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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고양이 Dec 30. 2023

육십에 카페를 열었다.

눈 내리는 날에는...

눈을 치웁니다.


오늘처럼 치워도 치워도 끊임없이 내려올 때에는...


우다 마다를 반복합니다. 주로 남편이 치우고 전 자잘하게 손을 보탭니다.


눈사람을 만들다가 포기했어요. 사실 전 눈사람을 제대로 만들어 본 적도 없어요. 오늘은 쉬어가는 페이지 같아요. 동네 구석진 골목 끝 카페에 눈발을 헤치며 찾아올 이 계시면 베리베리땡큐입니다만...

 

옆집 결이와 민이는 신바람이 났네요. 녀석들의 신나서 흥분된 목소리가 카페음악과 콜라보 화음을 만들어 내네요. 집 앞 눈 위에서 썰매라도 타는 모양입니다. 저희 동네는 비스듬하게 경사가 있어요. 언덕이던 곳을 평지로 만들어 집을 짓다 보니 다듬어지지 않은 골목울퉁불퉁 오르막 내리막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들에게는 쌓인 눈 위를 스치며 미끄럼 타기 아주 좋은 환경이네요. 다행히 결이네는 골목 끝집이라 이웃들에게 방해될 것이 그닥 없습니다. 그냥 신나게 놀기만 하면 되는 거죠.


큰아이가 아장거릴 때 서울대 근처 언덕 위의 하얀 집 꼭대기층에 살았더랬어요. 관악산이 한눈에 보이는  좋았고, 이웃들도 고만고만하니 재미있었어요. 사계절을 다 품고 사는 기분이 들기도 하던 곳이랍니다.


그런데, 눈 내려 쌓이는 날은 조금 다릅니다. 가파른 언덕은 사건을 유발하는 지정학적인 요소를 품은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른 출근을 하는 남편은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지요. 역까지의 거리가 운 겨울 걸어가기에는 만만치 않았거든요.

그날 아침은 날씨도 영하로 뚝 떨어져, 내리는 눈은 쌓여 얼어 버릴 것이 자명해 보였습니다.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남편이 차를 가지고 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베란다로 보이는 골목상황이 도전해 볼 만했나 봐요.

만만치 않깊게 자리한 주차장턱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그리고는 언덕내리막 20미터까지는 사천리로 주행해 나갔습니다.


우리는 눈 쌓인 언덕운전에 대한 어떤 데이타 없었습니다.  막연하게 괜찮겠지? 어떻게 되겠지? 정도...

이십 미터를 통과할 즈음 거기서부터가 아주 가파른 경사라는 것을 깨달을 때에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습니다. 자동차바퀴는 위태롭게 겉돌 시작합니다. 걱정이 된 나는 차 곁으로 가서 도움 되지도 않는 훈수를 던져봅니다만 남편귀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동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언덕 양 옆은 오종종 도로를 바라보고 지어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차는 집을 덮칠 것 같이 좌우로 힘없이 휘둘렸어요. 핸들과 브레이크는  할 일을 잃고 무력해졌고요. 평소 베테랑 운전센스도 빙판에서 미끄러지는 바퀴를 어쩌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좁은 가파른 골목길에 별안간 모세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나와 있었어요. 손에는 삽과 빗자루를 들고서요. 당시  느꼈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지나는 차가 휘둘리는 바닥 쪽을 재빠르게 쓸어 줍니다. 연탄재를 부수어 바닥에 발로 밟아 다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수호천사들 눈 때문에 생긴 빙판을 쓸고 걷어내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평소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들이었고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기도 했어요.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자동차 바퀴, 눈앞에 놓인 타이어가  무사히 지나갈 수 있는 길트임에만 집중하더군요. 그들은 수신호로 멘털 나간 남편을 안심시키고, 그들이 인도하는 데로 남편의 손과 발은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소리 없이 쌓이는 눈공격에도 불구하고 손과 손이 맞잡은 덕분에 무사히 위기에서 벗어나 평지로 내려 달리는 데 성공합니다.  빙판길을 기어기어 힘들게 운전해야 하는 날에 어김없이 소환되는 추억의 한 장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날 입만 살아 빈손으로 재갈대던 제 부끄러움도 함께말이지요.


글을 쓰는 도중에 결이가 들어왔네요.  "겨 얼이야.... 우리 결이 눈사람이 됐네." "라떼, 따뜻한 라째(떼) 쥬떼요(주세요)." 엄마심부름으로 재미 삼아 오는 친구입니다.  첫 개시 손님은 세상 귀여움을 다 가진 것 같은 결이가  되겠습니다. 모자 위에는 눈을 소복이 얹어 덤으로 달고 말이지요.  투둑 녹아 떨어집니다.


자기 이름이 적힌 쿠폰을 찾아 카드와 함께 조막손을 들이미네요. 이들은 그냥 다 천사 같아요.


딸기맛뿜뿜 넣는 초코 박힌 쿠키를 서비스로 주었습니다. 미끄러운 계단길이 염려되어 집 앞까지의 급서비스는 덤입니다.


그 언덕집에서 이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분양받은 내 아파트로 입주했고 언덕길 눈 치우는 그런 풍경은 이제 지나간 추억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이십년후 좁은 골목길을 품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될 줄이야.. 이제는 지나가는 누군가를 위해 집 앞을 치워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았네요.


오늘처럼 쉬지 않고 쌓이는 눈은 남편으로 하여금 새벽, 아침, 아니 지금까지도 쉴 수없는 노동을 제공하네요. 이렇게 대책 없이 쌓이는 눈에는 염화칼슘도 소용이 없어요. 녹는 시간보다 쌓여가는 양이 훨씬 많아서요. 이 집 저 집 앞 뒷집 할 것 없이 골목으로 나와 눈을 치웁니다.  내 집 앞뿐 아니라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집 앞까지요.  쌓이는 눈을 치우면서 이웃들끼리 세모의 정을 나누는 풍경도 여기저기 보입니다.


오늘은 한가할 겁니다. 커피를 한 잔 내리고 한 모금 삼키고 글을 쓰다가 창밖을 보다가를 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는 도중에 다시 테이크아웃 손님이 다녀가십니다. 그럭저럭 빈 손은 아닐 듯합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눈은 감성을 자극하고 피아노 연주곡은 내 손에 리듬감을 보태줍니다. 새해를 축하하는 메시지들이 도착했다는 카톡소리가 계속됩니다. 소중한 인연들이 전해주는 덕담도 눈처럼 쌓여지고 있나 봐요.

카페영업도 오늘이 올해 마지막 오픈입니다.


또, 손님이 방문해 주셨어요. 역시나 창밖으로 내리는 눈은 덤으로 기분 좋게 해 주나 봅니다. "커피맛이 너무 좋네.." 하시네요. 외국 어딘가를 잠깐 생각해 내시기도 하구요.


새해에도 늘 그렇듯  저는 이곳에서 커피를 내리고 만나는 누군가와 웃고 떠들면서 일희일비하며 살아갈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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