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노동조합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합원수도 200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꽤 크다고 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는 규모가 작아서 노조란 게 없었다. 그래서 신기하기도 했다. 노조가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궁금했다. 노조 가입하고 단체협약 참여자 모집 문자에 겁 없이 덜컥 신청했다. 단번에 뽑혔다.
노조를 구성하는 인원 중 경비원이 가장 많다고 했다. 그래서 주요 요구 사항도 경비원 처우 개선에 집중되어 있다고 했다. 특히, 현행 4조 3교대에서 4조 2교대로의 전환과 65세인 정년을 67세로 더 늘려달라는 게 핵심 사항이라고 했다.
가장 큰 이슈인 교대제 개편의 핵심은 출근 일수를 줄이는 대신 출근해서 일하는 시간을 늘린다는 것이다. 현재는 6일 일하고 2일 쉬는데, 앞으로 4일 일하고 4일 쉬게 해 달라는 것. 4일 일할 때 하루 12시간씩 일하면 결국 총 근로 시간은 같으니 문제없다는 게 노조의 입장. 출근 일수를 줄이면 교통비, 식사비 등의 부대비용이 자연 줄어드니까 직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게 2교대란 얘기였다. 실제로 모회사의 교대직 직군들은 이미 똑같이 시행하고 있으니 검증된 시스템이라고 노조는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는 대근 한다면 주 52시간 이상 근무해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둥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교대제 개편에 대해 반대했다.
몇 차례 만나 협상했지만 노사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게다가 제2의 노조가 생기면서 기존에 있던 노조의 세는 급격이 줄어들었다. 상대 노조는 노조비를 걷지 않겠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포섭했다. 한두 푼이 아쉬운 처지들이라 많이들 그리 넘어갔다. 200명이던 노조원들은 점점 빠져나가 양 노조의 조합원수는 거의 대등할 정도에 이르렀다. 회사는 이를 악용했다. 힘 빼기 작전이었다. 상대 노조는 협상이 지연된다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기존 노조를 공격했다. 기존 노조는 궁지에 몰렸다. 회사는 요구안을 들어줄 생각도 없고, 상대 노조는 압박을 가하고, 점점 협상 마감 시한은 다가왔다. 단체협약은 지지부진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금협상도 입장차가 커서 첫 만남부터 회의 개최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나버렸다. 노조는 어쩔 수 없이 단체협약을 마무리 짓고 좀 더 힘을 모아 2년 후를 기약하자고 했다. 대신 임금협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첩첩산중.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위에 계란 치기였다. 결국 노조는 기대치에 못 미치는 인상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노조원은 실망했고, 상대 노조는 졸속 협상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회사의 무성의한 단체협약 태도를 비판하고 노조원들의 단결된 힘을 보여주고자 한 달이 넘도록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본사 앞에서 시위한 이유는 자회사에 압박을 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때 입도 뻥긋하지 않았고, 같은 노조로서 지지 성명을 발표하지도 않았던 상대 노조는 협상안이 발표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부터 한 것이다. 또한 피켓 시위하는 동안 격려의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임금 협상안을 보고 노조가 있으나 마나다, 노조비가 아깝다 등의 말을 할 때는 배신감마저 느꼈다.
노조가 단체협상이나 임금협상을 철저히 준비하지 못해 협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모르쇠로 일관하다 막상 좋지 않은 결과 나왔다고 이리 물어뜯어서야, 심히 괴로웠다. 이제 상대 노조의 조합원수는 우리보다 많아졌다. 아직 대표 노조의 지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힘이 많이 빠진 상태. 어떻게 힘을 모을지 그 사이 새롭게 선출된 노조 지도부의 최대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