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aptain가얏고
Jul 12. 2024
<새참>
“주전자 들고 엄마 따라와라.”
“흘리지 않게 조심하고.”
새벽부터 논에 나가 있던 엄마가 새참거리를 준비하느라 집에 들렀다. 일 하랴 들바라지 하랴 바쁜 엄마가 부랴부랴 새참을 머리에 이고 일어선다. 수건을 둥글게 빙빙 틀어 똬리를 만들더니 정수리에 올리고 그 위에 새참 광주리를 얹었다. 며칠 전 시내에서 사 온 빵이며 막걸리 그리고 술안주까지 챙겼다. 달콤한 크림빵은 힘들게 일하는 아저씨들 차지다.
좁은 논둑길을 조심조심 엄마를 따라나섰는데, 자꾸 한쪽으로만 몸이 쏠려 균형을 잡느라 애를 먹는다. 멀리 모내기가 한창인 논에서 허기진 아저씨가 새참을 반긴다.
“힘들지요?”
“어서들 와서 들어요.”
“마침 목이 말랐는데 잘 됐구먼요.”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굵게 주름진 얼굴을 한 일꾼들이 하나둘 논에서 나온다. 송골송골하니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목에 걸친 수건으로 닦아낸다. 엄마는 금방 새참을 차려내고 아저씨들은 막걸리부터 한 사발 쭉 들이켠다. '꿀꺽꿀꺽' 삼킬 때마다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아저씨의 목울대가 소리를 낸다.
“시원하다. "
이번에는 아저씨가 젓가락으로 도토리묵무침을 크게 집어 한입에 넣었다. 엄마가 금방 부쳐낸 바삭한 김치전도 부지런히 입속으로 들어간다.
“아따 맛있다.”
“미진네는 음식 솜씨가 참 좋아. 뭐든 다 맛있다니께.”
“아고, 배고프면 다 맛있어요.”
연이은 칭찬에 기분 좋은 엄마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낮술에 얼굴이 볼그족족해진 아저씨가 다시 논으로 들어간다. 엄마도 광주리 안의 음식을 덮고 뒤따라 나선다.
논마다 모내기 준비로 물이 가득 채워진 들녘이다. 강바람에 살랑살랑 잘게 흔들리는 물결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볕에 데워진 논바닥은 뽀글뽀글 작은 물방울을 내뿜으며 여유로운 숨을 쉰다. 멍하니 보고 있던 미진이가 논물에 발을 담근다. 미지근한 물속 시원한 진흙이 발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든다.
수면 위로 젤리 같아 보이는 뭉쳐진 투명한 막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안에는 까만 콩처럼 촘촘히 박혔는데 아뿔싸 개구리알이다. 먼저 깨어난 시꺼먼 올챙이는 꼬물꼬물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고, 좀 더 부지런한 올챙이는 뒷다리가 나왔다.
“아휴, 징그러워.”
기겁해 물 밖으로 나와 도망치는데 갑자기 막걸리 생각이 났다.
‘막걸리가 그렇게 맛있나?’
주전자 안의 막걸리 맛이 궁금하다. 주위를 살피다가 노란 뚜껑을 살짝 열었다. 희멀건 액체가 눈에 들어온다. 아저씨가 하던 대로 새끼손가락을 넣어 휘휘 돌린 다음 살짝 찍어 맛을 본다. 시큼한 맛과 함께 입안에 퍼지는 낯선 느낌에 아이가 미간을 찡그린다.
“뭐야, 이게 맛이 좋다고?”
퉤퉤 뱉어내고는 손으로 입을 쓱 닦는다.
멀찍이 반듯하게 못줄을 잡는 아저씨의 우렁찬 구령에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는 모양새가 일사불란하고, 귀에 익숙한 엄마의 노랫가락이 구성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