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이 카페가 되다.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잘 생각한 것 같다.
길어지고 있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만남은 강제로 제한되었고, 버티지 못한 자영업자들 다수가 문을 닫거나 폐업을 하고 있다. 시민경제는 바닥의 끝을 모른 채 추락하고 빌딩 여기저기 임대문의라는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어두운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나 같은 사람들 또한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누군가에게 위기가 또 그 누군가에게는 기회라 생각한다.
카페가 들어설 장소결정은 중요할뿐더러 난도 높은 과제다. 거주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야로수-파주 야당동에 있는 카페거리-길 쪽의 빈 상가들부터 하나씩 찾아 나서보기로 했다.
솔깃한 표정을 지으면 건물주와 중개사는 눈길을 주고받으면서 이 어수룩한 예비 임대인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진작에 나가고도 남을 매물인데 임자는 따로 있다고 했다. 손해 보고 임대한다고도 했다. 나는 상술에 잘 휘말린다. 판매자의 언변에 잘 속는다. 당장 계약하는 것이 좋다. 이미 몇 사람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가계약이라도 하고 가라. 아까운 거 놓치고 나오는 한심한 나를 향해 혀까지 끌끌 찼다. 누군가 탁 채어 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 때면 안전장치로 남편의 컨펌을 받기로 했다. 신기한 것은 좋은 곳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장소들이 다시 방문하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동네카페, 음악과 함께 두런거리는 소리가 베이스가 되고 커피 향이 공기를 삼키는 아늑한 사랑방으로 운영하고 싶었다. 차 한 잔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편하게 쉬다 갈 수 있을 것이다. 내 카페에서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소박한 추억 한 덩어리 가슴에 담고 가면 더 좋겠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좋아야 한다. 내가 가장 많이 바라볼 터이니...
거의 매일 아침 채비를 하고 나섰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만나고 들르고 들었다. 게 중에는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하는 곳도 있었고 몫이 이렇게 좋은데 왜 내놓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곳도 있었다. 부동산의 ㅂ 정도 아는 내가 매물을 보면 볼수록 안목이 늘었다. 편하게 은퇴 후 소일거리로 시작하기에 녹녹해 보이지 않았다. 월세를 감당할 수나 있을까? 고정비에 인건비까지 매월말마다 찾아오던 '반드시'지출해야 하는 것들의 무게를 이미 경험할 만큼 했다. 적지 않은 나이 때문일까? 매사가 조심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주차를 하고 집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대문 왼쪽 원룸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사무실로 세를 주고는 있지만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낡디 낡은 건물이다. 상태가 그러하니 월세도 아주 저렴하다.
내가 사는 주택은 본체 앞으로 잔디밭이 길게 조성되어 있다. 현관에서 나무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폭신한 잔디를 밟을 수 있다. 또 원룸 앞으로는 주차장 겸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는 아담한 정원이 있다. 원룸 두 채를 합하면 14평 정도 되는 사다리꼴 모양이다. 세를 줄 때마다 수리비가 더 들었다.
몇 년 전 살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아예 리모델링해서 말년의 삶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리모델링에서 제외되었던 원룸공간은 방치되어 남의 것인 듯 어울리지 않게 대문 입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번 손을 대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 볼 때마다 명치가 뻐근해지는 곳이기도 했다.
마땅한 카페부지를 못 찾고 헤매고 있을 때 눈에 들어온 원룸건물은 다르게 보였다. 궁하고 간절하면 보인다? 월세부담 없다. 출퇴근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소박하지만 제법 그럴싸한 마당이 있다. 게다가 내가 건물주다. 카페 하기 딱 좋은 장소가 바로 내 집에 붙어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긍정적이다.
단점은 더 많았다. 아주 후미진 막다른 골목 끝에 있다는 것.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다. 차가 들어올 수는 있지만 돌려 나갈 수 없는 좁은 골목이다. 차 한 대를 골목밖까지 내 보내기 위해서 50M가량 후진해 주어야 한다. 그래! 걸어오는 손님들을 겨냥하자. 종로 좁은 골목 구석구석까지 알아서 찾아가는 사람이 어디 주차장 있네 없네 하던가?
이곳이다 싶으니 장점들만 부각되고 단점은 작은 흠 정도로 보였다. 심지어 더 근사하게 포장될 것 같은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동네 카페, 숨어 있는 카페, 골목카페.. 감성으로 폭발할 것만 같다. 단점조차도 특별한 이미지로 포장되어 개성 있는 카페로 거듭날 것만 같다. 나만의 착각의 늪속으로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뿐이랴. 작은 공간이니 방문하는 누구라도 다정하게 눈을 마주할 수 있다. 커피 향도 진하게 오래 머무를 것이다. 창틈으로 흘러나오는 달콤한 향과 음악소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육십에 카페 사장이 되었다. 하루 종일 카페에서 머무를 수도 있고 집 마당과 안을 자유롭게 오갈 수도 있다. 오전 내가 오픈하고, 둘째가 퇴근하고 바턴 터치를 해 준다. 그 사이 나는 밀린 집안일을 하기도 하고 운동도 한다. 적절한 수입만 받쳐준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직장이다.
그렇게 조금씩 늙어가는 것을 즐겨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