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내맘대로 일기 41

by EAST

3분 보려구 2시간이나 기다렸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40대 아주머니가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슬프거나 절망스러운 표정이 아닌 것으로 봐서는 진료 결과가 좋은 게 틀림없었다.


대학병원 가보라고 해서 놀란 가슴 애써 달래 가며 어머니와 함께 산부인과를 방문했던 게 일주일 전이었다. 그때 검사 결과를 들으러 왔다. 대기실 곳곳에는 초조함과 긴장감이 흘러 다녔다. 의외로 젊은 여성이 많아서 놀랐다.


일찍 온 데다 진료 시간이 조금씩 미뤄지면서 기다림은 길어졌다. 안 좋으면 어쩌지, 설마 설마 하면서 기다리는데 시간은 더디 흘렀다.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서 들여다본다. 하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먼 길 운전하고 왔음에도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여서 그런지 피곤한 줄 모른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간간이 옅은 한숨만 쉰다. 살갑지 못한 나는 위로의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몰라 속으로만 애태운다. 마음이 불편하다. 이럴 때 딸이 옆에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여동생 걱정한다며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어머니 말 듣지 말고 차라리 여동생을 부를 걸 그랬나, 스멀스멀 후회가 밀려온다.


벌써 2시간째다. 예약 시간보다 30분이나 지났지만 대기자 명단에는 어머니 이름이 보이지도 않는다. 바깥 영하의 날씨와는 달리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대기실은 후끈하다. 애가 타니 답답하기까지 하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고 싶지만 어머니 혼자 둘 수 없어서 꾹 참는다.


고된 농사일에 허리는 구부정하고, 지팡이 없으면 오래 걷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핑 돈다. 그럴 때면 젊었을 적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는 억척스러웠다. 일찌감치 아버지랑 같이 일을 다녔다. 조그마한 대리석 공장을 차린 아버지를 따라 이른 아침 나가서, 늦은 저녁 돌가루가 머리에 쌓인 채 집에 왔다. 무거운 대리석을 운반하려면 운전은 필수. 어머니는 운전면허를 아버지보다 훨씬 일찍 땄다. 그래서 운전도 일찍 했다. 1톤 트럭을 몰고, 현장을 부지런히 다녔다. 공사 현장, 억센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머니도 같이 험해져야 했다. 그러니 힘이 아니라 깡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공장을 접고, 시골로 귀농했다. 마침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수발을 겸해서였다. 힘든 공장일 벗어나나 했더니 이번에는 더 힘든 농사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평생 일만 하던 몸이 버틸 리가 만무하다. 이제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


드디어 어머니 이름을 부른다. 자리에 앉는다. 의사와 마주 본다. 침을 삼킨다.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던 의사가 고개를 들어 어머니에게 말한다.

걱정하실 필요가 없네요.

그 순간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수납하고 지하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3분 보려구 2시간이나 기다렸네.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어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아!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아까 그 따님은. 어머니 좋아하시는 청국장을 먹으러 가야겠다, 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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