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전 5기 만에 데뷔에 성공한 관광 해설사(1편)

by 그루터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굳이 빌 필요는 없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여러 모임을 갖게 마련이다. 나도 이에 예외가 될 수 없다. 3개월마다 갖는 재경 고향 동창모임, 2개월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고교 재경 모임, 역시 3개월에 한 번씩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고향 친목회, 사내 입사 동기 모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에 더하여 나는 고교동기 3인이 생각날 때마다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이른바 고교 삼총사 모임이 따로 있다. 또한 오늘 드디어 완전 합체가 되는 인천 고향 이웃사촌 모임도 있다.


고교동기 3명은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얼굴을 맞댔다. 이젠 우리 친구들이 중장년을 훌쩍 넘어섰다. 공기업 CEO를 2번이나 역임하고 지방에서 자리 잡고 있는 상수와 메이저 방송사에 오랜 기간 근무 중 이젠 안식년 휴가를 즐기고 있는 봉호였다. 상수는 주거지를 옮기다 보니 예전처럼 우리 셋이서 서울 모임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러던 중 작년 세밑 즈음 세종시에 새로운 터를 잡고 있는 봉호가 1박 2일 일정으로 자신의 고향에 초대를 했다. 본인이 직접 핸들을 잡고 나름 보여 주고 싶은 곳을 돌아다니며 맛집이란 곳마다 모두 들렀다. 염치없게도 구순이 넘는 친구 모친의 맛갈스러운 아침 해장국 밥상도 받았다. 소중한 추억이었다.


나는 이에 대한 답례 행사를 구상했다. 어디 내놓아도 충분히 자랑할만한 했다. 내 고향 양산팔경 1박 2일 여행을 두 친구에게 자신 있게 제안했다. 모교 초등학교 전체 체육대회가 열리는 4윌 13일로 최초 일정을 잡았다. 그러데 봉호는 부인이 대상포진을 이유로 한 번 연기를 요청했다. 그 이후엔 같은 분이 발목 골절상으로 어쩔 수 없이 한번 더 추가로 연기 카드를 마저 쓰고 말았다.


이젠 별일 없이 예정된 날짜에 출발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러던 중 이번엔 상수가 모친의 입원으로 한 번 더 연기를 하더니만, 자신도 공평하게(?) 기회를 달라듯했다. 평소 애지중지하는 전답을 대토 하는데 주인이 반드시 입회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기어이 두 번의 연기 찬스를 채웠다. 모두 4번이나 일정을 바꾸어야 하는 사정이 생긴 것이었다. 이즈음 해서 일정을 무산시키고 애당초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다. 그럼에도 한번 더 생각을 했다. 우리 고향인 양산 팔경을 친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훨씬 앞섰다. 그러니 여행 계획을 접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른바 ‘4전 5기’로 세계 복싱 왕좌를 지켜냈던 누군가처럼 7월 20일을 마지막 결전(?) 날로 천신만고 끝에 다시 정했다. 아침형을 넘어 새벽형 인간형에 가까운 친구를 새벽 7시에 강동역 인근에서 픽업하여 출발할 수 있었다. 인근 누나에 집에 들를 일이 있어 나는 이미 새벽 4시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두 친구에게만 고향의 멋진 절경과 나의 성장 과정, 기타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특별히 뽐내며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와신상담했다. 이제 그야말로 고향 관광해설사로 데뷔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초등학교 소풍 전날처럼 설렜다. 이른 시간 덕분이기도 했다. 교통 정체란 오늘은 남의 일이었다. 상수를 세종시에서 픽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행 일정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구상해 놓았던 터였다. 그런데 다른 커다란 복병이 숨어 있었다. 내가 들르기로 한 맛집과 두 친구의 식성이 문제였다.


봉호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군을 아예 입에 대지 않았다. 이에 반해 상수는 민물매운탕을 즐기지 않았다. 무릇 여행이란 좋은 풍광을 즐기는 것 못지않게 입도 즐거워야 함은 물론이었다. 두 친구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제외하면 내가 머릿속에 둔 맛집 메뉴와 공통분모를 찾기가 녹록지 않았다. 순간 나는 난감해졌다.


