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가까이 아버지의 전리품과도 같은 금싸라기 논이 있다. 부모님의 눈물겨운 노력과 맞바꾼 땅은 단순한 땅덩어리가 아닌 육 남매를 둔 가장의 자부심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하루아침에 땅을 빼앗기고 말았다. 사람들은 구불구불하던 농경지를 바둑판 모양으로 반듯하게 정리하더니 강둑 아래로 넓은 차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논을 정면으로 통과하는 새로운 길이 나면서 아버지의 자랑도 큼지막이 잘려나갔다. 대대적인 농지 정리로 간척지와 주변의 논은 죄다 쌍둥이처럼 닮아갔다.
금강물은 크고 작은 물길을 따라 강변의 너른 들판을 적신다. 수문을 열면 큰 수로로 강물이 밀려 들어오고, 그 물은 좀 더 좁은 도랑으로 이어져 흐른다. 가뭄에도 아버지가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까닭이다.
수로를 통해 제법 큰 물고기가 올라오고 이따금 강둑 아래 논두렁으로는 뱀장어가 출몰한다. 시꺼멓고 탄탄한 몸통을 자랑하는 생명체의 힘찬 움직임이다. 까맣게 윤기가 흐르는 근육질은 얼핏 보면 틀림없는 물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으악, 뱀이다.”
뱀장어와 맞닥뜨린 미진이가 몸을 소스라치며 소리를 지르고 집까지 줄행랑친다.
그런데 잠시 후 그 뱀장어가 아버지와 함께 나타났다. 어느 때는 뽀얗게 우려낸 국물과 함께, 또 어느 날 저녁에는 장작불에 구워져 밥상에 올랐다.
“이거 먹어야 안 아프고 힘도 세지는 거다.”
“싫은데”
눈을 부릅뜨는 아버지 곁에 꼼짝없이 붙들린 막내다. 이때만은 아버지를 피해 멀찍이들 물러나 앉았다.
어린 동생만이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입안 가득 커다란 알사탕을 물고 있는 듯 오물거리는 볼이 통통하다. 아버지의 젓가락 끝과 조그만 여동생의 입 그리고 장어를 번갈아 보며 움찔한다.
‘어쩔 수 없어.’
‘힘없는 막내가 대신 먹어야지.’
‘미안!’
언니들은 저마다 안쓰러운 동생을 모른 척하느라 딴청이다. 행여 아버지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운 미진이도 맨밥을 먹고는 그대로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