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 헌법교수 (2편, 완)

by 그루터기


“나라마다 자신들의 고유문화나 생활 감각이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공중목욕탕이란 곳은 본디 여러 사람이 풍덩 들어서서 때를 미는 곳이다. 국수는 후룩 후루룩 소리를 내어가며 먹는 것이 정상이다.”

라는 것을 그 사례로 들었다. 송교수 자신은 절대 친일파는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86 88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주문처럼 외치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보통의 성인 남자들이 즐기던 메뉴에 ‘보신탕’이란 것이 있었다. 정부 당국은 이 두 개의 큰 행사를 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외국인 선수와 관광객들에게 이 야만스런(?) 음식문화를 숨기고자 했다. 그래서 본디 메뉴명인 ‘보신탕’에서 ‘영양탕’으로 바꿀 것을 은연중 권장했다. 게다가 이 보신탕 전문집들은 큰 도로변에서 이면 골목길 인근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자기 나라에 주둔하는 미군인이 이 보신탕을 야만 음식이라 놀려대던 나라가 있었다. 바로 필리핀이었다. 당국은 자신들의 고유의 음식문화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당당히 항의를 하여 오히려 사과를 받아낸 적이 있었다.

우리에겐 일본처럼 자국의 고유문화를 외국인에게 잘 알리고 설득하여 동참시키려는 마인드도 부족했다. 필리핀처럼 자신들의 고유 음식 메뉴를 폄훼하는 이들에게 당당하게 입장을 내는 그런 결기도 부족했다.

“빵과 재난으로부터의 해방은 자유의 대가가 아니라 수단으로 얻어야 한다”

“사회 질서와 평화의 유지는 통치의 결과이어야 한다. 결코 통치의 출발점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자 이제부터 내가 통치할 테니 조용히 해라 이래서는 곤란하다.”

“밧줄의 강도는 가장 취약한 부분의 세기에 의해 결정된다”

송교수의 강의 중 내가 특히 새겨 들었거나 교과서에 밑줄을 쫘악 그어가며 평소 여러 번 곱씹던 구절이다.

“목적은 결코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과 우리처럼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전깃줄 위의 참새를 잡으려면 그에 맞는 고물 총이나 새총을 써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M16 자동소총이나 기관총을 들이대어서는 아니 됩니다.”

법대 학부 시절은 주로 실정법의 해석론을 익히는 과정이다. 조문의 해석론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큰 가르침이었다. 법학을 전공으로 택한 나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고 전율을 느꼈다. 정말 마음속 깊은 곳까지 감명을 주는 묵직한 외침이었다.

송교수는 대륙법의 본고장인 독일의 유수한 대학에서 정교수 자격을 이미 취득했다. 박사학위보다 이 교수자격이란 것을 보다 높이 평가받았다.

“저분, 혹시 독일 사람이 아닌가요? 아니 우리나라 사람이 저렇게 독일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나요?”

송교수가 귀국 후 얼마 전에 열렸던 모 심포지엄에서 행사 진행을 맡았던 일을 두고 생겨난 일화였다. 한반도에 예기치 않은 비상사태가 생기면 독일 정부 차원에서 송교수의 신변을 보호해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선배로부터 듣던 시절이기도 했다.

내가 금융기관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회사 측의 배려가 있었다. 신촌 소재 S대 경영대학원에서 ‘금융리더 과정’이란 이름을 달은 직장인 대상 교육에 나도 수강생으로 참여했다. 2개월이란 결코 짧지 않은 과정이었다. 수강생들이 각 분야의 유명한 인사를 강사로 요청하는 ‘외부 특강’ 시간이 배정되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모교 출신 송교수를 추천했다. 이래서 우리 수강생들 모두는 ‘직접 민주주의의 의미와 한계’로 이름한 명품 특강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송교수의 열강에 수강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나는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생업을 택하는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도 이 송교수를 정신적 지주로 생각하고 있음에 변함이 없다.

“내 자식에게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다. 아빠는 대학 시절 송교수의 명품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송교수가 써낸 교재로 공부를 하는 영광을 누렸다고...”

내 절친 심 변호사가 대학 재학 중 친구들에게 늘 이르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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