우리 일행은 매우 부지런히 움직였다. 첫 번째 들르기로 한 음식점이 문을 열자마자 우리는 안으로 들어섰다.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원하는 메뉴를 주문할 수 있었다. 완성품인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진 잠깐의 여유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코 앞의 비단 강변을 어슬렁거릴 기회가 생겨났다. 우산을 받쳐 든 두 친구와 달리 이런저런 이유로 어릴 적부터 비 맞기를 좋아했던 새내기 해설사인 나였다. 가랑비, 이슬비, 여우비인지 하여튼 부담 없이 몸을 적실 좋은 기회를 잡았다.


우리는 인근 잠수교 근처에서 복수(어항)로 민물고기를 잡아보고자 애쓰는 관광객을 지켜볼 수 있었다. 친구 봉호는 사십 대 초반에야 이런 ‘어로’ 모습을 처음 구경했다고 고백을 했다. 그 방면에 훨씬 선배인 나는 약간의 우월감(?)도 느꼈다. 고향 초입의 유명한 맛집에서 어죽과 도리뱅뱅에 막걸리 한 병을 식사 겸 안주로 막 비웠다. 그런대로 무난한 신고식을 치른 것으로 나는 스스로 위로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천년 고찰 영국사로 발길을 돌렸다. 내가 여러 번 방문한 적과 달리 이번에는 고향 면사무소에서 근무하신 적이 있는 정식 해설사를 만났다. 사찰의 유래나 석탑에 숨겨진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예전에 하천가에 있던 암반에 새겨진, 성철스님의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 보다 훨씬 세월이 앞선 버전이었다. 깊은 뚯이 있는 한시 구절에 대한 상세하고 친절한 해설을 듣는 호사를 누렸다. 아마추어 해설사인 나를 도와주러 일부러 나선 것이라 생각을 했다. 누교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왔다. 우리 고향 사투리로 '중태기‘(쉬리)가 맑은 물속에서 여유 있게 노니는 모습이 눈에 쉽게 들어왔다. 우리 고향은 그 어느 곳보다 청정지역이라는 것을 한 번 더 자랑할 기회였다. 매표소에 근무 중인 사람이 통행료를 내라는 요구에 이곳 토박이 친구의 코치대로 ‘지럭골‘이라는 말까지 동원하는 것은 좀 멋 적었다. 그래서 그저 이곳 고향 출신임을 내세웠다. 여행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는 행운도 덤으로 얻었다.


면소재지 친구들이 스무 살 전인 아주 오래전부터 명절 전날 거의 열외 없이 빼곡히 모였다. 고스톱 실력을 연마하던 청소년 수련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한 세기를 넘는 수령을 자랑하는 소나무 솔밭으로 친구들을 안내했다. 여기도 고향 출신이라는 점을 한 번 더 써먹기로 했다. 소나무밭 입장료를 면제받을 수 있다. 면제된 입장료를 모두 생각하니 갑자기 부자가 된듯했다. 우리 일행이 비단강 변을 거닐던 순간이었다. 수영장 안전사고 방지와 유사시 인명구조 등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고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 친구 의용소방대 장 기훈이를 조우했다. 마른안주로 맥주 5병을 순식간에 비우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정겹게 주고받았다.


고향 팔경 중의 하나인 강선대까지 슬금슬금 느린 걸음을 이어갔다. 예전 ‘무녀도’라는 영화도 촬영했던 곳이었다. 굳이 아마추어 해설사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았다. 깎아지른듯한 암벽 위 정자와 소나무가 이루어진 절경을 쉽게 알아보기에 충분했다.

“우리 고향 이곳은 발길 닿는 곳마다 워낙 경치가 뛰어나다. 초등학교 시절 봄가을 소풍 장소는 학년마다 정해져 있었다. 이웃 동네에서 원정 소풍을 올 정도였다.”

라고 나는 자랑을 하나 더 늘어놓았다. 비봉산, 솔밭, 자랫벌, 자풍 , 수두리 밤나무밭, 영국사 등이 단골 소풍 장소이었고 이 밖에 여의정, 용바위, 귀바위 형제 바위에 관해서도 짧게 해설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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