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전 5기 만에 데뷔에 성공한 관광 해설사(2편 완)

by 그루터기

방금 전 비단 강변에서 절친 의용소방대장과 나눈 술자리 덕분이었다. 약간의 취기가 돌았다. 아무리 강선대 경치가 빼어나고 인근에 절묘한 포토존이 많다 하더라도 걸음을 조심하라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정각 인근 깎아지른 바위 지역에서 발걸음을 한 발짝이라도 잘 못 디딛는 순간 감당하지 못할 인사 사고도 각오해야 할 정도였다.


우리 고향 절친에게 항상 1년 후배라는 놀림을 받고 있는 선배가 꾸려가고 있는 곳이었다. 강선대 건너편 찻집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을 감상하며 국화차와 쌍화차를 게으르게 마실 수 있는 호사도 누렸다. 선배(?) 대접까지 받았다. 다디단 고향산 수박도 서비스로 맛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송호 수련원 주차장으로 복귀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수박 농사 제1인자인 수박 달인 철주 친구로부터 맛있는 수박 한 통을 선물로 건네받았다. 두 친구에게 고향 절친을 마음껏 자랑할 수 있었다.

친구들을 맞이하기 위해 거금(?)을 들여 일찍이 도배와 장판 교체까지 마친 내 고향 보금자리에 여장을 풀었다. 잠시 후 읍내로 향하였다. 중국 음식점은 문을 일찍 닫는 경우가 많았다. 읍내에서 한의원을 이끌고 있는 친구의 소개로 근사한 저녁 식사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봉호는 오늘도 연태 고량주를 5병이나 배낭에 챙겨 왔다. 이곳 음식점에서 마셔도 되겠느냐는 양해를 구했다. 여자 주인장은 쿨하게 오케이를 했다. 이곳을 소개한 친구의 이름을 동원했다. 같은 모임의 회원이라고 하며 반색을 했다. 자기 가게를 찾은 손님들의 기분을 한 번 더 좋게 업시켜 주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선진국도 마찬가지라 했다. 아직도 지연 혈연 학연을 따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연고주의에 관해 호 불호가 갈릴 수 있기는 하다. 좋은 말로 이르면 ‘네트워크’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루 세 번이나 마주하는 일용할 양식도 각자 식성이 다르듯이 좋아하는 술 종류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34도짜리 고량주를 봉호는 미리 알뜰하게 준비해온 약수에다 희석했다. 정확히 알코올 농도 17도의 새로운 술로 재탄생시키어 즐겁게 마시는 재주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수도권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대리운전을 수소문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음식점에서 소개받은 택시 기사의 도움을 받아 숙소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젊은 시절과 달랐다. 24시간 내내 아니면 새벽 2시까지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주점이 없는 것을 기분 좋게 개탄(?)했다. 내 보금자리로 복귀 중에 캔맥주 등을 편의점에서 조달해오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고향 집에서 첫날밤이었다. 새로이 장만해온 베개에 각자 머리를 뉘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해설사가 예고한 출격 시각에 비해 3시간이나 앞선 시각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에 우리 일행은 약속이나 한 듯이 벌떡 일어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아침 식사 장소로 머릿속에 이미 점지해 둔 음식점 오픈 시각까지는 아직 여유가 많이 있었다. 나는 영업을 힘들게 했던 경험을 살렸다. 아주 성실하고 열심히 살고 있어 주위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는 면 소재지 친구였다. 그가 늘 추천한 무주군 적상산에 자리한 안국사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아침 식사 전에 한 곳이라도 두 친구에게 더 보여주고 싶었다.


빗 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강한 바람도 동반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근 짙은 초록색으로 단장한 수목은 평소 도회지 생활에 찌든 일행의 시력을 한층 높여 주었고 심신을 힐링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곳에서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닌 다음 목적지인 전망대에 올랐다.

