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일기 52
우르르, 쾅!
파도는 마치 나태해진 나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휘몰아친다. 바람까지 거세게 분다.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을 바라본다. 강한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고 세상 끝을 쳐다본다. 참, 넓구나. 감동으로 온몸이 열린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강릉 안목해변.
나는 강릉을 좋아한다. 보다 정확히는 강릉 바다를 좋아한다. 마음이 울적하면 훌쩍 강릉으로 떠난다. 수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첫차를 타고 강릉에 도착하면 10시 무렵이다. 강릉중앙시장에서 소머리국밥이나 감자옹심이를 막걸리 곁들여 이른 점심으로 먹는다. 그런 후 안목해변으로 간다. 버스 종점에서 안목해변까지는 지척이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면 파도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이윽고 확 트인 파란 바다.
여기저기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사진 찍고, 모래사장을 걷고, 갈매기에게 새우깡 던져주고, 해변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는 걷기 시작한다. 안목해변 지나 송정해변, 강문해변, 경포대까지 약 5km. 해변 따라 펼쳐진 솔숲 길을 걷는다. 안목해변에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조금만 걷다 보면 인적이 뜸하다. 멀리 안목해변이 아스라이 보일 때쯤, 한적한 카페에 들어간다.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 들고 창밖을 쳐다본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냥 놔둔다. 생각이 나오다 지칠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다. 기분이 좋아진다.
길을 나선다. 솔숲 길,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이 이따금 지나간다. 해변을 따라 구불구불,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그때마다 파도소리가 들렸다 말았다를 반복한다. 그 길 위에서 내 생각들 역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한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인다. 저 부서지는 파도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끝없이 오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이 하루의 주인이 된다.*
어느덧 경포대. 경포호를 바라본다. 들끓던 바다와 달리 이곳 경포호는 잔잔하다. 마치 내 마음과 같다. 고행길 끝에 다다른 작은 암자, 시원한 감로수 한 잔 마시고, 신발 탁탁 털고 대청마루에 크게 눕는다. 시원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다. 길게 낮잠을 잔다.
저기 버스가 온다.
*어느 하루 맑고 한가로우면 나는 바로 그 하루의 신선이다.[명심보감 마음을 살펴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