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교관에게 난데없이 따귀를 한 대씩 얻어맞은 진정한 이유를 알듯 했다. 큰 누나나 막내 이모가 있느냐고 우리가 다투어 묻던 그 꼬맹이의 정체가 드디어 밝혀졌다. 우리 교관의 늦둥이 막내아들이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금쪽같은 막내아들에게 하릴없이 집적거렸던 우리의 ‘만행’에 대한 보복조치였다.
당시 반 출석번호는 키가 작은 친구부터 앞 번호를 부여받는 방식이었다. 나는 실제 키에 비해 앞쪽 번호를 받았다. 교련 시간에 4열 종대로 정렬하는 순서는 출석번호와 역순이었다. 키가 큰 친구부터 앞 쪽에 배치되었다. 반드시 출석번호와 정확히 반대로 정렬하지는 않았으나 대부분 이에 따랐다.
나는 69명 중 32번에 랭크되었으니 키순으로 보자면 중간에 좀 모자랐다. 하지만 실제 신장을 기준으로 하여 좀 앞 줄에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다행히 나는 이 교관의 따귀 때리는 체벌의 사정권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바로 내 두 개 앞 열에서 이 체벌은 끝이 났다. 3대에 걸쳐 공덕을 쌓은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교관은 현역 시절 중대장의 경력이 있던 예비역 대위였다. 감히 지존인 예비역 대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었다. 한 발 더 나아갔다. 교관의 금쪽같은 늦둥이 막내아들은 이미 아버지보다 한 계급 위인 소령의 계급장을 당당히 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목은 ‘괘씸죄’라는 것이 평범한 진리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존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의 근처에는 아예 가지도 않는 것이 처세의 첫 번째 준칙임을 제대로 배웠다. 그 이후 각종 조직 생활에서 나는 이를 제대로 실천했느냐를 스스로 돌아보았다. 결코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줄을 잘 서야 출세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오늘은 일단 줄 서기에 성공했다. 그래서 가까스로 화를 면했다. 나는 결코 짧지 않은 학창 시절을 마무리했다. 그 이후 또 오랜 기간 이어간 직장 생활에선 나는 결코 주류가 아니었다. 조직에서 비주류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련 시간과 달리 직장 생활 시절엔 줄 서기에 성공을 하지 못한 셈이었다.
내가 교련 시간에 줄 서기를 잘했다는 것은 우연한 선택으로 뜻밖의 행운을 얻었다는 의미였다. 군대에서 근무지나 주특기가 정해질 때 잘 쓰던 말이기도 했다. 자신의 주위에 유력한 집안의 자식이 섞이면 본인도 덩달아 덕을 본다는 것에 딱 들어맞았다.
‘줄 서기’란 본래 뜻은 순서를 잘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줄 서기를 제대로 하는 것은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출세를 위한 줄 서기란 용어를 ‘줄타기’ 내지 ‘줄잡기’로 고쳐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