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혼밥 vs 집 밖 혼합(2편)
귀촌 생활 적응 일기
“가장 큰 애로는 메뉴에 있어. 내 마음대로 원하는 음식을 고를 수가 없어.
최소 주문 단위가 2인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이미 오래전부터 등산 마니아가 된 고향 절친 운섭이는 작지 않은 고민을 토로했다. 운섭이는 홀로 산행을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민생고 해결을 위해 식당을 들를 수밖에 없었다. 식당마다 형편이 달랐다. 하지만 김치 된장찌개, 각종 전골류는 2인 이상의 주문만을 허락하는 메뉴였다. 각종 볶음이나 생선구이도 1인분의 주문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나는 이제 현직에 있을 때와 달리 되도록 식비를 줄여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내가 손수 식재료를 조달하여 음식을 장만하는 자급자족을 해야 했다. 주식인 밥을 마련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20 킬로그램 백미에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잡곡 5 킬로그램을 잘 섞어 건강 혼합 잡곡을 준비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매번 1인분씩 조리를 한다는 것은 매우 거추장스러웠고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계량컵 6개 분량을 덜어내고 전기밥솥의 힘을 빌어 해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래서 약 12 내지 13인분의 훌륭한 잡곡밥을 완성했다. 그런 후 전자레인지에 사용 가능한 1인분 용량의 용기에 담았다. 이를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필요한 분량만 꺼내어 해동 후 식탁에 올렸다.
나는 중학과 고교 시절 실업 선택 과목으로 각각 농업과 공업을 공부했다. 선택은 말뿐이었다. 학교 당국이 정한 대로 전교생이 일사불란하게 같은 과목을 이수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 곳의 금융기관에서 자그마치 30여 년 이상을 근속했다. 입사 이전에 상업이나 회계 쪽은 전혀 입문할 기회가 없었다. 겨우 국가고시 1차 필수과목인 경제학개론을 수험 대비용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이러다 보니 금융기관 근무에 더욱 필요한 상업이나 회계학 부문은 깡통이었다. 농업과 공업에 관한 지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차변과 대변, 거래의 8요소니 이런 기초 지식도 전혀 갖추지 못했다. 금융기관 근무자로선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다.
부기, 상업, 회계 등 지식은 본부 일부 부서에선 꼭 필요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영업에 주로 매진했던 나로선 회계 등에 대한 일천한 지식이 결코 핸디캡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고객 자금을 새로이 유치하거나 기존 고객의 자산을 늘려주는 자산 배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종합자산관리가 나의 주요 미션이었으니 말이다. 별로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현직에 있을 때와 달리 최근엔 회계원리를 공부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그래서 인터넷 강의를 열심히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원가계산’의 개념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실생활에 이를 적용까지 해야 했다. 회계란 전혀 낯선 부문에 입문한 나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한편 내 대학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을 하나씩 늘려나가는 것에 많은 보람과 희열까지 느낄 수 있었다.
학부시절 “밧줄의 강도는 가장 약한 부분의 세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헌법 교수의 지적에 딱 맞았다. 내가 3년여 전부터 글쓰기에 들어섰듯이 회계학이란 신천지를 경험하다 보니 견문이나 시야가 한결 넓어졌다. 심지어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었다. 글감의 범위가 부쩍 늘어났다.
이 주식인 ’ 명품 건강 혼합 잡곡밥’만 따질 때 집 밖에서 혼밥을 하는 것보다 분명 남는 장사였다. 아직도 대부분의 식당에선 추가 공깃밥을 실제 1,000원에 먹을 수 있다. 약 40여 년 전의 시세와 전혀 변동이 없다. 물론 대부분 백반이다. 내가 손수 지은 잡곡밥의 원가는 1,000원을 훨씬 넘어섰다. 이렇게 따지자면 백미와 달라 잡곡은 훨씬 고가이다. 그럼에도 건강 기여도를 감안하면 분명 원가계산에서 잡곡 쪽이 훨씬 우위라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