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형과 수비형 선수
제트기 싸움에서 이렇게 끈질기게 오랜 시간 버틴다고 해서 나는 친구들로부터 ‘소나무 뿌리, 뿌링이’란 자랑스러운 별칭을 얻었다. 토종 고향 말로는 끈질기다는 용어 대신 ‘빡잘기다’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순발력보다는 지구력이 나에게는 보다 경쟁력이 있는 부문인 것이었다.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남자 탁구 단식 종목에서 유남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세계 랭킹 50위에 불과했던 유남규는 8강전에서 세계랭킹 1위인 중국의 장자량과 만났다. 상대 선수가 드라이브를 하든 회심의 강스메싱을 하든 그것은 그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각종 어려운 구질을 모두 잘 읽어냈다. 탁구대 중앙의 네트에 걸리지 않고 무난히 받아넘겼다. 조그마한 탁구공이 오랜 시간 네트 위를 오가는 랠리가 지속되었다. 장자량이 여러 가지 다양한 공격을 해도 유남규에겐 그것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역전 재역전을 거듭했다. 마지막 5세트에서 14대 19로 패색이 짙었던 유남규는 열세를 극복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였다.
결국은 풀세트 접전 끝에 장자량을 따돌렸다. 경기 시간은 기록적으로 길어졌다. 이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물론 중계방송을 보는 전 세계 시청자들이 정말로 손에 땀을 쥐는 역사적인 명승부 경기였다. 내가 제트기 싸움에서 끝까지 버틴 결과 우리 팀이 승리한 것과 유사했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이었다. 왕년의 국가대표 선수와 현역 선수들이 겨루는 탁구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현정화가 이르던 말이 떠올랐다.
“저는 수비형 선수와 상대하면 늘 자신이 있어요”
자신은 공격형이라고 고백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현정화는 관록을 과시하며 현역 선수를 넘어섰다. 만약 현역 선수가 승리를 했다면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다시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다. 현정화는 양영자와 탁구 여자 복식경기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른바 ‘환상의 복식조’라는 신조어도 탄생시켰다. 신예와 노장의 조화이거나 공격형과 수비형의 시너지 효과 때문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떤 경기이든 마찬가지였다. 무릇 공격형과 수비형 중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우위라고 단언을 할 수는 없다. 자신 스타일에 맞게 강점을 키우고 꾸준히 자신만의 독특한 기술을 개발한 선수는 경기에서 승산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지독한 수비형에 지구력 면에서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 나는 이후 직장생활도 길게 이어갈 수 있었다. 다만 영업 부문에선 공격형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명색이 나머지 ‘공부시간’이니 놀이나 게임만 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당시 모든 학생들의 로망 중의 하나가 ‘전과’를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었다. 남호와 나는 다행히도 그런 형편이 되었다.
남호와 나는 각각 동아전과와 표준전과를 끼고 살았다. 낱말풀이, 문단 나누기, 반대말, 비슷한 말 찾기 등을 전과를 보고 무조건 베껴 적는 것이 공부의 전부였다. 우리 둘이서는 서로 자신의 브랜드가 좋다고 많이 다투었다. 교감 선생님의 아들인 남호의 위세에 나는 결코 주눅이 들지 않았다. 더 나아가 남호의 환심을 사기 위한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결국은 초등 3학년 시절은 우리에게 1000일의 세월이었다. 초등학교를 마치는데 우리 나머지 공부 회원들은 9년이나 걸린 셈이 되었다. 우리 나머지 공부 회원들의 삶도 초등학교 3학년 시절처럼 재미있고 신나게 오래 이어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