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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고양이 Jan 08. 2024

육십에 카페를 열었다.

작은 카페겨울은...

춥다... 그리고  조용하다.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한가 하다. 추우면 나오기 싫으니까 어쩌다 날 좋으면 나들이 간다고 들를 일이 줄어드나 보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잘 놀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브런치에 글도 올리고 책도 읽는다. 새로운 메뉴개발도 시시때때로 한다. 가구 위치(가구라고 해 봤자 의자 테이블)도 바꿔보고 벽 장치도 새로 만들어 붙인다. 여기저기 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새 해가 되면 수거한다.


들어오시는 손님들의 기분을 고려해서 카페 안에는 늘 커피 향과 쿠키 굽는 냄새가 나도록 매일 조금씩 굽는다.


성수기만큼은 아니어도 꾸준히 찾아 주시는 단골들 덕분에 쉼 없이 돌아가기는 한다. 다만 슬로 모션으로 움직여도 된다. 어쩌면 작은 동네 카페의 본모습이 이러할지도 모른다.  손님들은 한적한 분위기에 취해 창밖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기고 한다.

어제 내린 눈이 아침이 되니 얼어붙어 버린 곳이 많다. 염화칼슘을 카페 계단 그득 뿌려두었는데 하얀 알갱이가 되어 흩뿌려져 있다. 진주목걸이가 끊어져  쏟아져내린 것 같다. 덕분에 계단과 입구의 눈은 다 녹았다. 작은 빗자루로 살살 쓸어내어 길가  얼어붙은 곳에 뿌려주었다.


삼 년이 넘어가도록 카페는 아직 수도관이나 화장실물이 얼어 버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카페 안의 머신등 열기기 덕분일 수도 있고, 설비공사가 꼼꼼하게 되어 있는 까닭일 수도 있다. 첫 해 겨울에는 지레 겁먹고 난방을 낮은 온도로 돌게 놔두었었다. 그런데 영하 20도 언저리까지 내려간 어느 날 그만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새벽이 돼서야 기억해 내었으니 벌어질 일은 다 벌어졌을 것이었다.

다행히 도도, 화장실도 다 괜찮았다. 화분에 있는 식물들도 그래 보였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금전수 색깔이 갈색으로 변해 있다. 둘째 친구들이 개업선물로 준 거라 물은 내가 주어도 녀석이 아끼는 화분이다. 날이 갈수록 줄기는 힘이 없어지고 마침내는 푹 고꾸라진다. 그 와중에도 줄기 끝에 있는 잎들은 초록으로 생생하게 매달려 있다... 아이러니했다. 죽어 가는 줄기의 양분으로 그렇게 끝까지 살아 있는 모습이라니...

날이 갈수록 삭아지는 것들을 제거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끝내 풍성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모든 줄기가 사라져 버렸다. 표면적으로 화분에는 흙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놔두었다. 구석진 곳에... 봄이 될 때까지... 따뜻한 날을 기다리기 했다.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없애버리기 위해...


봄이 되어 세상이 온기로 가득 차기 시작한 날 그날은 금전수에게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화분의 흙을 걷어 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윗 줄기들이며 잎들은 다 죽어 버렸고 그동안 물도 주지 않았으며 식물에 대한 어떤 정 같은 것이 전혀 없다. 나로서는 귀찮은 작업 하나 가 늘었을 뿐이었다.


평소에 살아 있는 식물이 담긴 화분선물다. 그저 부담스러운 일거리가 늘었다 정도였다. 생명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작은 삽으로 흙을 긁어내고 보니 감자줄기 같은 뿌리가 보였다. 죽었다고 하기에는 제법 실하다. 그런데 뿌리 사이에 여드름처럼 성이 나서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뭐지? 싹인가?


살 것인지 말건지를 모르기에 무작정 없 버릴 배짱은 없었다. 일단은 작은 화분으로 옮겨놓보기로 했다. 그리고 일 년여를 생각날 때마다 물을 주면서 살펴는 보았다. 그러나 그대로 변함없이 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 얄팍한 흙 속에서 생명의 불씨를 살려보려 애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벌써 쪼그라들어 버렸을 수도 있다. 가끔은 궁금해 뾰족한 것으로 훑어보면 그냥 그렇게 있었다. 죽은 것일 수도 있지만 살지도 모르는 것이기도 했다.


2023년 봄인 것 같다. 늘 그렇듯 습관적으로 바라보던 어느 날, 흙 밖으로 초록의 작은 돌기를 내어비친 것이다. 나는 눈치를 챘다. 내 호들갑은 말할 것도 없다. 흠... 이제는 제대로 살려봐야겠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나도 그렇다.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극 I성향인 그것을 채근하지 않기로 했다. 싹으로 내밀어 놓고는 요망하고 발칙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그것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렇게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도 먹지 않는 듯 매일을 그러기로 한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해 좋은 어느 날부터 아주 조금씩  제 몸을 보여 주기로 하는 듯했다. 나는 여전히 서두르지 않고 있다. 이제는 제법 나! 금전수야.. 한다. 기며 새로 돋은 앙증맞은 입들까지...


길고 추운 겨울을 버티는 것은 나뿐이 아니었구나. 카페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같이 벗 되어 견뎌주고 있었구나.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로구나. 내가 너를 몰라봤다. 내 손에 귀히 들어온 니들을 홀대했다. 적당히 물 주고 말라비틀어지면 쉽게 버렸구나. 마당 흙이 그 안의 것들을 품고 때를 기다리듯이 나도 니들을 품고 돌보았어야 했다.


다시 견디는 세 번째 겨울... 쉽게 포기하고 마는 베고니아와 겨울을 버티기 힘든 아이들을 집으로 옮겼다. 금전수 오늘 집으로 옮겨질 것이다. 이 아이는 내가 살린 것이다. 아니 살겠다나를 붙들었다. 고양이 두 마리도 부족해 이젠 식집사까지 나는 정말 공사다망하다.


카페의 겨울은 길다. 인적이 일찍 끊어진다. 연말년시에는 가족행사가 많아 카페에서 한가하게 차를 마실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거의 매일 찾아와 두런대던 단골들도 걸음이 뜸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제시간에 오픈하고 개발하며 치우면서 바쁘게 움직인다.


작은 동네카페의 겨울은 그렇게 지나간다. 삼 년을 지내보니 이제는 잘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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