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옛터, 광란의 밤(1편)

by 그루터기

“이놈들아 너희들이 내려오지 않고 어떻게 버틸 줄 알았어?”

문상을 마치고 식당으로 들어서는 우리 일행에게 국민 총무 경호는 일갈을 했다. 체육대회의 참석은 ‘참지름 쟁이’처럼 어떻게 해서 빠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친구 모친상 때문에 결국 이곳 고향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흔치 않은 일을 두고 300번지 말로 ‘말똑 꼬솝다’ 이놈아,

에 딱 들어맞았다.


나는 평소 주중 근무일에 두 번 정도 외부에서 사람을 만났다. 학교 동기 직장동료 기존 또는 잠재 고객이 주로 그 대상이었다. 이에 갑작스러운 경조사가 끼어들게 되면 3번 이상 외부 모임이 성사되기도 했다. 아무리 애주가이지만 이젠 제법 연식이 되다 보니 자제도 필요했다. 술자리에 참석은 하되 때론 절주를 하고 대리운전 신세를 가끔은 거르고 싶기도 했다. 더구나 연속되는 술자리 약속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최근 잦은 약속이 있어 이번 주말은 좀 쉬어 가는 여유를 가져볼까 생각 중이었다. 매년 봄마다 열리는 중학교 동문 체육대회 겸 동기모임이 1박 2일로 예정되어 있는 사실을 깜박 잊을 뻔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한 번 거르기로 단단히 작정을 했다. 나는 초등 6년 개근을 한 바 있지만 모든 크고 직은 모임에 꼭 개근을 목표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몸과 마음에 많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건너뛰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팔도강산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여러 친구들로부터 이번 모임의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그럴듯한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금요일 오후는 그럭저럭 무사히 넘겨 안도의 한숨까지 내 쉬었다.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도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모임 한번 거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여자 동기 모친의 부음을 들었다. 비록 체육대회엔 미처 참석하지 못하였지만 상갓집엔 들르려는 친구들로부터 계속되는 호출로 휴대폰이 쉴 틈이 없었다.


고향행 교통편이 여의치 않은 동기들을 ‘모디 키고 쫌 매주기(모아서 연결해줌)’도 했다. 이 정도면 나의 임무는 마무리됐다고 위로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같은 부락의 친구 인섭이로부터 간절한 부탁을 받았다. 인섭이는 최근 평소 하던 생업을 접은 것으로 보였다. 나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보아 차편이 마땅치 않은 등 좀 난감한 처지로 보였다. 친구의 어머니이지만 같은 집안 대모가 돌아가신 셈이 되어 꼭 참석을 해야 된다고 했다.


평소 이런 부탁을, 더구나 나에게 하는 친구가 아닌 인섭이의 청을 받기로 했다. 나는 인섭이와 같이 상갓집에 동행하기로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나의 절친 전직 직장동료인 용수에게도 동행을 제안했다. 용수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합류하기로 했다. 경인 전철 구일역 인근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인섭이를 나의 고교동기가 같은 단지 내의 상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약국 인근에서 픽업하기로 했다. 일단 약국에 들러 서로 안부를 묻고 절친이라고 특별히 챙겨주는 강장제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후 먼 거리에 있지 않는 용수를 찾아 나섰다. 이렇게 해서 상가집행 차량엔 3인 1팀으로 문상조 합체가 되었다.


사정상 이른 시각에 출발이 어렵고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체육대회는 이미 파할 시간이 되었다. 장례식장으로 곧장 서둘러 직행을 하여 허겁지겁 도착했다. 체육대회를 마무리한 친구들 상당수가 이미 장례식장에 진을 치고 있었다. 또 역시 그 유별나고 징글징글한 ‘3기 동기 친구들 회이팅’이란 말이 오늘도 절로 나왔다. 상주가 여럿이지만 우리 여자 동기 친구 문상객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다.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이미 이곳을 다녀간 친구, 내일 오기로 예정된 친구 등을 제외하고 지금 문상 중인 친구만으로도 다른 상주 손님 대비 우리 3기 동기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체육대회 상갓집 등 모든 행사마다 일부러 최대 참가상을 노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우리 동기들이 제일 많이 모여들었다. 문상을 마친 후 식탁 앞에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주고받았다. 고인에 대한 생전의 행적 등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읍내 장례식장은 서너 군데가 영업 중이었다. 오늘도 식탁 위에 오르는 메인 메뉴는 고향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고등학생이(다슬기) 국’이었다. 이는 읍내 다른 장례 직장도 다르지 않았다. 이 다슬기국은 외지에서도 구경할 수 있지만 읍내 장례식장의 식탁에 오르는 메뉴는 이른바 클래스가 전혀 달랐다. 시금치 얼갈이 부추 등이 계절에 따라 교대로 등장했다. 인심도 후하게 듬뿍듬뿍 담겼다. 다슬기 알맹이도 여유 있게 쏟아부었다. 상갓집이 아니라 맛집 순례를 온 착각마저 들었다.


우리 일행은 부지런히 서둘렀지만 늦은 시각에 도착한 데다 오랜만에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났다. 오늘 늦은 밤 시간대를 빌어 수도권으로 복귀하기란 여러 정황상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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