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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고양이 Apr 08. 2024

육십에 카페를 열었다.

봄... 내 정원은 이제 시작이다.

작은 꽃들과 뒷 뜰에 심을 상추모종, 셀러리, 겨자 채 등 이 것 저 것 탐을 낸 탓에 여린 식물들은 트렁크 안에 가득 담겨와서 마당 가득 펼쳐져 차례를 기다렸다.

남편은 저쪽 밭에 상추등 야채심기 삼매경에 빠져있다.

호미와 삽을 들고  흠... 키 순서대로 심는것이 좋겠지? 그런데 가늠이 안된다.  작은 화분에 담긴 상태로는...식물지식이 영 마땅찮은 게는 어려운 미션이다.  입맛대로 여기저기 구색만 맞춰  화분들을 가져다 놓았다.  황량해 보여도 기온이 더 올라가면 이곳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 된다.

꽃과잡초들(사실 경계는 애매하다)은 영역을 넓히느라 소리 없는 전쟁통일 것이다. 땅속에서...


기대에 마주했던 작년의 백합은 1미터 가까이 자라서는 끝에 한 송이 달랑. 여러 송이를 기대했던 나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튤립도 그랬다. 구입할 때 맺힌 송이 그대로  영 힘이 없었다. 그렇게 관심에서 쉽게 멀어졌다.


그런데 봄, 마른 흙 사이에 초록 뾰족한  몇 개가 인사를 한다.  튤립이다. 아... 작년 튤립을 심어놨던 곳이구나.   봐! 우리 보이지? 짜란~~~ 우린 살아 있었어.  자잘한 줄기가 여럿 동반되어 있다. 세대가 더 늘어난 것이다.


경기도 북부에 위치한 파주는 봄이 늦다. 따뜻한 남쪽부터 꽃소식이 전해지고도 한 참후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봄이 사그라질 때즈음  휘몰리는 꽃잔치를 펼친다. 그래서  더 좋다.    곱절의 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해가 길어지면 조급증이 생긴다. 요맘때만 재발되는 병이다. 수시로 기웃대며  휘적댄다. 그렇지.. 뾰족한 것이 갈색으로 빼꼼 내밀어 동태를 살피고 있다. 요놈!  너 백합이니? 단단한 줄기로 멋없이 위로 솟구치다가 끝에 단 한 송이가 억지로 달려 있던... 너도 살아났구나!  기특하다 기특해! 그저 반갑고 신기하다.  이게 자연이라는 거구나..

작은 화분에 실려왔던 꽃 잔디는 해가 거듭 될수로 퍼져가고 몇 뿌리로 시작한 달맞이꽃도 그러하다.


마당 있는 주택에서 처음 맞던 봄... 잡초마저도 신기했다. 뭔지 몰라도 좋았다. 

"여봐 여봐 여기도 뭐가 나오고 있어." 호들갑을 떨며 내 공인냥 가족에게 자랑질을 했었다. 나는 콩잎을 보고 깻잎이라고 할 만큼 무식하다. 


몇 번의 계절을 마주하다 보니 들일 것과 내 칠 것,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할 것의 기준이 잡혀간다.

봄의 정령 민들레는 욕심이 많아도 너무 많다. 잔디밭이고 돌틈이고 어디든지 제 영역으로 만들어 버린다. 노랑꽃이 활짝 피어 오므라질 쯤에 꺾어 버려두면 그 상태로 씨앗이 되어. 생명력과 번식력이 아주 강하다.


고들빼기를 처음 맞이을 때, 아싸! 반겼다. 장아찌며 쌈으로 등 귀한...그러나 이제는  측백반송밑  어디든지 자리해 버리는 통에 솎아 내느라 애를 먹는다.  민들레도 고들빼기도 땅 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다른 것들은 얼씬 말라 윽박지른다. 괭이발톱도 만만찮다. 

