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옛터, 광란의 밤(3편)

by 그루터기


고향의 자랑이기도 한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사진 작품이 걸린 아래쪽엔 우리 국악기의 기본이 되는 장고 2개와 소고가 달린 구조물도 보였다. 후배 현미는 이 방면에 아주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약간은 쑥스러워하며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잠시 맛보기 연주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 또한 흔치 않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장고 등 장비가 비치된 쪽 맞은편엔 엄청난 기능과 성능을 자랑하는 최신식 노래방 기기가 버티고 있었다. 음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프로 뮤지션의 대형 공연장에나 어울리는 장비였다. 장삼이사의 가정집에 이런 어마어마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 연회장의 주방 쪽 한 편엔 천장에 거의 닿을 정도의 높이를 자랑하는 삼단 진열장이 자리하

고 있었다. 슬쩍 스쳐가는 정도로 살폈다. 갖가

지 브랜드와 용량을 아우르는 양주, 와인, 과일

주, 인삼주 등이 빼곡히 채워져 제대로 된 임자

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국가 기관의 공식행사

는 아닌지라 별도의 세리머니는 없었다. 드디

어 오늘 연회의 시작을 알렸다. 기다란 두 개의 식탁 위엔 두서너 종목의 술병과 맥주 양주 소주 막걸리잔이 세팅 완료됐다


두 가지 이상의 술을 마시고자 할 경우 알코올 함량이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옮겨가는 외국의 관행과 달랐다. 우리 쪽 음주문화는 도수가 높은 것부터 줄을 세우는 것이 보통이다. 노래방 기기와 장고 등 국악 장비, 모든 종류의 음료 그리고 벌써 준비된 야채 계란말이, 과일 야채샐러드도 식탁 위에 이미 올랐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본격적으로 달리기에 문제가 전혀 없었다. ‘부어라 마셔라 불러라 때려라 흔들어라’는 무한 사이클을 이어가는 일만 남았다.


마이크를 서로 잡으려고 몸 다툼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보컬로 나서는 행렬은 잠시도 끊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더러는 식탁에 자리하여 부어라 마셔라 해댔다. 명주의 두 동생 현미와 혜수는 부어라 마셔라의 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또한 이 음주 진도에 맞추어 각종 최고급 안주를 계속 추가로 대령했다. 그래서 노래 멤버로 등장은 물론 본격적으로 부어라 마셔라 대열에 상근 멤버로 끼어들 겨를이 없었다.


제2의 배호로 불리는 인호는 트레이드 마크인 묵직한 남 저음 목소리를 십분 활용했다. 세상을 떠난 지 한세대를 넘어서는 원가수의 재림을 방불케 했다. 평소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트로트에 특화한 노래 실력을 자랑하는 여진이는 요즘 핫한 장윤정의 노래를 매들리로 거뜬하게 소화했다.


음주 부문에선 국가대표 바로 아래 수준으로 공인받은 나는 노래엔 아주 잼뱅이 었다. 여러 종류의 섞어 마신 술의 힘을 빌어 ‘불러서 즐겁고 듣기엔 괴로운’ 최소한의 할당량을 책임지어 의무 방어전에 갈음했다.


나의 절친 용수는 나보단 레벨이 높지만 프로 수준에는 아직 갈 길이 좀 멀었다. 하지만 흥이나 끼만큼은 국가대표급이었다. 제법 많은 분량의 노래를 거뜬히 소화해냈다. 7080 노래가 주된 레퍼토리였다.


공연장 무대는 대개 두 명이 마이크를 잡는 듀엣 구도가 자리 잡았다. 식탁에 정 위치하여 홀짝이는 멤버 이외엔 화음은 물론 뛰어난 율동으로 백댄서를 자처하는 일행도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오늘 연회 참석자 모두는 각자 자신의 미션을 다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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