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열고나서야 마을사람이 되었다.
부녀회원입니다만...
"이 년 동안 부녀회 행사에 참여 안 하신 분들은 부녀회 명단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마냥 서글서글 웃음 띈 얼굴에서는 출력될 일이 없을 듯한 '명단제외'라는 단호한 단체 문자에 불성실 협력러는 괜히 찔린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눔 한 씨에서 발화한 일일초만개에 하하 호호했었다. 단칼스런 캐릭터가 아니다.
"시아버지 병수발을 삼십 년 했거든 가끔 노인네가 밉더라고... 그래서 막 욕도 했어. 아버님, 나한테 왜 이러냐고... 그러면서 또 짠해서 붙들고 엉엉 울었어. 이렇게 속없이 웃고 다니니까 마냥 재미나게 산 거로 보이지?"
파란만장했을 인생담도 무심한 듯 끄집어내어서 다른 사람 것처럼 말했다.
"너 짤리나 보다." 남편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났다. 반드시 참여해서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하라 느물댄다.
7월 15일 초복대신 14일 토요일에 마을회관에서 '초복놀이'를 한다. 부녀회원들은 금요일 오후 두 시에 재료준비에 참여해야 하며, 14일에는 오전 7시까지 집합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제성은 없다. 그러나 왠지 모른척하면 모른척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마을로 이사 들어온 것은 2016년이었고, 카페를 시작한 것은 2020년이다.
한 아파트에서 이십 년 넘게 살았다. 그럼에도 목례하는 정도의 예를 갖추는 이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고 패턴이 바뀌지는 않았다. 이웃이라기보다는 이방인에 가까웠다.
낡은 패널건물이 와지끈 토하물을 쏟아내던 날. 복작한 소란은 조용한 마을, 몇 안 남은 원주민들을 들썩이게 했다.
"카페? 식당을 한다고?"
"식당이 아니라 카페 할 거예요."
나이 지긋한 어르신께 거듭 카페임을 강조했다.
"카페?...
"식당을 여기다 차린다고?"
"그렇다네..."
배달사고가 생긴 것 같다. 이미 퍼져버린 가짜뉴스에 분분해 바로 잡을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다 알게 된다.
막다른 골목 끝, 주민들 발길도 뜸한 이곳에 '식당'이라니... 아니 식당이기를 바라셨나? 아니면 식당일리가 없다는 것인가?
골목길에 자주 나가있었다. 어느 날 까만 비닐봉지가 불쑥 내밀어진다.
"이런 것도 먹어요?" 무심한 듯 빤히 쳐다보신다.
하얀 줄무늬 박힌 어른 주먹만 한 호박하나가 들어 있다.
"그럼요 그럼요, 저 이 호박 너무너무 좋아해요. 없어서 못 먹죠. 게다가 이건 직접 제배하신 거잖아요. "
호박 한 번 못 먹어 본 여자 여기 있소 호들갑을 떨었다. 이런 말들이 술술 나오는 내입놀림이 감탄스럽기도 하고 가증스럽기도 했다. 이런 몸에 밴 접대언어는 학원 원장 삼십 년 덕분에 몸에 배어있는 것이다.
"그래요?" 그제야 살짝 웃음기가 보인다.
노인회 회장 이희자여사였다. 지금이야 넙죽 샐 샐 거리며 얻어먹고 그런다지만, 당시에는 왜? 나를 아시나? 그냥 받아도 되나? 갑작스러운 호의에 저윽히 당황한 것도 사실이다.
길어지는 공사는 낯 선 이웃들과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 주고 있었다.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 두둑 두둑 계단 오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롤휴지를 드신 분을 선두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웃음소리와 인사로 카페 안은 소란으로 북적였다. 뒤따라 양팔에 안긴 플라스틱화분 안에는 아레카야자가 사레를 치며 휘적대고 있었다. 하얀 리본에 금색테두리를 하고는 커다랗게 '야당오리'라고 쓰여 있었다. 한 동안은 야당오리의 의미를 몰랐다. 식당인가 하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야당5리였던 것을 알고는 혼자 웃었다.
인사 몇 번 나눈 것치곤 호의가 과했다. 어쩌면 그때까지 내 사전에는 없었다. 음료값을 결제하는 과정에서도 실갱이가 벌어졌다. 선물등으로 부담을 느낀 내가 결제를 거부한 것이다. 개업한 곳인데 어림없다 현금을 쥐어주신다. 한 푼도 남김없이 다 받아야 장사가 잘 된다고 덕담도 잊지 않으셨다.
"사장님도 부녀회 회원이야." 카페를 오픈하고 2년쯤 지난 어느 날 대뜸 포지션에서 레벨 업되었음을 알림 받았다. 한 동한 뜸했던 부녀회가 부활되었으며 박경자언니를 회장으로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어머! 감사해요. 저도 붙여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나이롱일텐데요. 참여가 쉽지 않아서요."
"괜찮아, 가끔 얼굴만 디밀면 돼."
가입조건도 간단했다. 5만 원이면 된다. 보유 중인 회비를 N분의 1로 나눈 몫이라고 하셨다.
재료 준비하던 날은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빙수와 음료, 다과를 준비해 마을회관 문을 열였다. 북적대는 주방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 사장님 거야. 내일 입고 와!"
하얀 물방울이 콕콕 하늘색바탕에 프릴이 달려있는 앞치마가 놓여있는 곳을 눈으로 가리키신다. 한 개 남았다. 그러고 보니 모두가 하나로 하늘색이다.
'내일... 반드시 참여해야겠구나...'
다음날, 나는 녹두전팀에 배속되었다. 커다란 대야 속에는 녹두와 각종 재료가 섞인 반죽이 가득 들어 있다. 야채 전팀은 이미 시작이 되었다. 양옆에서 배틀이라도 하듯 뒤지개와 국자가 쉴 새 없다.
모두 말이 굳이 필요 없는 베테랑들이다. 녹두반죽으로 결속된 동지? 들은 두어 시간 같이 했다고 서로 웃어도 결이 달라져있다. 팀웍의 결과 끈끈한 동지애가 생겼다고나 할까? 어색했던 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사실 나는 부녀회원이지만 아웃사이더였다.
'송학말길뚝배기빙수'저녁 우리 부부는 특별히 두 마리를 담아다 주신 삼계탕을 저녁으로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다 먹어치웠다. 닭다리를 뜯으며 오전 한 때 내가 해 낸 것들을 내 입을 통해 마구마구 풀어헤쳐지는 것을 남편은 잘도 참아 주었다.
며칠 뒤 장마시작은 온 하늘을 시커멓게 가려버렸다. 저녁, 문자하나가 톡 떨어진다. '부추 가져다 놓았어요. 부추전 해 드시라고...' 경자언니다.
내가 야당오리 골목 끝에 카페를 열지 않았더라면?
부녀회원일리가 없다.
이 집 저 집에서 농사지어 나눔 해 주시는 호박, 상추, 오이 등은 구경도 못 했다.
앞집 필녀언니가 키우고 아끼던 매발톱, 달맞이꽃, 국화등이 내 마당 한편을 자리할 리 없다.
매일 하는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연수언니라는 것도 알리 없다.
형순언니가 그렇게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
경자언니네 밭에서 나오는 찰진 옥수수맛을 모를 것이며, 마당 언저리 지천으로 나는 부추를 못 얻어먹었을 것이다.
가끔 지나치는 어르신들의 그을린 미소를 못 느낄 것이며, 아랫동네(긴 골목에서 갈라져 윗, 아래 정해놓았다) 사람들은 아예 모를 것이다.
이 이야기가 생겨날 리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