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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고양이 Apr 25. 2024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로 살고 싶다

29년생 동상과 옥실은

부부다. 옥실은 부유한 집안의 장녀로 유복하게 자랐으며, 동상 또한 튼실한 가정의 장남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겪어냈고, 6,25 사변등으로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었지만  견뎌내었다.


동상 혈압이 일정 이상이어서 흥분을 하거나 하면 피가 눈으로 귀로 흘러나와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예고 없이 터져버리는 불안정한 혈액안큼 다양한 사업템이 그 의 뇌를 지배하고 운동장처럼 굴러다녔다.  구름 잡는 사업시작은 늘 배드앤딩이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버틸 여력이 없었다. 시작과 동시에 상승하다 이내 고꾸라졌다. 하나로 끝내지 않았다. 도전하고 실패하는 들을 반복했다. 신기한 것은 한참 지난 후 대박 이 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른 도전에 빠른 포기로 성공을 못 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가정경제는 바닥났다. 동상의 뒷 처리는 늘 옥실 차지가 되었다. 일수를 얻어 빚을 갚고 매일 조금씩 상환했다.

십장생  한 땀 한 땀 바느질은 삯바느질에 소용되었다. 침부터 밤까지 꼬박해도 입에 풀칠조차 어려웠다.

나라에서 나누어진 정부미는 쌀과 린 보리가 섞인 것이다. 옥실은 채로 쳐내어 걸러진 쌀로  만들어 팔았다. 미처 팔지 못 하는 상황이 와도 괜찮았다. 일곱 식구가 먹어치우 살이되고 피가 될 것이라 했다.


 옥실의 떡은 인기가 있었다. 소진되어 떨면 그 돈으로 더 많은 쌀을 샀다.  쌀을 사고도 돈이 남았다. 더 이상 굶지 않아도 되었다. 기계가 하나 둘 늘어나며 방앗간을 겸하게 되었다.


다섯 자식 들은 명절대목이면 훌륭한 노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옥실로부터 노동에서 해방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동상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남자였까?아니면 옥실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까? 새로운 시작을 멈추지 않는 동상도, 또 그것들을 하나하나 뒷정리하는 옥실도 대단했다. 어찌 보면 기가 막힐 정도로 합이 맞는 커플일 수도 있겠다. 실패 후 기죽지 않는 남편과 묵묵히 희생을 업보로 받아들이는 곰 같은 아내...


 방앗간운영은 상노동에 속한다. 밤낮이 없으며 남들이 쉬는 날이 가장 바쁜 날이다. 딸들은 출가를 했고, 아들들은 제 살 궁리로 바다. 남의 손을 빌려 보았으나 내 것처럼 할 리없다.

쌀을 씻으라 하면 반이 물과 버려졌다. 수입은 쌓이지 않고 인건비로 다 지출되었다. 남는 것이 없는 사업 탓에 옥실의 몸만 축나고 말았다.

 결국 이십여 년을 운영며 가족들을 먹여살리던 방앗간의 스위치를 내렸다


옥실은 기타를 배우기 시작다. 주일 저녁 찬양을 위해라고 했다. 우아하게 붓 들었다. 동상은 아내를 위해 방을 꾸며주었다. 주일이면 사이좋게 예배에 참여했다. 로멘스 허즈번 동상의 어깨에는 늘 캠코더가 들려 있었다. 그렇게도 반대하던 교회 행사에서 연신 아내를 담았다. 부에게는 참 좋은 나날들이었다.  

거칠고 상처투성 손가락 튕겨지며 찬송이 되었다. 기교없이 정직하고 정성스러웠다. 벽같이 먹을 갈고는 긴 화선지에 좋은 글귀들을 적어 내렸다.

맘 놓고 여행도 갈 수 있었다. 음으로 해외여행도 다. 식들을 무탈하게 키워낸 영웅의 호사는 십 년 정도는 가야 했다. 그래야 공정하다.


