지만, 면접자 2는 오픽 점수가 최고 등급인 AL이며 필리핀 거주 경험도 있고 무엇보다 미국 대학 졸업자다. 그런데 간단한 영어 질문에 답변하지 못했다.
면접관 3 : (워킹홀리데이, 오픽 IH인 그에게는 별 기대가 없다는 듯) 하얀 얼굴 씨,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할 테니, 영어로 답변해보세요. 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대해 영어로 말해보세요.
그 : (면접관의 기대치를 뚫어버리고자 한다) K, I', gonna talk about the person I respect. Usually I talk about my father, but this time, I would say, Jordan Peterson.
면접관 3 : (예상 외라는 눈빛으로) Who's Jordan Peterson?
그 : He's Canadian clinical Physchologist, and also University Professor. He has a youtube channel which has millions of subscribers, talking about responsibility. These days, People tend to pity themselves and stay where they are. Like, you are fine, you are already perfect, you did a good job, you are already whole. But I don't think so. If I'm already perfect, then I already get a job but the job market is quite harsh for me. That means, I'm not perfect and need to be grow up. Jordan Peterson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taking responsibility, which leads to individual growth. So my answer is, I respect Jordan Peterson.
면접관 3 : ... (처음에는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그의 답변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면접관 3 : 면접자 4 씨는, 가장 기뻤던 경험에 대해 영어로 말해보세요.
면접자 4 : The happiest moment in my life was, when I traveled Taiwan. I traveled Taiwan by foot, and... ... (화려하진 않지만 탄탄한 영어 실력이다. 옆에서 듣는 그도 약간 놀란다)
면접관 3 : (면접자 4를 바라보며) 음... 면접자 4 씨, 이번에는 가장 슬펐던 때를 말씀해주세요.
면접자 4 : 영어로 말씀이십니까.
면접관 3 : 아니, 영어 말고요.
면접자 4 : 가장 슬펐던 때는, 학교에서 성적 장학금을 받지 못했을 때입니다.
그는 면접자 4의 답변을 듣고 속으로 또다시 입이 벌어진다.
면접관 3 : (면접자 4의 답변을 잠시 끊으며) 제가 기쁘고 슬픈 때를 이야기해달라 한 것은, 가벼운 내용을 이야기해달라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면접자 4께서 하는 답변은 모두 상당히 진지한 이야기들이네요. 면접자 4님은 진지한 성격인 것 같습니다.(비꼬는 투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듣고 싶었던 내용은, 뭐 여자 친구와 헤어져서 너무 슬펐다던지, 로또가 되어서 기뻤다던지 하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면접관 2 : (의자에 등을 기대고 면접관 2에게 고개를 돌리며) 야, 로또가 됐으면 여기 왔겠냐?
면접관 3 : 아 그런가요. 그래도 올 수도 있죠. 허허
면접관 3의 질문이 끝나고, 면접관 4의 차례다. 면접관 4는 주로 자격증과 인성 관련하여 묻는다.
면접관 4 : 면접자 1 씨, 아까 28번째 기업을 그만뒀다고 들었어요. 28번째 기업을 그만두기 전, 말씀하신 불만족스러운 사항에 대해 본인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한 것이 있나요?
면접자 1 : 음... 처음에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신입사원이 스스로 무언가를 바꾸는 것은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주어진 일을 하며... ... (대답이 빙빙 돈다. 결국 해결하고자 노력한 내용은 어필하지 못한다)
면접관 4 : 면접자 4 씨, 취미가 레고 수집이라고 적으셨어요. 미국에서 생활할 때, 취미가 같은 사람들, 레고를 즐기는 사람들, 그러니까 안면이 없던 사람들과 소통한 적이 있나요?
면접자 2 : 아, 저는 레고를 모으는 것이 취미였어요. 그래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레고를 모았습니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은... 음... 그런 커뮤니티가 있었을 수도 있는데요. 저는 혼자서... ... (소통한 경험은 없는 듯하다)
면접관 4 : 하얀 얼굴 씨, 우리 회사에 입사한다면 이후에 취득하고 싶은 자격증이 있나요?
