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던 순간 나는 울분이 치밀었다. 작업자가 무료봉사를 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분명히 노동이나 일의 완성에 대한 대가를 당당하게 지불하면서도 저렇게 절절매는 친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이 것 오늘도 못다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일을 추가로 해야겠네요?”
작업자는 공정을 되도록 오랜 기간 늘려가며 많은 대가를 계속 받아내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사장님, 이것 3년여 된 모과나무인데 이렇게 두면 죽습니다. 그래서 옮겨 심을 수 있도록 이쪽을 조금만 파주세요.”
“아닙니다. 지금 약속이 있어서 곧 가보아야 합니다.”
기겁을 할 일이 또 뒤를 이었다. 방금 전에 자신이 포클레인으로 뽑아낸 모과나무를 살리려 하는 주인장의 간절한 부탁마저 단호하게 거절을 한 것이었다.
“점심 식사가 곧 도착할 텐데 식사를 하고 가시지요?”
“제가 좀 바빠서요.”
오늘도 진호는 이 작업자에게 웃돈을 물론 식사비까지 챙겨주는 또 한 번의 호의를 베풀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경제학의 가장 기본 원리이다. 포클레인 사업자 수인 공급이 아주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도처에 널린 사람이 포클레인 사업자이다. 그렇다고 공사장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었다. 진호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비추어도 결코 불리한 입장이 아니었다. 작업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리고 일의 완성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사업자 대신 제대로 된 사업자를 얼마든지 물색이 가능했다.
“다른 사업자가 공사를 하다 중단한 일을 떠안으려는 사업자는 없다. 이 바닥이 워낙 좁기 때문에 사업자들 사이엔 소문이 금세 번진다. 그러니 섣불리 사업자를 교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 친구 일행은 이런 진호의 생각에 이번에도 결코 동의를 하지 않았다. 작업자는 이미 진호의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앉아 있는 듯했다. 어찌하든 자신을 계속해서 부를 것이고 웃돈까지 받아내고 작업 일 수와 시간을 늘려도 자신을 다른 작업자로 갈아 치울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우리 일행은 속에 천불이 났다.
호의를 받은 사람은 처음엔 이에 관해 상응한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런데 이 호의가 계속 이어지면 상대는 이를 자신의 당연한 ’ 권리‘로 여긴다. 그래서 매번 자신이 요구하는 대가를 늘려간다. 호인은 상대에게 질질 끌려 다니며 결국은 ‘호구’에 등극하는 것이었다.
노동의 제공이나 일의 완성에 정당한 대가는 당연히 지급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호의를 베푼다는 핑계로 필요 이상의 경제적 이익을 작업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절대 삼갈 일이다. 더구나 상대가 독과점 사업자가 아닌 경우엔 더욱 호인 행세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친구 진호는 그 이후 추가 공사를 잠시 중단했다. 이 비단강 상류 전망이 뛰어난 명당자리에 추가 공사 후임 작업자로 누가 나타날지 자못 궁금하다. 지난번과 같은 인물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믿고 싶다. 자기 스스로 냉정한 판단과 절도 있는 행동을 보이면 호인이란 칭찬을 계속 듣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호인을 넘어 어느 순간 호구에 등극할 염려는 없다.
애초 노무의 제공이 아닌 일의 완성으로 계약 내용을 정해 못 박는 것도 이런 공사에서 호구에 등극하지 않는 좋은 방식임이 분명했다.
“이러한 작업을 며칠이면 할 수 있나요?”
“3일이면 됩니다.”
“그럼 3일 동안 일을 완성하는 것으로 하고 3일분 품삯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시다.”
이런 방식도 하나의 대안이다.
호의나 인정을 베푸는 것과 계약은 별개 문제이다. ‘호의 관계’와 ‘법률관계’를 혼동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