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연

내맘대로 일기 20

by EAST

매년 이맘때면 인사발령이 난다. 인사발령의 주된 목적은 결원 충원이다. 결원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발생한다. 정년퇴직과 전근 신청. 정년퇴직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돼 있던 바 공석 발생이 놀랍지 않다. 하지만 전근 신청은 다르다. 신청하는 당사자가 입 꾹 다물고 있으면 발령 당일까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연말 깜짝 뉴스가 된다.


전근 신청하는 가장 큰 이유는 출·퇴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 근처 지사로의 전근 신청이 빈번하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분당이다. 직원 중에 수원이나 용인이 집인 사람이 많다. 그래서 훨씬 가까운 수원이나 용인지사로 전근 신청을 많이들 한다.


올해 2명이 전근 확정되었다. 그래서 정년 퇴직하는 2명 포함해서 새롭게 4명을 맞이해야 한다. 전근 가는 2명은 올 초 왔던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만 1년이 되지 않은 셈이다. 이제 일 좀 할 만하다 싶은 사람들이다. 그중 한 명은 나랑 꽤 친했다. 집이 둘 다 수원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죽이 잘 맞았다. 비록 근무 조는 달랐지만 내가 쉬는 날, 조간 근무 마치고 온 그 직원과 수원 맛집 투어를 신나게 다녔을 정도다.


어느 날 전근 신청했단 소리를 같이 밥 먹던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꺼냈다. 내심 가지 않기를 바랐지만 원하는 곳으로 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직원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표정은 가고 싶은 모습이었다. 인생이 모순투성이다.


전근 가더라도 맛집 투어는 계속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건 어렵다는 것을 둘 다 잘 안다. 설령 한두 번 하겠지만 결국 이마저도 한 달 한 번이 석 달 한 번 되고, 여섯 달 한 번, 그러다 잊힐 게 분명하다. 그럴 바엔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지긋이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인연은 여기까지, 로 둘 다 해석한다.


다들 그런다. 나이 들면 정리하는 게 많아지는데 그중 하나가 인간관계라고. 그래서 그런가. 정을 주지 않는다. 무심하다. 오면 오는가 보다, 가면 가는가 보다. 그게 마음 편하기도 하다. 부담도 적다. 정을 주지 않으니 헤어짐이 쉽다.


그런 모습이 처음에는 적응되지 않았다. 이건 뭐지, 음 삭막하군, 싶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그렇게 서너 명이 떠났고, 새로 그만큼 또 들어왔다. 매년 반복되니 나도 차츰 적응이 되었다. 평균 연령 60인 남자 경비원들의 만남과 헤어짐이 이렇다. 어찌 보면 참 씁쓸하다. 강물 위 배 지나간 자국처럼 덧없다, 고 오늘 인사발령 소식을 듣고 새삼 느낀다. 한 해가 또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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