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직업관(최종)
경비원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좋지 않다. 항상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 불성실한 근무 태도, 불친절함 등이다. 최근 아파트 주민의 경비원에 대한 갑질 사례가 자주 소개되면서 동정론에 힘이 실리지만 그렇다고 한번 굳혀진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는 어렵다. 이런 이미지를 없애려면 무엇보다 경비원에 대한 직업관이 제대로 서 있어야 한다. 그깟 경비원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직업관까지 갖춰야 하냐고 반문하겠지만, 이게 없다면 근무하는 데 있어서 진정성이 없다. 직업관이 중요한 이유는 일을 대하는 태도가 그것이 있고 없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비원은 왜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로 압축되는 직업관이 잘 정립되고 행동으로 나타난다면 좋지 못한 이미지는 서서히 바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경비원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이 일 시작했을 때 먹먹함을 많이 느꼈는데, 내가 경비를 하다니,라는 창피함도 컸다. 사람들에게 직업을 말할 때 당당하게 경비원이라고도 말하지 못했다. 직업에 귀천 없다는 말을 귀 따갑도록 들었고, 아무런 편견 없다고 생각했던 터라 솔직히 이 모순된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경비일 하고 있어요,라고 어렵사리 말하면 오랜만에 만난 상대방도 적잖이 당황한 듯 잠시 뜸 들이다 그래, 우리 나이에 일 구하기 어디 쉬워, 잘했다,라고 황급히 마무리하지만 그에게서 나타난 당황한 표정은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이런 나에게 경비원으로서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를 시사해 주는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비록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직업관이 근무하는 데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첫 번째 사건. 근무 교대하기 전이었다. 교대할 때 경비실은 혼란스럽다. 인계하려는 조와 인수받으려는 조, 모두 6명이 경비실 내에 모여 있어서 복작복작하다. 그런데 마침 상황실에는 인계하려는 조의 반장과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상황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휴게실 쪽에 있었다. 그때 반장이 말없이 자리를 비우더니 화장실을 갔다. 어라! 이게 무슨 상황? 상황실은 나 혼자였다. 이걸 어쩌지, 반장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돌아올 줄 모르는 반장을 기다리다 지쳐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니, 지금 교대하기도 전에 상황실을 이렇게 비우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거 잠깐 비우는 게 뭐 그리 대수냐, 돌아온 답이었다. 비울 거면 누구라도 대신 세워 둔 다음 비워야지, 그러시면 됩니까? 맞받아쳤다. 아니 이깟 경비일 하는 게 전방 초소 지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깐깐하게 구냐며, 내 말 맞지 않냐며 동의를 구하듯이 주변을 둘러보는 그 직원이 나는 어처구니없었다.
두 번째 사건. 일찍 도착했다. 우리 조는 아직 출근 전이었다. 휴게실로 들어가 정수기에서 냉수를 따르려고 했는데, 물이 없었다. 위에 꽂혀 있는 20리터짜리 둥근 생수통을 보니 비워져 있었다. 인수인계 할 때, 생수통이 비워져 있으면 다음 조를 위해 새로운 통으로 교체해 놓는 게 전임조의 업무 중 하나였다. 전임 조원을 불렀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거 너무 자주 그런다, 고 앞으로 잘 좀 갈아달라고 했다. 그런 내 말을 들었는지 전임조 반장이 불같이 화내면서 소리도 요란하게 물통을 갈았다. 그러면서 앞 조에서 비워진 채로 여러 번 인수받아도 우리는 군말 없이 갈고 있는데, 유독 너희만 그러냐는 것이었다. 그 말에 화가 났다. 그렇다고 다음 조에 텅 빈 채로 넘겨주는 게 말이 되냐며 맞받아쳤다. 씩씩거리고 있는 내게 뒤늦게 도착한 조원이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미 많이 겪어본지라 대번에 알아챘다. 전임조가 딱하다며 혀를 찼다.
두 사건은 내게 경비원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일을 대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년퇴직을 하고 오든, 할 수 없이 오든지간에 경비원으로서 제2의 회사 생활을 하게 되는 이곳에서 우리는 모두 신입이다. 소싯적,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 신입으로서 가졌던 포부처럼 거창한 것을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아무 준비 없이 그저 되는대로 시간 흘러가게 할 수는 없다. 그러려고 인생 1막을 연기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경비일 합니다,를 처음보다 쉽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