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카르마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얼굴 학생 May 21. 2023

1 - 출근 첫날

이력서 수기 작성

 기존에 받은 안내 문자, 그리고 벽에 붙어 있는 화살표를 따라간다. 


'신규 입사자 대기실'


 하얗고 널따란 책상을 중심으로 의자는 대략 10개 정도 놓여 있다. 이미 도착한 이들이 꽤 있어, 그는 남겨진 의자에 앉는다. 출입구를 바로 마주보는 자리. 누군가가 회의실 앞을 지나치거나 들어올 때마다 시야에 비치는 자리다. 보통 같았으면 이런 자리는 피하겠지만, 다른 자리들은 이미 누군가가 차지한 상태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앉는다.



 주위를 한번 살펴보니, 그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동기가 약 5명. 꽤 많다. 생각보다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꽤 조화롭다. 그가 면접을 보는 동안 마주친 면접자와 면접관은 모조리 다 남성이었으므로, 신규 입사자도 전부 남성이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예상외이긴 하나, 그게 뭐 중요한가. 약속이라도 한 듯, 신규 입사자들은 예외 없이 검은색이나 짙은 계열의 양복을 입고 있다.


 이 회의실 내에서 딱 한 명, 양복을 입지 않은 이가 있다. 문자로 안내받은, XXX 과장이다. 왁스를 약간 발라 세운 듯한 머리, 테가 얇은 안경을 낀 XXX 과장은 편안한 맨투맨 티를 입고 있다. 말없이 무표정하게 앉아있는데도 인상이 좋다. 문자 내용을 추론하자면 XXX 과장이 속한 팀은 사업지원팀, 그의 합격 메일에 적혀 있던 바로 그 팀이다. 즉, XXX 과장은 그의 직속 상사다. 그는 XXX 과장을 괜히 더 유심히 뜯어본다.



 다들 도착했는지, XXX 과장이 입을 연다.

  - 네, 안녕하세요. 다들 도착하신 거 같네요. 원래는 인사팀에서 안내를 해주는데, 인사팀이 바빠서 제가 안내를 드립니다. 다들 종이 두 장씩 받으셨죠? 이력, 개인 정보 등 기입해 주시면 됩니다.

  - 저, 혹시 펜이 있나요?

  - 네 펜 여기 있습니다.

  - 저도... 받을 수 있을까요?

  - 네 여기요. 또 펜 필요한 분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

  - 여기 뒤에 자기소개서 란이 있는데, 자기소개서 칸도 다 써야 하나요?

  - 자기소개서는 기존에 제출하신 게 이미 위에 있을 텐데. 우선은 자기소개 빼고 작성해 주세요.



 그와 신규 입사자들은, 서류에 이력과 개인 정보를 기입한다. 읽어보니, 신규 입사자들 앞에 놓인 서류는 '이력서'다. 분명 이력서를 홈페이지 상으로 받았을 텐데, 직접 손으로 작성하는 것이 절차인 듯 싶다. 이곳은 미친 듯이 면접을 탈락하던 그에게 손을 내밀어준 첫 회사, 그는 의심을 접고 기쁜 마음으로 이력서를 다시 수기로 작성한다. 한참 작성하고 있던 그때, 양복을 입은 직원이 들어온다.


  - 아, 과장님 안녕하세요. 시작하셨네요. 다들 오셨어요?

  - 네.

  - 네 그럼 서류 작성이랑 안내 부탁드려요. 바빠서 정신이 없네요.

  - 네. 아 참, 여기 자기소개서 란도 작성해야 하나요?

  - 네, 이것도 작성하셔야 합니다.

  - 기존에 이미 받은 게 있지 않아요?

  - 받은 게 있긴 한데, 그래도 @!@#%#^@!@%#!@$^

  - ? 알겠습니다.

  - 네 그럼, 다 쓰시고서 위로 안내 부탁드립니다.



 양복을 입은 직원이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나간다. 면접 때 면접 안내를 맡았던 인사팀 직원이다. XXX 과장의 문의에, 인사팀 직원은 자기소개서도 수기로 써야 한다고 답했다. 이유는 뭐라뭐라 설명을 했는데 그로써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XXX 과장도 비슷한 눈치다. 신규 입사자 중 한 명이 묻는다.


  - 자기소개서도 다 쓰는 거 맞나요?

  - ... 네, 다 써주세요.