개념 말아먹은 암덩이는 옥실의 몸을 숙주로 삼았다. 이는 더 이상 그녀의 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도 된다.

예순일곱...

이제는 쉬어도 놀아도 암말 할 사람 없는 때에 그녀 세상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토록 믿고 의지 하던 하나님 융통성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자식들은 하루아침에 홀아비가 된 동상이 걱정되었다. 상은 통곡했다. 다행스럽게도 슬펐지만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 슬플지언정 여행도 잘 다녔다. 아이러니하게도 목사님이 벗이 되어 주었다. 그런 콜라보는 상상도 해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옥실의 신앙에 불만이 아주 많아 방해 꽤나 했었기 때문이다. 목사님과 베스트 프렌드... 이것 또한 옥실이 가고 없는 세상에서의 자된 약한 남편에 대한 큰 그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동상은 혼자의 세상에서 익숙해져 갔다


어느 화창한 초여름날 뇌출혈로 쓰러졌다. 오이도로 놀러 가는 중이었다고 했다. 여자친구가 구급대를 불렀다. 이상한 상황에서 우리는 첫 대면을 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옥실과는 완전 다른 스타일이었다. 실에서 물끄러미 서로를 응시하고 몇 번의 방문이 있었다. 썸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약해지다 못해 앙상해진 그는 여든여덟에 양원에서 는 듯 생을 마감하였다.  그렇게 옛사람이 되었다.



다섯 형제들이 모일 때면 늘 부모님과의 일들이 꺼내진. 번을 반복했을 비슷한 레퍼토리가 명절이면 기념일이면 다시 소환된다. 다른 집과 특별할 것도 없건만 각색되기도 하고 또는 새로운 것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 낡은 화젯거리로 웃고 떠들고 아쉬워하다 헤어지곤 했다.


엄마한마디로 희생의 아이콘이다. 가족만을 위해 세상 모진 풍파를 혼자서 쳐나간 용감한 여장부였다. 주변사람 넋두리를 다 들어주 정작 자신의 한풀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신중한 여자였다. 다섯 자식을 건강하게 키워낸 능력자였다. 자신을 다 내어주고도 정작으로 해 준 것이 없다며 한탄하던 답답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멋진 말은 아버지가 다 하셨다.

"나는 니들이 민들레라고 생각했다.  어디던 뿌리내리고 잘 살아내는 민들레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쓸모를 다할 뻔한 두 분의 앨범을 큰 언니가 소장하기로 했다. 몇 년이 지나 문득 부모님 생각으로 먹먹해진  큰언니는 무심코  낡은 앨범 넘기기 시작했다. 언니 나이가 엄마 돌아가실 적 보다 이제는 더 많다.

시선이 두 장의 사진 앞에서 멈춰졌다. 사진 속에서 부부는 한껏 행복해 보인다. 젊어서 이뻐서 더 슬픈 이 두 장의 보석이 어디 숨었다가 이렇게 발견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여차하면 불쏘시개가 될 뻔했다. 큰일 날 뻔 했다.


이후 화제가 급 변환되었다. 비꽃 처럼 귀염뽀짝 엄마옆에, 멋진 아버지가 있다.


사진 두 장이 터닝 포인트가 되을까? 잠들어 있던 새로운 내용들이 끄집어내어 졌다. 일방적으로 엄마에게 책임을 전가하곤 했던 아버지는 보내드리기로 했다. 이제는 다섯 형제들이 각자의 추억속의 따스했던 아버지가 떠 올려졌다. 이렇게나 많았다고? 엄마의 관점에서만 보면 다소 치사한 남편일지언정 아버지로서는 꽤 괜찮았구나. 왜곡된 부분을 정정하며 형제들은 또 웃어 젖힌다. 부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아무도 모른다.  어설프게 넘겨짚지 말아야 할 아주 깊은 그것...


사진속에서 엄마가 웃어서 좋다. 엄마가 행복한 것 같아서 너무 신이 난다. 아버지도 좋다. 그 시절 그때는 다 좋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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