영역다툼에서 이들을 완전히 퇴치할 수는 없다.  최대한... 틈나는 대로 솎아내는 수 밖에는 방도가 없다. 덕분에 얼굴과 팔뚝은 거칠어지고 여기저기 그을려 건강한 촌댁 외모가 된다.


작년 가을마당을 풍성하게 자리하 국화가 전멸했다. 요맘때면 여린싹들의  신고식이 영 없다. 심지어 국화이지 싶어 내버려둔 것이 쑥이었다. 된장국 한 움큼 넣었을 뿐인데 향이 기가 막힌다. 그래서 뿌리를 살려두기로 한다.


마당에서는 사라진 국화건만 앞집 마당에는 여기저기 실하게  솟아나고 있었다. 징징대었더니 아예 화단 하나를 통째로 뽑아 주신다. 손이 크시다. 매일 신세를 지고 산다.


식물과 맞는 DNA가 있다. 죽어가는 식물도 살려내시는 시어머님이 그랬고 마른땅을 옥토로 만들어 과실을 키워내시던 친정아버지가 그랬었다. 앞집 언니도 동네 사람 모두 전문가들이다.

기르기 쉽다 내 손에 쥐어 지면...물만 주면 된다해서 물만 주었건만 결과가 이상해진다.


"사장님은 식물을 좋아하시나 봐요. "

지들끼리 알아서 땅에서 자라이쁜 것들은 나를 식집사로 오해하게 한다. 주저리주저리 역사깊은 내 만행은 삼켜진다


카페 마당의 봄은 겸손하게 시작한다.  '수줍은 첫사랑'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작년부터 자리를 잡아 마당 곳곳에 제비꽃들이 모여 모여 있다. 생명력 좋은 이 아이들을 보이는 데로 뽑아다 바위틈과 영산홍사이에 자리해 주었더니 금세적응하고는 오종오종 댄다

몇 년 전 앞집에서 얻어 온 매발톱과 달맞이꽃은 사방으로 퍼져 화단을 윤택하게 해 준다.

동네 아무렇게나 피어 있던 민트를 한 뿌리 심어 났더니 사방에서 장미 닮은 새 싹을 들이민다.  조금 더 자라 풍성해지면  모히또에이드의 재료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화분으로 들여 온 돌단풍은 이젠 마당 터줏대감 행세를 한다.

영산홍은 분홍입술을 살짝만 내비치고는 안달복달하는 내 애간장을 태운다. 요때만 허락된 즐거운 애닳음이다.  봉우리 때가 가장 좋다. 만개하는 순간부터 헤퍼진다.  꽃이 질 때즈음이면 나이 지긋한 여성들은 괜히 한숨 지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꽃과 여자는 닮았다.

명자나무는 작년보다 더 많은 꽃을 보여준다. 사실 이 아이는 사라질 뻔했다. 정원을 일굴 때 조경사가 거슬린다며 뿌리째 뽑다가 너무 깊게 박혀 결국 포기했었다. 잊고 있었는데 그 뿌리에서 돋아난 잎들이 수를 늘리더니 어느 봄날 빨갛고 예쁜 몇 송이가 올라왔다. 깜짝 놀랐다.  빨갛고 요염한 그 꽃은 매혹적이었다. 동백꽃과도 비슷해도 보인다. 산책길 흔히 볼 수 있는 이 꽃은 야하고 이쁜데 수수하. 매년 조금씩 조금씩 수를 늘리더니 올봄, 제법 많은 꽃들이 달려 나왔다. 한 바터면 놓칠 뻔 한 이 귀한 것은  마당의 스타 중의 하나가 되었다.

봄일 때만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 겨우내 땅 속에서 버틴 인내심... 매년 변함없는 꾸준한 루틴...

땅을 헤집을 때마다 뭔지 모를 것들이 제법 숨어있다. 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덮어 두고 기다려 보면 알 것이다.


자연은 그렇다. 한 수 위다. 사람은 못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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