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내맘대로 일기 53

by EAST

민수 씨는 한가로이 소파 위에서 음악을 듣는다. 로제를 듣다가 로이 킴 거쳐 당도한 곳, 4년 전 동영상. 500만 넘는 조회수. 새가수라는 경연 프로그램.

유다은.

지상에서 영원으로.

전주가 나오고 이윽고 잔잔하게 시작된다. 그러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격정적인 고음으로 바뀐다. 소름이 돋는다. 소파에서 민수 씨는 굳어버렸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천국에 푸른 밤이 열리면

만일 내가 그대보다 먼저 가


출근한 아내가 떠오른다. 30년 넘게 서로 껌딱지처럼 붙어 있던 나날들이 스친다. 아내를 처음 만난 곳은 1992년 충남 당진. 민수 씨는 당진 소재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고시텔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문학 동아리에서였다. 창간호가 16쪽짜리 타블로이드판이었다.


인쇄소 가던 길, 아내를 우연히 만나서 같이 갔다. 말없이 내 옆에서 제본되어 나오던 창간호를 바라보던 모습이 예뻤다. 그때부터 연애가 시작되었다. 당진 시골 출신이던 아내는 순박했다. 계산적이지 않고, 인품이 넉넉했다. 식당에서 밥 먹을 때 민수 씨는 반찬을 많이 먹는 편이다. 그래서 여러 번 반찬을 달라고 한다. 그러면 나중에 계산할 때 아내는 꼭 2~3천 원 더 계산하라고 한다. 왜? 물어보면 아휴, 얼마나 남으신다고, 그러면 안 돼유, 그런다. 느긋한 성격도 좋았다. 성격 급한 내가 볼 때 몹시 닮고 싶은 부러운 성격이었다.


무엇보다 아내는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여행 다녔다. 멀리 목포부터 해남, 강진, 부안, 군산, 남원, 진안 등등. 아내는 군말 없이 피곤한 내색 없이 어디를 가든 잘 따라와 줬다. 그러다 1994년 서울로 왔다. 아내는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마침 민수 씨도 마치지 못한 학업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오랜 전 먼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내가 만일 유다은처럼 노래를 할 수 있다면 그동안의 내 마음을 당장 들려주고 싶었다.


바람처럼 내가 다녀온 세상

어땠냐고 내게 물어온다면

이렇게 말할게 그대 알았던 내 삶

나는 축복받았었다고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울컥한다.

“......”

“무슨 일 있어유?”

“먼저 가지 마.”

“뭐래? 바빠유. 끊어유.”

이게 아닌데. 민수 씨 눈물이 마른다.


※굵은 글씨는 노래 가사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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