그 :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여) 자격증 말씀이십니까. 무역영어, 물류관리사, 유통관리사 등 물류와 국제 수출 관련된 자격증들을 취득하고 싶습니다. (CPIM이나 관세사 등을 이야기했으면 좋았겠으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면접관 4 :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면접자 4 씨, 면접자 4 씨가 취득하신 자격증들이, 제가 가진 자격증들과 똑같아서 매우 반갑습니다. 혹시 이후로 다른 자격증을 취득할 생각이 있나요?
면접자 4 : 다른 자격증이요? ... 음... 아직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CPIM(생산 재고 관리사)이란 국제 자격증에 대해 친구에게서 들었습니다. 해외 자격증이라 응시 가격이 너무 비싸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만일 입사한다면 취득하고 싶습니다.
면접관 4 : 물류 쪽 자격증은, 대학교 커리큘럼처럼 하나하나 밟아나가야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본 겁니다. 일단은 CPIM 쪽을 생각하고 있다는 거죠?
면접자 4 : 네, 맞습니다.
면접관 4의 질문이 끝나고, 면접관 2와 3이 자유로이 질문한다.
면접관 3 : 면접자 4 씨는, 우리 업계에 관심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이력서나, 준비한 자격증도 전부 우리 업계에 해당하는 것들이에요. 해운업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뭡니까.
면접자 4 : 음... 제가 사실 군대를 해병으로 가서요. 동해 바다 초소를 지키며 근무를 섰습니다. 그때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멀리 떠가는 상선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근무를 서면서, 또 배를 바라보다 보니, 해운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상보다 뻔한, 그다지 특출난 것이 없는 답변이다. 하지만 면접자 4는 이미 면접의 주도권을 갖고 있다. 답변의 구성도 100% 두괄식이 아니고, 말투도 약간 끄는 면이 있다. 그렇지만 그는 면접자 4의 답변에 유난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면접관 2 : 면접자 4 씨, 좌우명이 상당히 특이합니다. 설명을 해줄 수 있나요.
면접자 4 : 아, 그... 제가 뭐라고 적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요. 나는 할 수 있다고 적었나요?
면접관 2 : '나는 강하다'라고 적었습니다.
면접자 4 : 아, 나는 강하다군요... 사실 저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항상 아르바이트를 두세 개씩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학교 친구들 중 해외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악착같이 모았습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비행기 표를 샀습니다. 대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는데, 돈이 없으니 여행이 제대로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왕 온 김에, 대만섬을 걸어서 일주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대만섬을 일주하려고 걷는데, 하필 태풍이 불더라고요. 먹구름이 까맣고, 비바람이 부는 속에서 그냥 걸었습니다. 폭풍 속을 걷다가 노숙하고, 또 걷고 했습니다. 노숙하면서 비 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나는 강하다, 나는 강하다'를 계속 되뇌었습니다. 그래서 제 좌우명을 나는 강하다로 적은 것 같습니다.
면접관 2 : (면접자 4를 바라보며) ... 멋있네.
그는 면접자 4의 이야기에 정신없이 몰두하며,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속으로 멋있다고 생각했던 그때, 면접관 2가 소리 내어 멋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도,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나름 고생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자 4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의 경험으로 비빌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면접자 4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면접관 3 : 하얀 얼굴 씨, 자기소개서를 보니, 독서를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어떤 책들을 주로 읽으셨나요.
그 : (면접자 4를 향한 팬심에서 깨어나) 300번대 사회과학 도서를 주로 읽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을 포괄한 범주입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총,균,쇠 등이 속한 분야입니다.
면접관 3 : 대학교 전공은 경영학인데, 다른 분야를 읽은 이유가 있나요?
그 : 사회, 그 사회를 이루는 인간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경영학은 숫자를 다루긴 하지만, 결국 경영학도 사람과 관련된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2 : 훌륭하네.
그 : 그래서, 사람과 관련된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사회과학 도서를 읽었습니다.
면접 시작 후 40분, 면접이 슬슬 끝날 기미를 보인다.
면접관 1 : 네, 지금부터는, 여러분이 시행했던 인성검사 결과에서 나온 단점들만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듣고서 인정하는지 인정하지 않는지, 또 인정한다면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먼저 면접자 1 씨, 끈기가 없어서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 금방 포기한다.
