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일기 49
아내가 뚫어지게 TV를 보고 있다. 무얼 그리 보고 있나 싶어 민수 씨도 소파 옆에 같이 앉는다. 홈쇼핑이다. 보습제를 팔고 있다. 눈으로 묻는다. 또 사려구? 아내는 말이 없다.
나이가 들자 부쩍 손끝이 갈라진다고 울상이다. 그래서 보습이 탁월하다는 제품만 눈에 띄면 아내는 무턱대고 산다. 덕분에 안방 경대 위에는 온갖 보습제로 가득하다. 하지만 다 쓴 것은 별로 없다. 어떤 것은 한 번만 쓰고 만 것도 있다. 효과가 좋다는 말에 샀지만 막상 써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게 아내의 변명 섞인 말이다.
아내는 직업상 물을 많이 만진다. 손끝이 갈라지는 것은 나이 들어 피부가 건조해진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30년 넘게 일해 온 게 더 큰 이유라고 민수 씨는 생각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하니.
미안함을 담아 말한다. 홈쇼핑 삼매 중이던 아내가 갑자기,라는 표정이다.
손을 잡는다.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뭐, 할 말 있어?
미안해서.
돈 필요해?
분위기 팍 깨졌다. 민수 씨는 잡았던 손을 뺀다. 아내가 토라진 민수 씨를 달랜다. 손을 잡아준다. 속도 없이 민수 씨는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민수 씨는 당황한다.
왜?
당신 손, 나보다 엄청 부드러워.
헐!
이건 오해다. 민수 씨는 아내가 사놓고도 효과 없다고 남겨 둔 보습제를 아깝다고 꾸준히, 그러나 도대체 줄지도 않네 투덜대며 아침저녁 바르고 또 바른 죄밖에 없다. 억울하다. 아내가 홈쇼핑 화면을 가리킨다.
사달라고?
말하면서도 이 전개 아무래도 또 낚인 것 같다고 민수 씨는 생각한다. 프랑스에서 어렵게 공수해 왔다는 그 보습제도 결국 내가 바르게 될까? 결제 버튼을 누르는 민수 씨의 반들거리는 손이 가볍게 떨린다.
※ 민수 씨와 아내는 가상 인물입니다. 물론 글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