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순이는 어디 갔어?

니가 먹고 있잖아

by 오월의고양이

봄이면 가하려는 초등꼬마들의 발목을 잡는 복병이 있었다. 병아리 장수였다. 마다 반복되는 실갱이 했다. 결국 지고 말았다.

조를 때마다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아이들을 말려왔다. 그러나 그날은 둘째가 병아리 앞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태세였다. 언젠가 한 번 겪을 일이 오늘가?

달랑 한 마리 남아 있었기에 아이들은 더 조바심이 냈다. 저하고 있는 사이 누군가 채어 가면 낭패라는 것이다. 아파트만 수두룩한 이 신도시에 병아리완판이라니... 빨리 털고 가고 싶었던지 병아리 장사까지 깎아주겠다는 딜을 했다. 아이들의 눈빛은 애절함을 넘어 이번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밥도 안 먹고 양치도 안 하겠다며 협박을 했다. 장사꾼이라는 용병까지 얻게 된 두 딸은 안 사주고는 못 배기겠지 하는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잘 자랄 것이며 손도 가지 않는다는 추임새는 덤으로 딸려왔다. 상자째 건네주는 병아리를 그만 사고 말았다.


아이들은 입이 벙글벙글 코에 걸렸다 귀에 걸렸다 했다.


박스로 대강 둥지를 만들었다. 드나드는 쪽은 크게 지붕에 해당되는 부분은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내 주어 환기가 잘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바닥에는 신지를 조각내어 깔아주었다.

녀석들의 적응 랐다. 쉬 죽을까 괜한 고민을 한 것 같다. 노란 것이 종종 대며 쏘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싸고 잠도 잘 잤다.


둘째의 두 조막손에 쏙 들어갔던 작은 노란 병아리의 성장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몇 주 가지 않아서 깃털이 자라더니 뼈도 단단해졌다. 하루가 다르게 용모가 닭의 형태를 갖춰나가는 것이었다.


잘 자라는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닭으로 변해가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생각이 많아졌다. 의 새끼가 병아리였음을 새로운 사실로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완전한 닭의 모습이 되었다. 결단을 내려야 다. 이대로 계속 키울 자신감은 녀석이 쑥쑥 자라는 만큼 반대로 줄어들고 있었다.


결국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꼬순이 거취에 관한 안건 한 가지가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었다.

"싫어!! 싫어 싫다구!!"

'꼬'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둘째가 반대의사를 내비쳤다.

아예 등을 돌리고 팔짱을 낀 채 어떤 말도 듣지 않겠다며 삐딱선을 탔다. 째는 상관없다는 표정이다. 그동안 꼬순이의 만행?에 은근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에서 닭을 키우는 것에 대한 어려움. 또 이 환경은 결코 꼬순이에게 좋지 않음.

서울 할아버지댁엔 마당이 고, 뜯어먹을 풀도 있으며 담이 높으니 잃어버릴 염려도 없.

이서해야만 하는 이유들이 줄줄 나열되었다. 나긋나긋 조목조목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설득을 해 나갔다.

꼬순이와 헤어짐을 결사반대할듯했던 둘째도 점점 설득되어 갔다. 사실 꼬순이가 자라면서 아이들 물건이 쪼임으로 많이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서서히 득되어가는 듯 하다가

"그러다 하부지가 잡아먹으면?"

소 아버님은 잘 자라면 잡아먹겠다 입맛을 다시곤 하셨던 것이다. 닭을 집 안에서 키우는 우리를 못 마땅해 하시기도 했다. 당신들에게는 그냥 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부모님은 절대로 잡아먹지 않겠다 은 맹세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서날 제법 실하게 자란 놈들을 보시더니 시아버지 대뜸

"고놈 살이 차져서 아주 맛나겠는걸!"

라고 별생각 없이 내뱉으셨다.

그러자 간신히 눈물을 그렁그렁 헤어짐이 아쉬운 둘째의 작고 여린 눈망울 속에서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 그 거봐!! 하부지가 잡아먹는다잖아. 엉엉엉..."

다시 집으로 델꼬가자며 발을 동동거렸다.


애좀 놀리지 말라는 시어머님의 투박이 이어지고, 아버님은 절대 안 그러겠다 엄지검지를 다 걸어 사태를 정리하셔야 했다


시댁 방문할 때마다 꼬순이는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깃털에는 윤기가 자르르 렀다.



급조한 삼계탕사진

둘째는 서른이 넘었고, 결혼날짜까지 받아 놓은 상태다.

추석날 아주버님과 시누이가 방문했다. 돌아가신 아버님부터 요양 중인 어머님까지 갖가지 추억들이 식탁 위로 올라왔다. 키우던 개가 소환되고, 그것들 때문에 생겼던 에피소드들이 마구 방출되는 중이었다.

갑자기 둘째가 순이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다.


어느 날 할아버지 댁에 갔다. 할머니는 삼계탕을 내어 놓으셨다. 맛나게 먹다가, 꼬순이가 없어진 것을 직감했다.
"할머니 꼬순이 어디 있어?"
"니가 지금 먹고 있잖아."

...

그럴 리 없다. 시부모님은 그러실 분들이 아니다. 당신이 애지중지 이뻐서 물고 빨던 손녀가 키우던 닭이다. 그리 쉽게 잡으실 리가 없다. 그리고 그 닭으로 만든 삼계탕을 손녀 앞에 내어 놓을 만큼 잔인하지 않다.

사실은 이랬다. 어느 날 원인불명으로 꼬순이가 죽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알릴 수가 없었다. 친구분이 달라고 하셨다. 렇게 꼬순이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어쩌다가 둘째의 기억 속의 꼬순이는 그렇게 남게 되었을까? 당시 누군가가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은 것일까? 녀석은 그렇게 이십 년이 넘게 믿어 오고 있었다.

삼계탕을 마주할 때마다 그 시절 그렇게 예뻐했던 병아리를 먹었다는 죄책감 있었겠구나.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제라도 바로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당사자인 아버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기억소환이 불가능하시다. 진실규명이 된다 해도 스스로 가두어둔 기억을 지워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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