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내맘대로 일기 10

by EAST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이미 한차례 연기했다. 얼마 전 짬뽕을 먹을 때였다. 칼칼하고 뜨거운 국물을 입에 넣는 순간 오른쪽 아래 어금니에서 격렬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국물을 뱉을 뻔했다. 다행히 통증은 곧 물러갔지만, 또 언제 불쑥 헤집고 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집 앞 치과를 부리나케 예약 했었다. 그런데 사람 맘 참 간사한 게 통증이 며칠 없자, 예방주사 맞으러 엄마 손에 질질 끌려가는 초등학생처럼 가기 싫었다. 어른인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결국 진료 하루 앞두고 급한 일 생겼다며 예약을 미뤘다. 그게 오늘이다.


시간 가는 건 어른도 어쩔 수가 없다. 또 가기 싫은 건 어찌 알고 시간이 득달같이 달려온다. 눈이라도 달린 겐가. 빨리 돌아오란 월급날은 하세월, 세상 참 불공평하다, 투덜거리는데 어느새 치과 도착.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입장하란다. 두근두근 조마조마. 떨리는 마음으로 의자에 앉는다. 벽이며, 천장, 조명까지 온통 하얀 색깔이다. 심지어 치과용 유니트 체어까지 하얗다. 쎄하다.


얼굴 위로 천이 덮인다. 아! 하세요. 두드린다. 앙, 물어보란다. 찌릿! 아프다. 때운 지 얼마인지 기억도 안 나는 어금니가 썩었단다. 신경치료하고 다시 때운다고 한다. 따끔, 마취주사다. 잠시 누워있으세요, 한다. 그새 잠이 설핏 온다. 왜 이렇게 잠이 오지. 딴 데 마취한 건가, 알쏭달쏭. 비몽사몽 하고 있는데, 다시 아! 하란다. 치이익, 바람 소리. 또 치이익. 이번에는 물. 이이이잉, 모기소리보다는 큰 기구 돌아가는 소리로 뒤죽박죽. 어이쿠! 정신없어하는데 또 찌리릿, 아얏! 비명소리. 가관이다. 앞으로 양치질 잘할게요를 수십 번 다짐하고 나니 끝났단다. 맙소사.


“밥 머거더 대요?” 말도 마취되어서 나온다. 입술도 감각이 없고 퉁퉁 부은 느낌이다. 2시간 정도, 마취 풀리면 먹으란다. 김밥을 포장했다. 라면에 김밥 먹을 생각에 우울함이 조금 가셨다. 식욕은 마취되지 않은 모양.



생각해 보면 이만한 게 다행이다 싶다. 뜨거운 국물 요리 견디지, 차가운 얼음 부수지, 우두둑 사탕도 깨버리지, 질긴 고기도 씹지, 달고 쓰고 맵고 짜고,안 한 게 없다. 그것도 50년 넘게 견딘 거다. 자동차만 해도 5년만 지나면 여기저기 잔고장이 난다. 걸핏하면 공업사 간다. 거기에 비한다면 내구성 하나 끝내주게 좋은 거다. 인정한다. 제발 잘 버텨주라, 기도한다. 때 빼고, 광 내고 내 아낌없이 잘해줄게. 치과 갔다 오니 새삼 더 고맙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하자. 누구 얘기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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