 신규 입사자들은 스마트폰을 키고, 자신들이 제출했던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수기로 작성하기 시작한다. 입사 지원 당시 요청받았던 질문은 대략 5개에 요구하는 글자수도 많았다. 그런데 배부받은 종이의 자기소개서 칸은 A4 80% 정도를 차지하는 크기, 할당된 면적이 꽤 작다. 글씨를 작게 쓰면 가능하긴 하겠지. 


 옆을 보니, 그의 동기들은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적고 있다. XXX 과장은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별 말이 없다. 그는 우선 다른 정보들부터 기입한다. 자기소개서를 적기 시작하려는 찰나, 동기 중 한 명이 또 묻는다.


  - 저... 자기소개서 칸이 모자라는데, 한 장 더 주실 수 있나요?

  - 우선은 적을 수 있는 데까지만 적어서 주세요.

  - 알겠습니다.



 그는 XXX 과장의 이 말에, 용기인지 무엇인지를 얻은 것 같다. 가뜩이나 그의 자기소개서는 복사-붙여넣기로 집어넣은, 길기만 하고 내용은 없는 자기소개서다. 홈페이지 상에 분명 지원한 이력서가 남아있을 텐데, 수기로 다시 적으라니. 게다가 칸도 부족하다. 그는 용기랄지 무엇이랄지, 자신의 자기소개서를 다 적지 않고 압축해서 적는다.


 1000자가 넘는 내용을, 번호를 달아 대강 압축해서 적는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원문 : 호주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해 돌아왔습니다. 첫 번째, ....!@#$!@%#!@%#

  압축 : 호주 워킹홀리데이 성취 경험

           1) 돈 : #!@#!@%   2) 영어 : @!#!@%#  3) 경험 : !@#!@^@#^


 압축하면서 자신이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다시 읽으니, 새삼스럽지만 오타가 눈에 띄고 내용도 진부하다. 기업 분석 따위는 전무한, 그가 800곳 넘게 복사-붙여넣기로 난사하던 바로 그 자기소개 답변이다. 뻔하디 뻔한, 질문의 의도만 대강 끼워 맞춘 답변들. 이런 자기소개서 답변으로 도대체 어떻게 서류를 합격한 것일까. 지금이라도 이 자기소개서를 다시 검토하여 합격을 취소한다 해도 그는 뭐라 항변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자기소개서를 더 압축하고 가공하며 숨기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XXX 과장은 작성이 끝난 서류들을 걷어간다.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하더니, 위층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 위에 올라가서, 인사팀에서 간단하게 안내받고 각 팀으로 가실 거예요. 사장님이랑 인사를 할 수도 있는데, 오늘 스케줄이 되시는지 모르겠네요.

  - (신규 입사자 일동) 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니, 회의실에 잠깐 들렀던 양복 차림의 인사팀 직원이 맞이한다. 

  - 서류 작성 잘하셨죠? 자, 지금 바로 사장님 뵈러 가실 겁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최종 면접을 봤던 회의실 바로 옆, 커다란 나무 문 앞에 선다. 인사팀 직원은, 전부 들어가면 인사를 하라고 말하고는 공손히 노크를 한다.

  (똑똑)

  - 예~

  (신규 입사자들이 나란히 들어간다)



 CEO, 즉 사장. 그는 CEO를 보자마자, 최종 면접 때의 면접관 4라는 것을 눈치챈다. 첫인상이 건설 소장 같았던, 최종 면접에서 가장 질문을 많이 했던 면접관이다. 그새 머리를 잘랐는지, CEO의 머리는 아주 짧다. 그의 느낌에는 거의 '반삭'에 가깝다.

 맨 처음 들어간 동기는, 다른 동기들이 모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인사를 하려 했다. 하지만 CEO는 면접 때처럼, 성격이 조금 급한 듯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신규 입사자들에게 다가와 악수를 한다.


  - 자, 그래, 반가워요~

  - 안녕하십니까!

  - 반가워요~

  - 안녕하십니까!

  - 반가워요 ~ 

  - 안녕하십니까!

  - 반가워요 ~

  - 안녕하십니까!

  - 반가워요 ~ 

  - 안녕하십니까!

  - (악수를 모두 마치고는) 자, 그래요. 다들 힘들게 들어왔으니까. 그래요. 가서 열심히 일해요

  -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감사합니다!



 CEO와의 만남이라길래 긴장했지만, 이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후 신규 입사자들은, 인사팀에서 약간의 설명을 듣고는 각자의 팀으로 뿌려졌다. 입사 첫날 정장을 입어야 했던 이유는 사장(CEO)를 만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입사 첫날의 정장은 제 몫을 다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