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설립자와 기나긴 악연(6편, 완)

by 그루터기



우리 중학교도 역시 1분기인 3개월마다 등록금을 납부해야 학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시 1학년 기준 한 분기 등록금은 4,300원 내외였다. 면사무소나 학교 지서 등 이른바 봉급생활자를 부모로 둔 친구들은 현금의 흐름이 비교적 원활했다. 이에 반해 오로지 농사일만을 전업으로 하는 다른 친구네는 그 절대 규모 치도 넉넉지 않았다. 농산물의 수확철을 제외하곤 현금의 흐름이 원활치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다 보니 정해진 기한 내에 등록금을 미처 마련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친구들에 대한 학교 측의 대응 조치가 문제였다. 방과 후가 아닌 수업이 진행 중인 한가운데 따로 불러내어 등록금을 구해오라며 귀가조치를 내렸다. 설립자의 부름을 받은 친구들의 어깨는 축 늘어졌다. 고개마저 푹 숙인 채 학교 밖으로 나서는 모습에 이를 지켜보는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짠해졌다.


이에 한걸음 더 나아가 월례고사 등 이른바 시험 시즌과 등록금 납부 기한이 가끔 겹쳤다. 등록금을 제 때에 납부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겐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적인 조치도 내려졌다. 각자의 1인용 나무 재질의 책상과 의자를 번쩍 들어 올려야 했다.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보통 사람의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는 화장실 곁으로 자리를 옮겨 시험을 치르게 했다. 이는 분명 정도를 넘는 과잉대응이었다. 상상 밖의 조치였다. 이 배후엔 당연히 설립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같으면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이라도 하여 해결책을 모색할 수는 있는 문제였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전해 들은 비단강 건너가 출생지인 나의 한해 선배의 아버지는 비분강개했다. 그런 수준의 학교엔 자신의 아들을 맡길 수 없다며 아들을 영원히 학교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른바 자퇴를 시킨 것이었다. 작금의 현실에 비출 때 이러한 막장에 가까운 조치란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20대 중반이 된 나는 세 살 위인 형과 설립자의 둘째 딸과 사이에 혼담이 오간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고 기겁을 했다.

“이 혼사가 성사될 리가 없겠지만 만의 하나 그 반대의 결과가 일어날 경우엔 칼부림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라는 극단적인 입장을 냈다. 결국은 무위로 끝나고 혼담은 그 이상 진전이 되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만약에 ~~ 이 없었다면, ~~이었다면’ 부질없는 일이라고 들 한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도 결국은 인간 개개인 움직임이 모여서 되는 것이다. 개인 생애도 결국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럼에도 가정을 해보고 싶은 것이 현재로선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나의 중학생 시절을 통틀어 설립자는 일국의 최고 통치귄자보다 더 막강한 권한과 결정권을 한 손에 틀어 쥐었다. 담임을 맡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후에서 학사일정이나 세세한 부문까지 좌지우지하던 설립자였다. 70년대 말 이후 오랜 기간 중동지역 이란의 실질적인 실력자 호메이니를 능가했다.


만약 내가 이 설립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났더라도 많은 부문에서 간섭과 처분을 덜 받았더라면 하는 가정을 해 보았다. 아마 나의 인생행로는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지금도 포기할 수 없다. 엄청난 아쉬움 때문이다. 누구를 탓하고 누굴 원망하리오. 내 인생이 여기까지 인걸.


몇 해 전 설립자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전해 들었다. 나는 약간의 망설임을 떨친 후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이미 둥지를 튼 고향 절친과 문상길에 올랐다. 늦은 밤과 새벽 시간을 할애하여 짧지 않은 거리를 왕복했다. 고향 4년 후배인 설립자의 장남과도 나는 케미가 좋을 리 없었다. 후배는 사회적으로 지명도가 있었고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올랐다. 먼길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부친 빈소를 찾은 고향 선후배들로 장례식장은 북적였다. 이후에 그 흔한 문자 인사라도 챙겨야 하는 것이 기본으로 보였다. 그러지 못함에 아쉬움으로 남았다.


문상 후 귀가 길에 빠른 속도로 달리는 친구의 차량 좌측 한편을 고라니와 만만치 않게 부딪혔다. 결코 가볍지 않은 충돌사고였다. 친구의 애마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다. 다행히도 우리 둘은 몸은 다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또한 나의 다가올 앞날에 대한 적정한 액땜으로 생각하고 넘겨버리는 것이 심신에 훨씬 이로울 것으로 보였다.

작가의 이전글중학교 설립자와 기나긴 악연(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