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정전
갑자기 정전이 되는 경우가 있다. 1년에 서너 차례 그런다. 그 순간 UPS시스템이 가동, 비상 발전하면서 곧 복구된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이른 새벽부터 나간 전기는 오후가 되어도 복구되지 못했다. 날은 찜통. 에어컨은 불통. 충전된 선풍기만 최대치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마저도 이제 배터리 잔량 1칸. 곧 꺼지리라. 본사로는 한전 차량이 계속 들락거렸다. 일요일임에도 본사 총무부 직원과 시설팀 직원이 총출동했다.
경비원은 출입 관제 시스템 다운, 정문 자동문 사용 불능, 차단기 동작 그만. 모두 수동으로 조작해야 했다. 경비실 밖에 의자를 갖다 뒀다. 앉아서 출입하는 차량 일일이 수기로 적어가며 통과시켰다. 헬스장이나 수영장 이용하려고 들어오는 직원들에게 상황 설명하고, 되돌려 보낸다. 하필 햇빛도 쨍쨍, 무더위가 최고조인 오후 2시. 땀이 뚝뚝 떨어진다. 경비 휴게실에 있는 냉장고 속 밑반찬이 상하지 않을까 서서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오후 4시경 형광등이 드디어 활짝 켜졌다. 냉장고가 작동했다. 복구되었다. 그런데 컴퓨터가 켜지지 않았다. 여전히 출입 시스템은 먹통. 전기 만질 줄 안다는 시설팀 직원 호출했다. 한참 낑낑대더니 원인 불명. 출입 관제 시스템 설치 업체 호출했다. 오늘은 불가. 내일 온다나. 그나마 에어컨이 돌아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경비팀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정문 출입 일지가 엉망이었다. 출입 관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니 차량 정보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차가 두세 대 연속적으로 들어오면 순간순간 차량 번호를 메모하거나 암기했다가 옮겨 적어야 하는데 그 순간 오류가 발생한다. 차량 번호 1775가 1755가 되고, 앞 뒤차 부서명이 서로 바뀐다. 출차하는 시간을 놓치기도 한다. 정상적이라면 혹시 잘못되더라도 나중에 컴퓨터 화면 보면서 정리하면 되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정전이 되니 새삼 에어컨의 고마움을 느낀다. 1년 365일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주는 에어컨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경비실이 곧 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부디 고장 없이 잘 버텨 주거라, 속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