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병장과 중대장(2편)

by 그루터기



교련 검열은 학교 단위로 매년 한 번씩 있었다. 외부 인사가 직접 학교로 방문하여 교련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점검했다. 심 병장과 중대장은 물론 교장선생님은 이 교련 검열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기 위해 항상 노심초사했다. 실제 열병, 분열, 사열, 총검술 시범, 제식훈련 등 여러 부문을 망라하여 평가받았다. 제일 나중엔 총평으로 마무리했다.


교련 실기 경연대회는 도 단위의 보다 큰 대규모 행사였다. 공설 운동장에 학교에서 선발된 학생들이 집결했다. 여러 개 학교를 몇 팀으로 나누어 총검술, 의식 부대, 응원 등을 겨루었다. 문제는 우리 모교는 다른 메이저 학교 대비 총 학생 수가 절반에 그친 것이었다. 그래서 3학년생도 모두 이 행사에 부득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2학년 때가 이 두 가지 행사의 절정기였다. 대학 입학시험을 코 앞에 둔 3학년 선배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학 입시 준비에 매진해야 할 시기에 교련 검열이나 교련 실기 경연대회 연습은 물론 실제 현장에 참석을 해야 했다. 다른 메이저 학교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였다. 2학년생이 두 가지 행사에 가장 많이 동원되고 기여를 해야 했다. 교련 실기 경연 대회에 출전할 부문별 인력을 구분하여 배치했다. 총검술, 의식 부대에 우리 2학년생이 모두 차출이 되었다.


우리가 2학년 1학기 시절엔 봄부터 여름까지 유난히 비가 내리는 강우일이 많았다. 그래서 실외에서 수업이나 훈련을 해야 하는 교련 시간을 실내 수업으로 갈음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 좋아하지 마세요. 어차피 2학년생들이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나중에 부족한 수업이나 훈련을 실컷 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심 병장의 뜻 밖의 자상한 설명이었다.


심 병장의 예측대로 드디어 맑은 날이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대단한 일이 벌어졌다. 본디 정해진 교련이나 체육 시간이 아니었다. 국영수 주요 과목 정규 수업 시간을 할애하여 교련 실기 경연대회 연습에 돌입했다. 때론 오후 수업 시간을 통으로 비워 이 연습에 매진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분명 엽기적이었다. 하지만 당시로선 별로 특이한 예외적인 행태가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대전 시내 메이저 고교와 달리 한 반 60명씩 6개 반이 정원이었다. 정확히 절반 규모였다. 수적 열세가 절대적이었다. 다른 학교와 머릿수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3학년 선배들도 열외 한 명이 없이 공설운동장의 스탠드에 응원부대로 총동원되었다. 종목별 경기 중간마다 응원 타임이 주어졌고 카드섹션 행사도 선보였다. 응원이나 카드섹션 행사에는 개인별 장비가 동원되었다. 박수에 필요한 짝짝이는 기본이었다.


이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예전 300번지 시대 관내 메인스트리트에 자주 등장하던 번데기 장수가 리어카에 비치하던 것이었다. 이른바 “찍기 장비”에 버금갔다. 베니어판이나 딱딱한 골판지를 동원하여 둥근 원판을 만들고 가운데 마련된 홈에 끼 원선 힘을 주어 한 방향으로 돌렸다. 새의 깃털이 윗부분에 창착된 송곳으로 찍어냈다. 10원은 기본 참가비였다. 꽝부터 50원 분량 번데기 등 크고 작은 표적 영역을 표기했다.


“비 오는 날이면 언덕에 올라 ~~~”, 이 것이 우리 모교의 응원가 중 하나였다. 우리는 각자 준비된 원형판을 중간 구멍에 끼워 돌리며 노래를 불러야 했다. 번데기 장사의 찍기 장비에 힌트를 얻은 것이 분명했다. 이 찍기 원형판의 색상은 짙은 초록색으로 이미 지정해 준 바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 3학년 선배들은 대학 입시가 코 앞인데 이런 학교 당국의 지침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우리 응원단 모두는 제 각각이었다. 색상은 물론 원형판의 크기, 아래 구멍에 끼우는 꼬챙이 등 어느 하나 규격에 맞춘 것이 없었다.


우리 학교 응원단은 카드섹션에서 헬리콥터를 생성해내는 것이 미션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본디 카드섹션이란 일사 분란하게 모든 참가자가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애초 목표한 조형물을 구현되는 것이었다.

“** 고등학교 헬리콥터는 조선 시대 쓰던 것이 아니야?”

다른 학교에 적을 둔 같은 하숙집 친구가 이르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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