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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별을 닮은 아이)
소슬바람
by
captain가얏고
Aug 27. 2024
앞마당 밤나무 가지에 쓸쓸한 바람이 인다. 절기상 처서를 지난 엄마의 텃밭에는
검붉은 수수가 바람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나긋나긋하고
,
여름장마를
견딘 텃논의 벼는 소슬바람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어느새 외딴집 주변에도 슬그머니 가을이
찾아들었다. 가을이 빚어내는 풍경은 어린 미진이의 마음 한 켠에 생경한 감정을
부른다.
멍하니
밤나무 잎을 응시하다가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는 뻘에서 신는 긴 장화가 달린 고무옷으로 갈아입었다.
“아빠 어디 가?”
“장어 잡으러.”
“나도 갈래.”
아버지가 오후 작업을 시작한다. 반복되는 고된 노동에도 묵묵히 일에만
열중한다. 밀물에 그물을 쳐야 실뱀
장어가
따라
들어온다.
아버지가 새롭게 물색한 자리는 불어난 강물로 뻘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번에는 맞은편까지
이어서
그물을
설치해야
한다. 반대편에 도착한 아버지가 강의 어귀에 말뚝을 단단히 박고, 두 지점에 고정한 말뚝을 튼튼한 밧줄로 이었다.
마침내 힘겹게 그물을 걸치고
그 사이를 공들여 만든 '파랑이'를 타고 건너고 있다. 한쪽에 쭈그려 앉은 미진이가 아버지와 '파랑이'를 유심히 지켜본다.
‘저 배보다는 훨씬 커야 범고래를 만날 수 있겠지?’
“아빠, 나도 태워줘.”
“안돼, 위험해.”
“한 번만요. 딱 한 번만.”
“너 아빠 몰래 와서 타기라도 하면 혼날 줄 알아.”
“그러니까 한 번만요.”
“저 배 타면 아빠랑 엄마를 다시는 못 본다.”
사고뭉치 둘째를 잘 아는
아버지는 '파랑이'가 풀리지 않도록 끈으로 더욱 단단히 묶는다.
'흥, 안 태워주면 혼자라도 타면 되지 뭐.'
‘아빠 몰래 타봐야지.’
입을 삐죽거리며 토라진 미진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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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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