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일기

14. 요리

by EAST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간혹 요리를 해 먹는다. 경비 휴게실에는 고춧가루, 후추, 소금, 설탕, 간장, 식용유 등의 양념과 전골냄비, 프라이팬, 라면 냄비, 가스버너, 이동식 전기 레인지 등의 도구가 갖춰져 있다. 심지어 에어 프라이기도 있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집에서 조금씩 가져오다 보니 휴게실이 간이 부엌이 되어 버린 것이다. 평일에는 오고 가는 차량과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시간 들여 요리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요리는 주로 주말과 공휴일에 하게 된다. 특히, 명절 때는 당직 근무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출입하지 않아 그야말로 우리들 세상이 된다.


가장 자주 해 먹는 것은 짜파게티다. 건강 신경 쓰는 나이라 면을 뜨거운 물에 담가서 기름기를 일단 쫙 뺀다는 점이 일반 레시피와는 살짝 다르다. 나름 우리들만의 건강식이다. 그뿐인가. 고명으로 올릴 삶은 계란과 채 썰은 오이도 곁들인다. 김장 김치 쭉 찢어서 같이 먹으면 고급 중식집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맛이 좋다. 라면 5 봉지가 순식간에 동이 난다. 시원한 콜라로 상쾌하게 마무리한다. 물론 건강 생각해서 제로 콜라다.


부대찌개도 단골 메뉴다. 이때 햄으로 사용하는 스팸 역시 욕탕에 몸 푹 담그듯이 끓는 물에 담가 기름기를 먼저 쫙 빼준다. 아삭한 콩나물과 신 김치 넣고 솜씨 좋은 동료 형수님이 직접 만든 마법의 양념장을 투하하면 그 향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한쪽 구석에는 냉동 만두가 에어 프라이기 속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다.

여름철에는 콩국수가 단연 인기 최고다. 삶은 면을 얼음물로 옮겨 치대는 모습을 보면 흡사 여기가 맛집 식당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남김없이 콩국물까지 비워내면 무더위는 어느새 깨끗이 잊힌다.


명절 때는 특식이다. 바로 삼겹살이다. 이때 애지중지하는 캠핑 장비를 자랑스럽게 꺼낸다. 삼겹살 전용 불판과 화력 센 버너가 실력을 발휘한다. 상추에 싸서 한입 가득 넣으면 순간 경비실은 텐트가 되고, 우리는 별이 쏟아지는 백두대간 속 캠핑장의 야영객이 된다. 음료수를 소주 삼아, 치어스! 건배하면서 먹으면 고향을 가지 못한 착잡한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렇지만 모든 조가 이렇게 요리를 해 먹는 것은 아니다. 같은 조 소속 3명이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한다. 재료 준비며 요리, 설거지 등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한 명이라도 난색을 표명하면 힘들다. 이것저것 해 먹다 보면 말 안 해도 손발이 척척 맞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즐거움도 있지만 요리를 하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는 장점도 있다. 휴일 근무를 하다 보면 평일과는 다르게 시간이 더디 간다. 그런데 요리를 하면 재료 다듬고, 볶고, 마무리하는 데만 족히 1시간은 넘게 걸린다. 먹고 나서 설거지까지 감안하면 2시간은 순삭(?)이다.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명절 내내 너무 잘 먹어서 순식간에 늘어난 몸무게는 감추고 싶은 부작용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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