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꼬마야! 너 큰 누나 있어? 아니면 막내 이모는?”
교련 시간 무기고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남자 꼬맹이가 등장했다. 우리가 다니던 고교는 같은 울타리 안에 중학교와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분명 중학생은 아니었다. 수업시간 시작을 2분여 앞두고 이곳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으로 보아 그랬다.
우리는 이윽고 교련 수업 준비에 돌입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무기고를 열어 딱딱한 고무 재질의 모의 소총을 줄지어 보급받았다. 이어 오와 열을 맞추고 200미터 트랙을 도는 구보에 들어갔다. 초겨울이라 운동장 군데군데 움푹 파인 곳마다 얇은 얼음이 보였다. 소대장의 구령에 맞추어 제대로 발도 잘 맞추고 번호도 붙였다.
대략 트랙 서너 바퀴를 돌고 난 후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 정상적인 수순이었다. 우리 반 소대원 모두가 한 바퀴를 돌아 교정 정면 조회대 앞을 막 통과하던 순간이었다. 남저음 목청을 자랑하는 교관의 불호령이 갑자기 떨어졌다. 전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미 교관은 멀리서나마 우리의 오늘 수업 준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야, 이놈들, 소대장! 모두 제자리에 세워. 총 내려놓고 줄 맞추어 앞 놈부터 이빨 깨물고 한 놈씩 덤벼! 이 자식들, 오와 열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무엇하는 것들이야?”
순식간에 닥친 일이었다. 아닌 밤의 홍두깨였다.
교관은 자신의 앞으로 차례로 나서는 우리들을 주먹을 불끈 쥐고 체중을 몽땅 실어 오른쪽 뺨을 쥐어박았다. 4열 종대였다. 반 친구 모두는 69명이니 소대장을 제외하면 정확히 17열로 꽉 짜여 있었다.
‘에이, 이 것 무어야? 아구통을 맞더라도 이유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니야?’
나의 혼잣말이었다.
예닐곱 열 정도까지 친구들은 사연도 전혀 모르고 주먹으로 뺨을 강타당했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반전이 일어났다. 우리는 69명 모두가 체벌을 당할 것이라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이 뺨 때리기 소동은 중단이 되었다. 69명 모두의 뺨을 빠짐없이 때리기엔 교관의 체력이 좀 부친 것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 당시 우리의 일치된 생각이었다.
“신발과 양말 모두 벗어. 다 벗었나? 그럼 마저 돌아!”
흙과 얇은 얼음과 찬물이 범벅이 된 연병장을 우리는 조금 전보다 더욱 우렁찬 구령에 맞추어 패기 있게 구보를 이어갔다. 처음엔 발바닥이 좀 시렸으나 나중엔 별 애로가 없었다. 젊은 피가 끓고 체력이 넘쳐나는 우리는 고교 2학년생이었다. 200미터 트랙을 마저 돌은 우리는 무기고 앞에 다시 정렬했다.
“자, 귀관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매번 집합하던 곳이 어디인지 까먹은 거야? 여기 무기고 바로 앞이 아니었어? 왜 오늘은 무기고와 저만치 떨어진 나무 아래에서 웅성거렸느냐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