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간의 초등학교 3년 시절(1편)

by 그루터기

나의 학창 시절을 통틀어 1년 단위로 나누어 가장 재미있고 긴 세월을 꼽으라면 단연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본디 본인이 좋아하거나 재미있는 놀이나 일을 할 경우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들 했다. 하지만 이 시절은 재미도 있었고 아주 긴 세월이었다. 1,000일 정도와 맞먹는 신나는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구구단이나 국민교육헌장 등을 제대로 암기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필수 코스가 ‘나머지 공부’였다. 이와 달리 친구들이 자진하여 만든 100% 순수 자발성 나머지 공부 그룹이 따로 있었다. 특정 교사가 제한된 인원을 모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그룹 과외가 결코 아니었다. 여기선 모두가 스승이고 모두 제자였다. 누가 먼저 앞장서 회원을 모집한 것이 아니었다. 정규수업이 끝났음에도 부모가 기다리는 집으로 일찍 돌아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놀이, 숙제, 공부 시간을 무작위로 조합했다.


우리 모두는 만 10살이 되지 않았다. 가장 큰 회원의 길이도 130 센티미터에 미치지 못했다. 놀이와 공부 문화의 적절한 조합을 이루어 냈다. 생각하면 참 신기했다. 요즈음 이야기되는 대안학교의 살아 있는 열린 교육이었다.


3학년이니 평일 기껏해야 6교시 수업 정규 시간표가 짜여 있었다. 오후 2시 30분경부터 여름날은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6시 30분 정도까지 매일 뛰어놀다가 공부하다가를 뒤죽박죽으로 섞었다. 대략 10명 내외의 친구가 이른바 나머지 공부에 참여했다.


당시 동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당연히 상여로 장례식을 치렀고 거의 예외가 없었다. 이 문화는 고향에서는 최근까지 지속되었다. 그런데 이 어린 회원들이 평소 동네에서 보고 듣고 한 경험을 십분 살려 이른바 상여 놀이를 했다. 요령잡이 역할을 하는 친구가 선창을 하면 ‘어어히 어어히’ 하며 노래의 후렴처럼 따라 외쳤다. 마치 제법 정돈된 상여 행렬처럼 발도 잘 맞추었다. 리더 격인 요령잡이의 멘트도 인생사의 아주 근본적인 문제인 생로병사에 관한 깊은 철학이 담긴 내용이었다.


나머지 공부시간에 회원들은 자신의 실내화가 어디에 있는지 아예 관심이 없었다. 평소 신고 다니던 껌정 고무신도 내팽개치고 1, 2 ,3 교사 건물 동 사이를 수시로 넘나들었다. 콘크리트 재질의 디딤돌도 디디는 둥 마는 둥 ‘신발 반 맨발 반’으로 신나게 내달렸다. 그럼에도 서산까지는 해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닭싸움이라고 하지만 당시 회원들은 제트기 싸움이란 걸 두 편으로 갈라서 자주 벌이곤 했다. 어찌 된 일인지 승부는 항상 정해져 있었다.


우리 팀의 승리로 경기는 항상 끝났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정말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일이었다. 이 경기에서도 굳이 분류하자면 공격형과 수비형으로 나뉘었다. 남호를 비롯하여 나 보다 길이나 덩치에서 우위인 회원들은 대부분이 공격형이었다. 이런 공격형 회원들은 두 손으로 잡아 걷어 올린 발끝으로 수비형 선수인 내 가슴팍을 힘차게 여러 번 내리찍었다. 마치 군대 선임이 졸개의 가슴을 M16 소총 개머리판으로 내려 찍듯이 사정을 보아주지 않았다. 정교한 규칙이 있었다면 이는 분명 반칙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끄덕 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격형 선수들은 힘든 동작을 많이 이어가다 보니 체력이 결국 바닥나게 마련이었다. 그즈음되면 나는 아직 살아 있는 몇 되지 않는 상대팀 선수에 슬그머니 접근했다.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결코 대단한 비장의 무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간단했다. 전성기의 씨름 선수 이만기가 자신보다 신장이나 체중 면에서 월등하게 우위인 이봉걸을 무너 뜨리듯 했다. 상대가 양쪽 손으로 접어서 잡고 있는 다리의 아래쪽에 접고 있는 내 다리를 슬쩍 밀어 넣고선 약간의 힘을 주어 들어 올렸다.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하거나 고칠 때 동원하던 공구인 자키를 작동하듯 했다. 그러면 순간 상대는 무게 중심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쉽게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어느 여성 코미디언의 단골 멘트인 ‘이기는 것 쉽지요~ 잉’이 이에 딱 들어맞았다. 이래서 결국은 나 혼자만이 살아남고 우리 쪽이 항상 승리팀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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