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렷 경례! 안녕하십니까?”
“이런 것을 예전에도 했나요? 여기는 사관학교가 아나잖아요? 앞으로 하지 맙시다.”
평소 교양 과목은 물론 다른 전공과목 강의에 얼굴을 자주 내밀지 않던 친구들이었다. 웬일인지 오늘은 43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수강 신청을 하지 않은 3년 선배도 강의실 앞쪽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눈에 쉽게 들어왔다. 최근 독일에서 연구를 마치고 돌아온 헌법 교수의 명품 열강을 놓치지 않겠다는 점에선 뜻을 같이했다.
약 18년간의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대를 마감했다. 이제 민주적인 문민정부가 들어서리라는 기대가 모아졌다. 국민 모두의 오랜 여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80년 잠시 서울의 봄도 물거품이 되었다. 지난 해 12월 신군부는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했다. 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군홧발에 철저히 짓밟혔다. 조국의 민주화와 민족발전은 다시 요원해졌다. 신군부가 정식 출범을 위해서는 국가 최고 규범인 헌법 개정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모교에 지원 당시 나는 재직 중인 전공과목 교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였다. 그런데 다른 내 동기들은 나와는 전혀 달랐다. 어느 과목 담당 무슨 교수가 지명도가 높고 뛰어난 명품 강의를 하고 있는지 등을 이미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
헌법 담당 송교수는 최근 이른바 ‘도피성 외국 대학 연구’를 마치고 귀국했다. 다시 모교 강단에 섰다. 국내에 남을 경우 신군부의 헌법 개정 작업에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염려가 있었다. 이런소문은 이미 캠퍼스 내에 파다하게 퍼진 지 오래였다.
송교수는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라는 세간의 명제를 아주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대학 교재인 교과서 집필 실력은 물론 강의까지 물 흐르듯이 잘 해내는 몇 되지 않는 명실상부한 지식인 교수였다.
“용준아, 전공인 법서는 말이야, 5번 정독을 하지 않고선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좋아. 일단 다섯 번 정독을 마친 후에야 문답식 토론이 가능하거든.”
당시 법대생 전용 도서관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나와 같이 수험생활을 이어가던 국립 S대 법대 출신 용수형의 지론이었다. 법서를 5회나 정독을 하려면 적지 않은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은 국가고시 준비생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지난한 작업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이 등장했다. 한 때 세간의 화제가 된 ‘속독법’을 익혀 교과서를 읽어내는 그런 마법이 절대 아니었다. 처음 법서를 손에 쥔 다음 단 한 페이지를 읽어내는데 30분이나 필요했다는 어느 선배의 전설적인 이야기도 들은 바가 있었다. 헌법 송교수의 강의를 집중하고 몰입하여 한번 듣고 나면 나 혼자 교과서를 5번 정독하는 것과 거의 맞먹었다. 빨간색 줄이 횡으로 그어진 고시용 2차주관식 답안지를 차곡차곡 채워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송교수의 강의는 분명 그러했다.
다른 전공과목도 송교수의 강의 수준이었다면 수험 준비에 많은 세월을 절약할 수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연구와 집필, 강의를 모두 잘 해내는 많지 않은 교수임을 누구나 인정했다. 이 세 가지 부문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것이 보통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한쪽에 특화하는 ‘연구교수’라는 제도도 있었다.
송교수의 신장은 표준에 조금 모자랐다. 하지만 귀공자 티가 뿜어 나는 천재형 교수였다. 게다가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카리스마를 자랑했다. 중학생 시절 도덕 교과서에 등장했던 ‘된사람, 난사람, 든 사람’의 조건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
평소 다른 강의 시간에는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친구들도 송교수의 명품 강의에 주눅이 들었다. 한 순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무던 애를 썼다. 강의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학생 모두는 한결같이 강의에 몰입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