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화장실 앞에 도착해, 옷을 벗는다. 밤새 긁어 여기저기 벗겨진 피부가 공기에 그대로 노출된다. 후닥닥 화장실로 들어간다.
화장실 안, 그는 몸 여기저기의 상처들을 일단 두 팔의 면적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어떻게든 감싼다. 샤워를 하긴 해야하는데, 눈앞이 캄캄하다. 산 넘어 산이다. 공기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시리고 따갑다. 여기에 물까지 닿는다? 상상만으로도 몸이 부르르 떨린다.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이들의 피부는, 회복되기 전에 계속해서 손상되기 때문에 극도로 예민하다. 그런 예민한 피부에는 과한 자극을 줘선 안된다고 한다. 즉, 미온수로 샤워해야 한다고들 권한다. 말은 쉽다. 미온수 샤워의 따가움을 느끼지 전까지는 말이다.
이따금씩,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오늘은 정말 엿 됐다' 싶은 때가 있다. 굳이 만져보지 않아도, 상처가 깊고 피와 진물이 피부에 가득하다는 것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한층 더 긴장한 상태로 샤워를 시작한다. 그런데, 샤워기의 물이 닿았는데 별 느낌이 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궁금하면서도 기쁜 마음에, 샤워를 하려 해당 부위를 손으로 문지른다. 바로 그때, 물 분자 하나하나가 상처 부위를 찌르는 듯한 따가움이 느껴진다. 그렇다. 상태가 하도 심각해, 그의 신체가 진물을 과도하게 분비했던 것이다. 다량의 진물이, 흘러내리는 물에는 씻기지 않다가 그가 손으로 문대는 순간 씻겨져 나간다. 바로 그 순간, 진물 아래 있던 상처에 드디어 물이 닿는다. 일어나는 순간 느꼈던 감상은 틀리지 않았다.
피부가 상처 투성이에 과도하게 예민한 상태니, 그의 샤워도 약간 다르다. 우선 때를 밀지 않는다. 그가 매일 자신의 손톱으로 때를 벗기다 못해 멀쩡한 피부까지 벗겨버리고 있으니, 때를 밀 필요가 없다. 밀 필요도 없고, 때수건 같은 것을 감히 들이댈 만한 피부 상태가 아니다.
추가적으로, 상처 부위에는 샤워기를 직접 쏘지 않는다. 샤워기는 물줄기의 수압이 강한 편인데, 이런 수압의 물줄기를 상처에 쏘면, 물이 상처를 파고드는 듯한 따가움이 느껴진다. 그의 아침을 상쾌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는 나름의 샤워 방법을 터득한다. 그것은 바로 극과 극,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만 사용하는 샤워다. 의사나 아토피 전문가가 들었다면 기겁을 했을 일이지만, 그에게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를 가장 방해하는 것은 온몸의 피부로부터 느껴지는 따가움이다. 미온수가 닿으면 따가움은 몇 배로 늘어난다.
상처 가득한 피부에 처음 닿는 순간에는, 물의 온도와 상관없이 따갑다. 미지근한 미온수로 씻으면, 피부의 감각이 살아있기 때문에 처음뿐 아니라 계속해서 따갑다. 그는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만 사용해서, 의도적으로 피부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어버린다. 물이 닿는 첫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따갑지만, 잠시의 뜨거움이나 차가움만 참으면 이내 따가움이 사그라든다.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미온수보다는 양반이다. 정신줄을 놓지 않고 샤워를 할 정도의 따가움으로 반감된다.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데는, 찬물이 가장 제격이다. 하지만 그도 아침 샤워 시작부터 온몸에 찬물을 뿌리는 것은 꺼려진다. 뜨거운 물로 시작해봤지만, 찬물보다 마비 효과가 덜하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사용했을 때는, 찬물을 쓸 때보다 피부의 감각 회복 속도가 빠르다. 그는 나름 꼼수를 생각해낸다.
1) 몸의 일부만 찬물로 지져 감각을 둔화
- 상처와 증상이 심한 팔꿈치 안쪽, 감각이 그나마 덜한 다리, 그날그날 상태에 따라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한 부위(주로 목)
2) 가장 심한 부위들을 찬물로 지지고 난 뒤, 뜨거운 물로 샤워를 시작
그의 샤워는 꽤 오래 걸리는 편이다. 씻기 전 예민한 피부가 물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며, 간신히 물에 적응시켜 놓은 피부를 다시 바깥 환경에 적응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적응이라기보다, 그가 결심을 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 샤워하기 싫은데, 또 따가울 텐데. 이런 생각으로 수 분을 보낸다. 마침내 샤워를 시작해, 따가움을 참아가며 샤워가 끝나간다. 이 물을 끄면 또 수건으로 말려야 할 텐데. 건조해지면서 피부가 당기고, 어머니는 또 로션을 바르겠다고 할 텐데. 그 로션이 몸에 닿기라도 하면 정말...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짜증이 치미는 상태로, 샤워를 끝낼 마음의 준비에만 또 수 분이 걸린다.
마침내 고민이 끝나고, 크게 다짐을 한다. 또다시 다가오는, 점점 살아나는 피부의 감각과 따가움을 대비해야 한다. 심호흡을 하고, 샤워기 수도꼭지를 오른쪽으로 최대한 돌린다. 수증기가 나올 정도의 뜨거운 물에서, 찬물로 바뀐다. 그는 이를 악물고, 찬물을 온몸 이곳저곳에 골고루 쪼인다. 감각을 최대한 마비시켜야 한다. 있는 대로 감각을 죽여서, 몸의 물기를 닦고 말려 다시 건조한 피부로 돌아가는 그 중간 과정을 최소로 느껴야 한다. 샤워기를 두 손으로 붙잡고 부르르 떨며, 악으로 깡으로 찬물을 온몸에 끼얹는다. 감각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 일부러 두세 번 더 끼얹는다.
몇 천번이고 반복한 이러한 샤워 행태는, 결국 그에게 일종의 습관으로 박혀버린다. 그는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도, 샤워를 끝낼 때는 언제나 찬물로 온몸을 지져야 직성이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