면접자 1 :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관 1 : 면접자 2 씨의 경우,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 정직성이 최하로 나왔어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정직하지 않다고 나왔습니다.
면접자 2 :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정직합니다. 아 그런데 다만, 제가 미국에 나갔을 때 원래 의대 과정을 밟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현지에 도착해보니 아직 건물이 지어지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즉 유학원의 사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다른 이들을 만나거나 대할 때 조심하게 된, 일종의 트라우마가 됐습니다. 그것 때문에, 인성 검사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하얀 얼굴 씨는... 단점이 상당히 길게 나왔습니다. 단점이 길고 많습니다. 읽어드리겠습니다. ‘일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자신감이 부족하다. 다른 사람들의 손길이나 도움이 많이 필요하며, 배려심이 없다. 상황에 맞지 않는 언행과 행동을 하는 때가 많다.’ (다른 면접자들에 비해, 그의 단점이 압도적으로 길다)
면접관 2 : (그의 단점이 너무 길어, 듣던 도중 웃어버린다) 아니, 허 참. 하하하
그 : (정신이 혼미하다) 아... 듣는 동안 살짝 찔리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전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운동과 독서를 통해 많이 발전했습니다. 독서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제가 할 역할을 찾았고, 그러한 부분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운동과 독서를 통해, 말씀하신 단점들을 많이 극복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면접관 1 : 면접자 4 씨는,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소통이 부족한 것으로 나왔어요. 대만 여행 이야기나, 본인 경험들을 이야기할 때도 대부분 혼자 한 것들 위주여서, 다른 사람들과 협업이 잘 될지 궁금합니다.
면접자 4 : ... 조금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아르바이트 중에서 술집 서빙 아르바이트도 했었습니다. 해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같은 아르바이트 직원들과도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혼자 한 활동들이 많기는 하지만, 협업과 소통도 부족하지 않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면접관 1 : 마지막으로, 주량과 흡연 여부를 물어보겠습니다. 본인 주량, 흡연 여부, 일주일에 술을 얼마나 마시는지 말해주세요.
면접자 1 : 술은 주 1회 두 병, 흡연합니다.
면접자 2 : 저도 두 병, 주 5회, 흡연합니다.
그 : 저는 일주일에 2회, 최대 주량은 두 병 반에서 세 병입니다. 흡연은 하지 않습니다.
면접자 4 : 딱히 술을 마시진 않습니다만, 술자리에 가면 항상 끝까지 남아있습니다. 흡연합니다.
면접관 1 : 정말 마지막으로, 혹시 다른 곳 어디 진행 중인 곳이 있는지. 아 이렇게 물어보면 조금 난감하겠군요. 혹시 다른 기업과 저희 기업을 같이 붙는다면, 여기 올 건가요? 면접자 1 씨.
면접자 1 : 네
면접관 1 : 면접자 2 씨
면접자 2 : 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그 : 네
면접관 1 : 면접자 4 씨
면접자 4 : 네
면접관 1 : 쓸데없는 질문을 했군요.
면접자, 면접관 일동 : 하하
면접자 1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궁금한 점 물어보세요. 면접자 4 씨부터 하세요.
면접자 4 : 없습니다.
그 : (어떻게든 어필해보고자) 미국의 곡물 운송, 미시시피 강 유역의 엘리베이터 등을 관심 있게 지켜봐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이집트 수에즈 운하가 에버기븐호 좌초로 인해 막혔을 때도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수에즈 운하 좌초 당시, 실제 업무하시면서 영향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면접관 2 :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며) 우리는 컨테이너선 아닌데? 그건 자료 조사가 좀 부족했던 것 아닌가?
면접관 3: 아니, 아니죠. 우리도 지나는 배가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좌초 사건이 있기 전에 운하를 지났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은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글로벌 공급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주의 깊게 지켜보긴 했었죠. 다행히도 잘 넘어갔습니다.
그 : (자신을 구해준 면접관 3에게) 감사합니다.
면접자 2 :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자 1 :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관 1 : 네, 이상으로 면접을 마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면접자 일동 :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