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호는 내가 과연 오전 10시까지 나타날 수 있을까 의심을 품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래서 2번 공정부터 손을 댔노라 했다. 자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는 게으르다거나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평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좀 황당했다.
“그래도 70%를 믿어준다니 기태 자네는 많은 점수를 받은 것이야. 복을 받은 것이지? 다른 친구보다 훨씬 나은 형편이 되었어.”
맞은편의 또 다른 고향 절친 철우의 관전평이었다. 나는 이것을 칭찬으로 들어야 할지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산등성이를 깎아내어 얻어낸 양질의 흙더미로 전원주택에 딸린 대지의 여유 공간을 높이고 늘리는 일이 이번 공사의 핵심이었다. 그 다음은 주방 등 추가 공사 예정지를 돋우고 다지는 것이었다. 포클레인을 하루만 동원하면 이는 충분히 마무리될 것이라 진호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예상은 보기 좋기 빗나갔다.
“사장님, 이 우유나 음료수 좀 드시고 하세요. 잠시 방에 들어 쉬었다 하시지요? 점심 식사를 주문했는데 드신 후에 하세요.”
진호는 포클레인 작업자에게 간식은 물론 점심 식사까지 푸짐하게 베풀었다. 중간중간 휴식도 권유하는 등 정말 너무 마음씨 좋은 감독자였다. 쉬운 말로 ‘호인’이었다. 어쩌면 작업자와 진호는 각각 갑과 을이었다. 입장이 서로 바뀐 듯했다.
포클레인은 하루 동안 8시간의 작업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은 1시간 동안 온전히 모두 쉬는 시간이었다. 근로기준법 운운까지 하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니었다. 사업자등록을 가진 작업자는 일반 직장의 근로자와는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달랐다. 어찌 보면 이는 고용계약보다는 도급계약에 가까운 것이었다. ‘노무의 제공’이 아니라 ‘일의 완성’이 계약의 핵심 내용인 것이었다.
“저는 이 진호 사장님과는 여러 번 일를 같이 했습니다. 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이지요.”
작업자는 내 친구 진호와 구면이고 더 나아가 막역한 친분도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작업자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오늘 예정된 공정을 애초 모두 마무리할 생각이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다. 작업 시간 중간중간 휴대폰 통화도 거리낌 없이 이어갔다. 어차피 오늘 이 예정된 공정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다음에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찾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진호는 그럼에도 합의된 품삯에 무려 10만 원이란 웃돈을 건넸다며 우리 일행에게 자랑을 했다. 이 지경이 되니 우리 친구 진호는 바야흐로 ‘호인’이 아니라 ’ 호구‘에 당당히 등극한 것이었다.
내일은 한나절 만이라도 일을 해줄 수 있느냐고 진호는 작업자에게 애원하듯 물었다. 진호는 처음 하루를 원했다. 하지만 작업자는 그럴 사정이 아니라 했다. 한나절이면 정확히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가 맞았다. 이는 삼척동자라도 계산이 가능했다. 그런데 작업자는 자신의 개인 일정을 핑계로 11시 30분까지만 일을 할 수 있다고 단호하게 잘랐다. 본디 하루 품삯을 70만 원으로 양자 간에 합의를 했다. 정확히 한나절 분은 35만 원이 맞았다. 그런데 40만 원을 요구했고 그것도 30분이란 작업시간을 싹둑 잘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