수력발전소의 일반 형태와는 달랐다. 이름하여 ‘양수 발전소’였다.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찼을 때나 부하가 적게 걸리는 한 밤중에 잉여 전력을 이용했다. 이런 시간대에 펌프를 가동하여 발전소 아래에 설치된 저수지의 물을 퍼올려 다른 계통 사고가 발생할 경우나 낮의 최대 부하 시에 발전을 하는 방식이었다. 안타깝게도 굵은 빗줄기와 짙은 안개로 해설사가 두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은 풍경은 그 모습을 끝내 드러내지 않았다. 다락논 지역을 방불케 하는 계곡의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엄청난 양의 물을 가둔 저수지의 위용을 제대로 볼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바람이 강한 날 전망대를 오르내릴 때는 비를 맞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우산을 접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는 작은 지혜를 배웠다. 펼쳐진 우산이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강풍의 엄청난 에너지에 우산 주인장 마저 우산과 한 몸이 되어 저 멀리 날아갈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고향의 토종 음식 메뉴 중의 하나인 다슬기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갈음했다. 일행은 인근 읍내 재래시장을 한 바퀴 휘익 들러보았다.


이어 우리는 이미 봉호가 방송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는 상촌면 물한계곡에 도착했다. 장마철이라 비록 맑은 물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친구들은 비록 흙탕물이지만 계곡의 규모와 위용에 감탄했는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담기에 바빴다. 상수는 이곳이 버섯의 주산지임을 이미 알고 잘 알고 있었다. 추석 전 후가 되어야 버섯을 수확할 수 있다는 토박이 주민의 안내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회가 되면 버섯 전문 요리도 실컷 먹고 각종 버섯도 큰 보따리로 하나 가득 담아갈 수 있는 날은 다음으로 기약했다.


우리 선산 바로 아래였다. 후배가 정말로 피땀을 흘려 열심히 일군, 관광지로 생각하고 구경할 만한 비봉산 중턱에 자리한 과수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후배에게 선물로 받은 복숭아와 자두를 나의 애마 트렁크에 잔뜩 실었다.


‘그럭고개’ 중턱에 명품 산골 오징어 집도 잠깐 들렀다. 풍광이 좋은 곳에서 말려 내는 오징어 맛을 일행들에게 맛보기로 보여 주었다. 요모조모로 좋은 풍경이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에 손색이 없는 길을 따라 심천면 고당리 맛집으로 서둘러 들어섰다. 정갈한 쌈밥 정식으로 허기진 배를 부지런히 채웠다.


조금 과장하면 그럴 만도 했다. ‘비류직하삼천척’이라는 중국 유명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깔끔하고 시원스럽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휴대폰에 담느라 두 친구는 모두 정신이 없었다. 명창들이 폭포 인근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후 서둘러 귀경길에 올랐다.

제법 굵은 빗줄기와 시간상 제약으로 그 훌륭한 둘레길을 완주하지 못했던 것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래서 고향 새내기 해설사의 데뷔는 반 정도의 성공으로 마감이 되었다.


소나무 밭 건너편 최근 비단 강변엔 출렁다리도 명품으로 새로이 등장했다. 다른 곳에서 ‘운동 한번 하자’는 말은 ‘골프 라운딩’을 이른다. 하지만 우리 고향에선 6킬로 미터의 둘레길 트레킹을 운동이라 불리고 정착된 지 이미 오래였다. 출렁다리 건너편 산자락 한 곳엔 또 하나의 명소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향 절친의 전원주택이 그것이다.


어제저녁엔 이곳에서 친구 네댓 명이 작은 잔치를 한바탕 벌였다. 막걸리와 오리로스를 야외 식탁에 올렸다. 친구의 텃밭에서 호미로 정성스레 캐어내고 다듬은 씻나물과 머위 나물도 음식 맛을 높이는데 톡톡히 한몫을 했다. 나는 방금 전 고향 죽마고우 일행과 둘레길을 한 바퀴 휘익 돌고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고향 관광해설사의 임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 해설사로선 중견을 들어선 내겐 이것은 그저 즐거운 비명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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