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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별을 닮은 아이)
종이 인형 놀이
by
captain가얏고
Nov 20. 2024
조용한 방안 시계의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다. 잠이 덜 깬 아이가 이불을 돌돌 말고는 눈만 빼꼼히 내놓고 있다. 이리저리 방바닥을 뒹굴다가 마침 아껴둔 보물 생각이 났다. 전날 학교 앞 문방구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 신중하게 고른 종이 인형이다.
가위를 찾아 수영복 차림인 공주를 형체대로 오리기 시작했다. 매끈한 몸에 상처라도 날까 온통 신경이 곤두선다. 아이의 섬세한 손끝마다 공주에게는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가 생겼다.
종이판에서 갓 세상에 나온 주인공은 금발의 웨이브 진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유난히 큰 눈망울을 하고 있다. 파티복으로 갈아입은 공주의 머리에 티아라를 씌우고 구두도 선물했다.
혼자 하는 인형 놀이는 금방 싫증이 난다. 공주에게는 아이가 아끼는 파란 원피스보다 더 풍성한 레이스가 달린 옷이 여러 벌이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왔다는 오래된 장롱을 열어보았다. 농한기에는 시내에 있는 양장점에서 새 옷을 맞추어 입는 어머니다. 옷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의 옷장 안은 색색이 고운 옷감으로 가득하다. 미진이가 금실이 수놓아진 보라색 천을 꺼내어 몸에 둘렀다.
‘우와, 이쁘다.’
싹둑싹둑 가위질만 하면 멋진 드레스가 생길 것 같다. 종이를 오릴 때처럼 옷감을 살짝 잘랐는데 이쪽저쪽으로 자꾸만 미끄러진다. 힘주어 옷감과 실랑이를 벌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얼마쯤 지났을까 고개를 든 아이가 화들짝 놀란다. 눈앞에 삐뚤삐뚤 널브러진 천 쪼가리가 보이고 손가락마저 아리다. 주섬주섬 헝겊을 뭉쳐 농 밑 틈새로 밀어 넣고 방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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