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옛터, 광란의 밤(2편)

by 그루터기


평소 술을 아예 입에 대지 않은지가 오래인 나의 절친 용수는 자신에게 핸들을 안심하고 부담 없이 넘기라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대작할 것을 권유했다. 이미 막걸리 몇 잔을 들이켜 ‘IBM’(이미 버린 몸)이 되기도 하여 못 이기는 척하고 따르기로 했다. 문제는 오늘 밤을 어디서 묵을 것인가가 작은 고민거리였다. 비어 있는 우리 본가도 무방했으나 여자 동기 명주는 생각지도 않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자신의 동생 황토방으로 가자며 소매를 쥐고 끌어댔다. 순간 나는 요즘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날로 늘어가는 대형 찜질방이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황토방에 관해 한 번 더 물었다. 최근 자신의 동생 현미는 종래 농촌지도소와 그 부설 유치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공매로 인수했다. 공간도 여유롭고 망망대해 한 편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무인도인 외딴섬과 같았다. 아무리 떠들어대도 주위에 민폐를 끼칠 일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장례식장과 아주 근거리여서 이동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은 최적의 장소라며 한번 더 추천을 했다.


이리하여 결국은 이곳으로 낙찰이 되었다. 어차피 오늘 저녁엔 어디엔가 멍석을 깔고 한판을 벌여도 별 문제가 없을 듯했다. 부어라 마셔라 하기로 내심 작정한 마당에 안주는 밖에서 준비해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동생에게 아주 훌륭한 음식 솜씨를 발휘할 기회를 주면 될 것이라고 명주가 한마디 더 보탰다. 이 또 수지맞는 장사가 아닌가,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조문을 마친 친구들은 더러는 고향 자택으로 돌아갔다. 일부는 늦은 밤 시각을 마다하고 생활 근거지로 또 다른 일행은 늦게까지 상갓집을 지켰다.


드디어 유치원 옛터 연회장에 집결할 엔트리가 확정되었다. 내 여자 동기 명주와 여동생 둘과 이미 체육대회도 참석한 바 있는 여자 동기 여진, 상가집행팀 3명인 인호, 용수와 나였다. 마치 7인의 특공대을 연상케 했다. 친구 명주의 세 자매가, 중학교 3기 친구 셋과 나의 절친 용수 이렇게 4명을 초대하는 구도가 되었다. 안주야 그렇다 치더라도 알코올이 문제인데 이 마저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 소리를 쳤다. 각자 자신의 팔다리를 이용하여 무사히 목적지로 집결만 하면 충분하다 했다. 하지만 그것이 말대로 쉽지는 않았다.

당시만 해도 나는 지금보다 훨씬 형편이 나았다. 근무 중인 영업점 내의 다른 직원과 견줄 때 고객 수나 자산의 규모가 그리 밀리는 수준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를 원천으로 삼는 급여 수준도 상당한 레벨이었다. 급여일이 되면 나는 몇 군데 송금을 하고 신용카드 대금도 미리 선결제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다음 절차는 독특했다. 365미리 용량 국산 양주 10병을 장만하여 트렁크에 채웠다. 그런 후 고객 접대나 또 다른 술자리에서 이 국산 양주를 한 두 병씩 참석자와 나누곤 했다.


우리 일행은 개인 소유의 자그마한 수목원이 연상되는 유치원 황토방 집 입구에 들어섰다. 나는 트렁크를 탈탈 털어냈다. 국산 양주 서너 병, 작은 용량 캔맥주 소형 두 꾸러미, 와인 3병을 명주의 두 여동생에게 공손하게 건넸다. 술은 이미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데 무어 이리 또 신경을 썼느냐며 언니 친구 일행을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갑게 맞았다.


목적지의 출입구에 들어서며 유치원 옛터의 건물 일대를 휘리릭 한번 조감해 보았다. 적어도 5미터 이상 높이로 쭉쭉 곧게 뻗은 나무들이 사방에서 울타리 역할도 하고 있었다. 중간 크기의 관목도 제법 여기저기서 자리를 잡았다. 이름 모를 화초들도 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무엇보다 반경 500미터 범위엔 인가는 물론 사무실이나 공장 건물은 그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국가의 통치권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천혜의 고도에 들어선 것이었다. 읍내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군 최고 통수권자의 공개되지 않은 휴양소로도 손색이 없었다. 농촌 지도소에 딸린 유치원 선생들의 교무실을 방으로 개조했다. 오늘의 연회장으로 낙찰된 이곳으로 안내를 받았다.


이미 상갓집에서 반주로 막걸리가 여러 순배 돌았다. 우리는 벌써 거나한 상태였다. 옛 유치원 선생들 4인용 식탁 3배 정도의 길이에 맞먹는 두 개의 식탁이 기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식탁의 모서리 끝단에서 주방은 그리 멀지 않아 요리를 식탁에 올리는데 전혀 애로는 없었다.

연회장을 좌측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파노라마를 돌리듯이 살피기 시작했다. 좀처럼 보기 드문 걸작 사진 작품이었다. 액자에 소중히 담겨 맞은편 한쪽 벽을 장악하고 있었다. 대박이 터졌다. 우리는 이를 마음껏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마의태자가 삽목으로 꽂았다고 전해지는 것이 오늘날 저 유명한 용문사 은행나무이다. 이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된 수령을 자랑하고 우람하며 눈부신 자태를 자랑했다. 고항 관내 영국사 은행나무의 위용을 렌즈에 담았다. 국전에 출품을 했다면 이미 특선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명주 오라버니의 내공으로 다져진 사진 실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나무가 자리 잡고 있는 반경 내엔 이미 떨군 황금빛 은행잎이 제법 수북이 쌓였다. 아직도 일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크고 작은 나뭇가지마다 달려 하롱하롱 흔들렸다. 촬영 작업을 아마도 늦가을에 마친 것으로 보였다. 오랜 세월의 관록을 자랑하며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간 나뭇가지가 다시 땅속으로 파고드는 이른바 휘묻이가 되었다.

땅속에 묻혔던 가지가 뿌리로 변신을 거쳐 다시 또 위로 솟는 가지가 되었다. 기기묘묘한 구조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을 검증하는 듯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도 흔치 않은 독특한 생태의 이력을 보여주었다. 석양이 지기까지는 좀 여유가 있었다. 햇빛과 나뭇잎 가지 등의 오묘한 조화를 천재적인 재능을 동원하여 순간을 잘 포착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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